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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한복이 Oct 26. 2022

스며든 가을


  

| 단풍 좀 봐!


남편의 말에 문득 바라본 차창밖 풍경은 완연한 가을이었다. 오는 중인지 가는 중인지는 몰라도 어느새 가을이 한 겹 두 겹 레이어드 되어 곱게 물들어 있었다.

입으로는 춥다, 춥다 하면서도 사실은 모르고 있었던 건지 나무 꼭대기에 빨갛게 물든 나뭇잎을 보고는 내 작은 눈이 번뜩하고 커졌다.

사람은 늙어가고 있는데 그럼에도 아름답구나, 너는 여전히.



그날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내가 살아온 모든 시간이 책장 넘기듯 장면 장면 넘어갈 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을 덤덤하게 준비할 시간이. 꼭 한 번은 겪어야 하고 꼭 오고 말 것이라는 것이 어쩐지 처연하게 느껴진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지나가버린 나의 사춘기 시절에 그토록 밤잠 못 이루게 했던 어느 노랫말 가사처럼 내가 살아가고 있는 건지, 그저 사라지고 있는 건지.

어느덧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벌써 내 인생의 절반 혹은 그 이상을 살아왔다는 게 새삼스럽기만 하다.

세상을 살아가는 마음보다 세상에서 사라지고 있는 마음이 더 크게 느껴질 즈음이면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을까.

지금의 나는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까.


그저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앞만 보고 살다 보니 어느새 중년의 나이에 와 있는 것처럼 어쩌면 그날도 그리 멀리 있을 것 같지 않다.

머리로 이해하는 시간보다 훨씬 더 빠르게 내 앞에 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날에도 나는 그 시간의 속도에 맞춰 지금처럼 나답게 살아가고 있기를.

가쁜 숨을 내쉬며 천천히 내딛는 발걸음에도 내 눈은 아름답고 고운 것들을 차곡차곡 담고 있으면 좋겠다.

서서히 색은 바래질 것이고 깊어진 눈동자는 점차 흐릿해져 가겠지만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늙어가는 동안에 맞게 되는 나의 마지막은 소풍에서 되돌아가듯 그저 조금 아쉬울 뿐 편안하고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힘을 다해 피워 냈던 꽃잎은 마침내 모두 떨어지고 말았더라도 꽃이었으리라. 아름다웠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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