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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 Jan 31. 2024

(프롤로그) 시 읽을 시간 만들기

하눌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흰 바람벽이 있어, 백석

 지난달 보일러 요금이 22만 원이 나왔다. 따듯하게 보냈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아침을 가장 방해하는 적은 추위다. 지난해 내가 간절하게 원하던 것은 새벽 독서 습관 갖기였다. 무참하게 실패했다. 나를 가장 어렵게 했던 것이 떠올랐다. 침대 밖으로 뻗는 나의 발가락. 발가락은 추위라는 신호를 살뜰히도 알려주었다. 그렇게 나와의 타협이 시작되었던 것이 1년이 지났다. 그러고 보니 1년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그것이 습관이 되어 퇴적되었다. 합리의 늪에서 나는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특히 잠과 추위, 배고픔이라는 근원적인 욕구들 앞에서 처참히 무너졌다.

 늘  학생들에게 게으르게 살면 안 된다고 설교한다. 아이들이 이불을 잘 개지 않고, 해야 할 과제들을 미루거나, 혹은 늦게 일어나 지각을 한다거나 하는 꼴을 보면 나도 모르게 좀스러운 마음이 생긴다. 좀스럽다는 마음이 들었단 건 이미 사랑을 담은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니, 이러한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느껴지기란 어려웠겠다. 우선 나부터 바꾸어야 한다는 말은 나의 말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말과도 같다. 내가 지키지 않는 말, 나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으면서 내 말에 힘이 생길 리가 없다. 

 그러나 나는 지금 아이들과 마주해 가르쳐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더 이상 미룰 수만은 없었다. 아이들에게 늘 하는 말은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것은 변명이다.'이다. 책은 시간을 내어서 읽어야 하는 것이라고 누누이 말한다. 그러나 나는 어제 수리남을 6화까지 정주행 했다. 이런 모순 속에서. 나는 헤어 나오고 싶었다. 간절한 고민이었다.

 하나부터 시작해 보자. 나는 시를 좋아한다. 시를 잘 아는가? 그렇지 않다. 대신 시를 재밌게 이야기할 수 있다. 내 나름의 언어로. 나는 내가 재밌게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는 것이 습관을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대답은 '시'였다. 

 언어 또한 습관이다. 언어의 습관을 다듬는 것은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문학 중에서도 시는 짧은 글에 시인의 정신을 차곡차곡 담아내야 하기 때문에 언어를 다듬는 장르로서는 이만한 것이 없다. 그래서 게으름을 이겨내고, 내 언어를 다듬는 일석이조가 새벽에 일어나 시를 읽는 것이다. 나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시를 읽기로 결심했다.

 글은 짧게 적을 것이다. 그리고 훗날 책갈피를 만드는 데 쓰려고 이미지도 제작해 첨부하려고 한다. 얼마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과거가 현재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내버려 두는 것만큼 무책임한 일도 없겠거니 하며 버텨보려고 한다. 

 과정이 즐겁고 아름답다면 기억이 되어서 현재를 버티게 만든다고 한다. 난 이 말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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