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적으로 가장 소중한 것은 시련과 고통이다.
오늘 출근하면서 신은 신발을 보니, 여기저기 좀 헤졌더군요.
문득 어린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무척 가난했었죠.
초등학생 무렵, 서울의 한 단독주택 지하 단칸방에 세들어 살았었는데,
그곳은 개별 화장실도 없어서
지하에 사는 여러 세대들끼리 하나의 야외 화장실을 공용으로 썼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무렵,
겨울에 입는 파카가 한벌 뿐이었는데,
이 옷이 워낙 오래되어서 그런가,
오른쪽 호주머니 부분이 좀 찢어졌습니다..
어린 마음에 그게 부끄러워서
늘 오른손으로 그 부분을 가리고 다녔어요.
친구들이 왜이렇게 오른손을 넣고 다니냐고 물어본 적도 있었어요.
오른손이 좀 추워서 그래..
하면서 멋쩍게 둘러댔던 기억이 납니다
참, 어려웠던 시절이었고,
부끄러움도 많았고,
주눅들어 있던 시기였습니다.
신발을 보는데,
그때 그 겨울 점퍼의 오른쪽 호주머니 부분이
계속 생각이 나더군요.
그런데 그때와 달리 지금은 아무렇지가 않네요.
몇년 넘게 신은 것 같은데,
그래도 1년은 더 신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고,
신발이 좀만 더 버텨줬으면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40대가 된 지금,
어린 시절의 이 경험들은,
오히려 저에게 큰 거름이 되어줬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참아내고, 이겨낼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어줬습니다.
어린 시절의 가난과 고통이
더 열심히 살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된 셈이죠.
요즘 저는 급식비도 아끼면 좋을 것 같아서..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닙니다.
급하게 밥을 먹지 않아서 좋고,
소식하니 건강에도 좋습니다.
혼자서 조용히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할 수 있으니 더욱 좋습니다.
이렇게 아낀 급식비가 그래도 1년에 일이백은 되는 듯 합니다.
가난, 고통, 어려움, 시련...
하나같이 부정적 의미의 말들이지만,
저는 이것들이 무조건 나쁘다고만 생각하진 않습니다.
살면서 시련을 만나지 않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분명 이런저런 고난과 곤경을 겪을 텐데,
그동안 그런 고난을 이겨내온 사람과,
처음 맞닥뜨린 사람은
대응방식에 큰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옛말에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는데,
40대가 되니,
이 말이 정말 와닿더라구요.
시련과 고통,
역설적이게도
이것들이 40대의 나에게
가장 큰 자산이 되어 주었습니다.
지금 시련과 고통 속에 있다면,
기뻐하십시오
이 과정을 잘 이겨낸다면
분명 몇배는 더 성장해있을 것입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다 지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든 다 해결이 되더군요.
그 과정에서 겪었던 시련, 어려움은
분명 나중에 엄청나게 큰 자산으로 돌아옵니다.
아직 멀쩡한데 1년만 더 신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