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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 Mar 05. 2024

뿌리 내리기

'봄의 설법'(이동순 시집, 창비 1995)

봄비 끝에 뿌리를 잘 내려가는 나무들을 보면서 나도 이 새로운 땅에 내 삶의 뿌리가 튼튼히 내려지기를 소망한다

-이동순, '뿌리 내리기' 중


 내가 이 자리에서 뿌리내리기까지 나를 보듬어준 이들의 희생과 사랑이 있었다. 사람을 뿌리내리게 하는 언어는 무엇일까.

 '그럴 수도 있다.'라는 생각이다. 라디오에서 양희은이 자신의 유행어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하는데 그 말을 직접 듣는다면 얼마나 위로가 될지.

 '그럴 수도 있다.'는 어른들의 말이다. 자라나려고 하는 청춘들을 이해하고 보듬고, 키워주는 말이다.

 '이해받을 수 있구나. 나는 사랑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주위 사람에게 받는다면, 쉽게 떠나기 어렵다. 흙과 같은 말이 되는 것이 '그럴 수도 있다.'라는 말이다.

 나는 상황보다 사람의 잘못을 탓하는 버릇이 있다. 이를테면 '저 사람은 저것이 문제다.'라고 판단하는 생각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존중의 말 습관이 아직 배어있지 않은 것이다. 상황이라는 큰 그림을 보기보다, 사람을 탓하며 문제를 찾는 일은 쉽다. 상황을 생각하면 나의 모습과 잘못도 떠올려야 되지만, 탓하는 것은 오로지 한 가지 이유인 '그 사람'만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내가 이 공간에 뿌리내린 것은 흙 덕이다.

 나도 누군가의 흙이 되기 위해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을 거름처럼 되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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