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김치를 담그지 않는다. 하지만 엄마는 담근다. 엄마의 손끝에서 겨울이 시작된다. 시간이 멈춘다. 아침부터 부엌에서 들리는 소리. 도마질 소리, 물 흐르는 소리, 양념 버무리는 소리. 나는 그저 본다. 붉어지는 엄마의 손을, 하얗게 서리는 숨결을.
마트에서 파는 김치도 있다고 말했다. 엄마는 웃었다. 웃음소리가 부엌에 퍼졌다. 그래도 담근다고 했다. 내가 먹으라고. 동생이 먹으라고. 아빠가 먹으라고. 참 이상하다. 먹지도 않을 거면서 자꾸만 달라고 하는 내 입이. 타지에서 살면서도 엄마 김치가 먹고 싶다고 투정 부리는 내 목소리.
김장은 겨울의 의식이다. 배추를 절이고, 무를 채 썰고, 마늘을 다지는 동안 엄마의 주름은 깊어진다. 시간이 흐른다. 나는 안다. 엄마의 허리가 아프다는 것을. 손목이 시리다는 것을. 그래도 엄마는 멈추지 않는다. 사랑도 멈추지 않는 것처럼.
작년 김치, 재작년 김치, 십 년 전의 김치. 맛은 같은데 다르다. 엄마의 주름이 늘어날수록 김치 맛은 깊어진다. 나는 그것을 '시간의 맛'이라고 부른다. 엄마가 내 나이였을 때의 김치. 내가 엄마 나이가 되어도 담그지 못할 김치.
김치는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진다. 엄마의 김치처럼. 처음엔 매웠다가, 시큼해졌다가, 익어간다. 사람도 그렇다. 나도 그렇다. 하지만 엄마의 김치만은 변하지 않는다. 언제나 그 맛이다. 그 손끝의 떨림, 그 마음의 온도.
가끔은 부끄럽다. 김장하는 엄마 곁에서 휴대폰만 들여다보는 내가. 도와달라는 말에 귀찮아하는 내가. 그러면서도 맛있다고, 더 달라고 하는 내가. 받기만 하는 사랑은 죄책감처럼 쌓인다.
엄마는 말한다. 올해도 김장할 거라고.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그 말 속에 숨겨진 약속이 있다. 엄마가 계속 여기 있을 거라는. 내 곁에서 김치를 담글 거라는. 나는 그 약속이 두렵다. 영원할 수 없다는 걸 알아서.
나는 김장을 하지 않는다. 할 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엄마가 있으니까. 엄마의 김치가 있으니까. 때로는 그것이 사랑이다. 하지 않는 것도, 받기만 하는 것도. 받은 만큼 언젠가는 돌려주어야 할 것이다. 다른 방식으로, 다른 이름으로. 아마도 그때가 되면 나도 김치를 담그고 있을지 모른다. 엄마의 레시피를 물으며, 엄마의 기억을 되살리며.
겨울이 온다. 엄마의 김치가 익어간다. 나의 그리움도. 김치 항아리 속에서는 시간이 익어간다. 사랑도 익어간다. 죄책감도 익어간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익어갈 것이다. 엄마처럼, 김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