엄마는 늘 창가에 앉아 있었다. 작은 아파트 거실 한쪽에 놓인 낡은 나무 의자 위에 조용히 손을 모으고 앉아 있는 모습이 그녀의 하루였다. 손끝에는 아들이 독립하면서 두고 간 오래된 셔츠의 실밥이 감겨 있었다. 그는 독립을 한다며 서둘러 집을 떠난 지 벌써 3년이 되었다.
그날도 아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를 끊었다.
“엄마, 일이 많아서 이번 주엔 못 가요.”
“그래, 알겠다.”
그녀는 천천히 전화를 내려놓았다. 대화는 항상 짧았다. 그는 늘 바빴고, 그녀는 그것을 이해하려 애썼다. 하지만 이해하려 애쓸수록 마음 한구석에는 어쩔 수 없는 고립감이 자리 잡았다. 가끔씩은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무 부담스러운 걸까? 아니면, 이젠 나 같은 건 필요 없는 걸까?”
그녀는 평생 아들을 사랑했다. 그러나 그 사랑은 그녀만의 몫이었다. 어릴 적엔 아들이 잠들 때까지 자장가를 불러주고, 아침이면 도시락을 챙겨주며 자신이 곁에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는 점점 커가면서 자신만의 방을 닫아 걸었고, 이제는 다른 집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채 살고 있었다. 그녀는 그 세계에 들어갈 자격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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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들은 갑작스럽게 방문했다. 평소와 다르게 문 앞에 서 있는 그의 얼굴이 어딘가 피곤해 보였다.
“엄마, 뭐 좀 먹을 거 있어요?”
“그래, 냉장고에 두부 사 둔 거랑 반찬 남아 있다.”
아들은 말없이 식탁에 앉아 두부를 젓가락으로 집어먹었다. 그를 보며 엄마는 속으로 작은 위안을 느꼈다. 여전히 그에게 엄마가 만든 음식을 먹어야겠다는 마음이 남아 있다는 것에. 하지만 그녀는 묻지 않았다. 왜 이렇게 갑작스럽게 왔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신 말없이 국그릇을 채워 주었다.
아들이 자취 생활에 힘들어하는 것이 눈에 보였지만, 엄마는 그것을 짚지 않았다. 그는 어른이었고, 어른에게는 어른의 방식이 있었다. 다만 엄마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가 내가 만든 국 한 그릇을 먹는 동안이라도 내가 필요하다고 느껴졌으면 좋겠다.”
그는 식사를 마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먹었어요. 엄마, 그럼 또 올게요.”
“그래, 건강 조심하고.”
문이 닫히자 엄마는 다시 텅 빈 거실에 혼자 남았다. 그리고 창가로 다가가 앉았다. 아들은 가끔 집에 왔지만, 엄마가 아들을 떠올리는 시간에 비하면 그의 방문은 너무나 짧고 허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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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뒤, 엄마는 병원에 누워 있었다. 고혈압과 당뇨로 인해 갑작스러운 합병증이 찾아온 것이었다.
병실 문이 열리고 아들이 들어섰다. 그가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그것은 엄마가 늘 좋아하던 노란 국화 한 송이였다.
“엄마.”
그는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엄마의 손을 잡았다. 어렸을 때도 그랬다. 엄마는 자주 그의 손을 꼭 잡아 주곤 했다. 엄마의 손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엄마, 그동안 너무 바쁘게 산 것 같아요. 자꾸 전화 못 드리고, 못 온다고만 하고.”
“괜찮아. 네가 잘 살고 있는 거면 됐다.”
엄마는 힘겹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그는 그 웃음 속에 섞인 미안함을 알아차렸다.
“엄마, 내가 좀 더 자주 올게요. 예전처럼.”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들은 엄마가 점점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감아가는 걸 보며 목이 메었다. 왜 항상 가장 소중한 것들은 잃어갈 때야 비로소 보이게 되는 걸까? 그는 어릴 적 엄마가 창가에 앉아 자신을 기다리던 모습을 떠올렸다. 늘 같은 자리에서, 아무 말 없이 그를 위해 앉아 있던 그 장면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녀는 떠났지만, 창가의 의자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는 오랜만에 집에 돌아와 그 의자에 앉았다. 손끝으로 의자의 팔걸이를 쓸며 말했다.
“엄마, 이제 내가 기다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