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의 말들

칼릴 지브란

by 이여름

"그대들의 아이들은 그대들의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삶을 갈구하는 생명의 아들이자 생명의 딸입니다. 아이들은 그대들을 거쳐서 왔으나 그대들에게서 나온 것은 아니며, 비록 그대들과 함께 지낸다 하여도 그대들의 소유물이 될 수는 없습니다." -칼릴 지브란


"학교 안 가요."

이어 수화기 너머로 욕이 날아왔다. 민망함과 두려움. 뒤늦게 녹음을 눌렀다. 참 못났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나를 그렇게도 지키고자 하는 나의 이중성과 마주하는 것이 더 싫었다.

교사는 머리로 하는 직업이 아니라는 것을 그 아이를 통해 알았다. 나는 늘 옳은 말만 그 아이에게 했다. '학교에 지각하면 안 된다.', '수업 시간에 최대한 참여해라.', '학교 잘 나와야 한다.'는 등 의무만 강요하고 있었다. 내가 살아온 나의 모습을 요구하고 있었다. 돌이켜 보니 그 아이가 무엇이 되고 싶었는지 아직도 알지 못한다. 물론 묻긴 했다. 무엇이 되고프냐고.

"모르겠는데요."

마주치지 않는 두 눈, 짧고 빠르게 던지는 듯한 음성, 삐딱하게 기댄 자세. 모르겠다는 한 마디가 '선생님이 정말 싫어'라는 말로 곡해될 수 있음을 담임이 되고 알았다.

교육은 모두와 관계되어 있다. 부모, 학생, 교사, 정치인. 기업가조차도 교육 주체이다. 우리 모두는 늘 교육 주체가 된다. 교육으로부터 자유는, 교육으로의 구속이다. 과도한 기대도 문제이지만, 과도한 방임도 학생을 망친다. 자유라는 명목하에 우리 사회는 모든 것이 옳으니 내 삶을 간섭하지 말라는 투로 가르친다. 하지만 존중과 방임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나는 존중하지 못했다. 나는 신뢰받지 못하는 교사였다. 그러니 내게 학생이 터놓고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나는 고리타분한 교사였겠지. 옳은 이야기만 계속하는 것도 아이를 겉돌게 한다. 담임으로서의 안타까운 시간이 지나고, 진실한 가르침 하나를 얻었다. 우선은 이해라는 것.

'사춘기의 마음을 번역해 드립니다(김현수)'를 읽었다. 학생은 환경의 산출물이다. 겉으로 드러난 학생의 비행을 두고 탓하기는 쉽다. 우리는 본질을 파악해야한다. '경쟁', '외로움', '중독', '혐오' 등 우리는 학생이 아닌, 스스로의 모습과 화해해야 한다.

나 혼자 싸우긴 어렵다. 교육의 선배들, 이를테면 선생이라고 불리울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으고 내 생각을 보태려고 한다. 이해란 내 고정관념을 깨는 일이기에 타인과의 관계, 만남이 필수적이다. 이해로써의 만남을 교육 주체들이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학생을 소유하기 위한 것이 아닌, 학생을 화살처럼 멀리 날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칼릴 지브란의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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