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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한복이 Oct 06. 2022

나의 사계절

  나는 사계절을 다 탄다.

  하나의 계절을 보내고 또 다른 계절을 맞이하는 것은 몇십 년째 매년 하는 중인데도 여전히 아쉽고 한결같이 설렌다. 그런 매일이 또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좋지 않을 수 있을까.

 


  봄. 여린 잎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이 계절엔 여린 봄처녀 같은 내 마음도 함께 피어난다. 내 기억 속 아주 어린 날부터 엄마의 발자국을 따라 걷던 봄 맞으러 가는 길.

  추운 날들 동안 얌전히 기다리고 있다가 마침내 팔을 쭈욱 늘려 기지개를 켜는 봄들을 캐러 가는 길은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코끝이 향기롭다.

  겨우내 꽁꽁 얼었던 가지가 매서운 칼바람에 부러지고 말았어도 온 힘을 다해 새로이 꽃눈을 올리고 따스한 봄볕을 위로 삼아 꽃잎을 피워내고야 마는 봄이 오면 어떤 일도 다시 시작할 힘을 얻는다. 금방 시들해져버리고 말더라도 봄은 또 올 것이고 언제나 그랬듯 다시 피워낼 테니까 그런 봄을 나는 믿는다.   



  여름. 연둣빛의 부드럽던 나뭇잎들이 점점 짙어져 가는 여름엔 싱그러운 여름을 닮은 소녀가 산다. 뜨거운 여름 햇살에 검게 그을린 얼굴, 이마와 콧잔등에 송골송골 맺히는 땀방울, 시원한 바람에 부드럽게 날리는 머리칼.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엔 우산도 없이 비를 맞고 뛰어도 좋았다. 어느새 교복이 다 젖었어도, 운동화에 물이 스며들어 퉁퉁 부은 발가락이 간지러웠어도, 비에 젖어 착 달라붙은 머리카락이 물미역 같다며 까르르 배꼽 잡고 웃어대던 그날들이 좋아 여전히 여름을 좋아한다. 숨이 막히는 뜨거운 여름도 하루 종일 비가 오는 눅눅한 여름도 그저 여름이기에 여름이라서 좋다.



  가을이면 분위기 있는 여인이 되어 깊고 그윽한 눈동자에 짧은 이 계절을 담는다.

  온통 따뜻한 색으로 물들어있음에도 어딘가 모르게 아련하고도 쓸쓸하다. 금방 끝나 버릴 아름다운 이 날들이 아깝고 아쉬워 자꾸 밖으로 나가고만 싶어 진다. 커피 향이 날 것만 같은 가을볕이 잘 드는 의자에 앉아 발밑에 수북이 쌓인 고운 나뭇잎들을 차곡차곡 내 마음에 쌓아둔다. 벌써 추억이 되어 버린 우리의 시간을 기억하며, 헤어질 시간을 아쉬워하며,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겨울. 춥다고 겹겹이 여민 옷가지를 걷어내면 장난기 그득한 아이가 들어있다.

  엄마 말을 듣지 않고 추위에 하루 종일 뛰어놀다 두 볼이 발갛게 튼 이 아이는 항상 이대로이길 바랬다. 봄, 여름과 가을을 쉴 새 없이 뛰어놀았지만 겨울이라고 그러지 않을 생각은 없었다. 둔해진 몸 덕분에 자꾸 넘어졌지만 옷이 두꺼워 아프지도 않으니 더 좋았다. 추워도 뛰어노는 게 좋았고 실컷 놀다 따뜻한 이불 안에 쏙 들어가면 뜨거운 방바닥에서 나는 달궈진 흙냄새가 좋았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도 이 겨울이 좋은 것은 추울수록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옆사람의 체온이 좋고, 내가 좋아하는 포근한 니트를 마음껏 입을 수 있어서 좋고, 일찍 해가 내려앉은 초저녁의 분위기가 좋고, 뛰어다니느라 추운 줄도 모르고 뒹구는 해맑은 이 아이가 좋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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