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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한복이 Sep 07. 2022

안부

혼잣말

사실은 없었지만 있다고 믿으면 있는 것도 같았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어도, 손을 갖다 대 만질 수는 없어도 시간이 지나면서 내 안에 하나씩 박힌 마음들이 어느새 가늠도 하지 못할 만큼 커져서 더 이상 슬프거나 아프지 않았다.

새카맣게 잊어버린 것도 아닌데 그랬다.

잊고 지냈던 기억이 갑자기 떠올라 오히려 선명해졌고 떠오르는 추억은 한없이 소중해졌다.  

다시 잊어버릴까 걱정했지만 손에 쥔 모래처럼 꽉 질 수도 없었다. 추억만 남게 되는 것 같아 서글퍼져서.


유난히 지독했던 엄마가 떠나간 2월, 그날과 똑같은 몇 번의 겨울이 지나고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지만 나는 여전하기도 하다.

엄마에 대한 나의 기억은 이미 오래전에 멈추었고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지만 지나버린 시간만큼 커져버린 마음이 내게 남아있다.

내 마음속에서 만큼은 아직도 생생하기만 하다.

기억이라는 것이 서랍을 열어 꺼내어 볼 수 있는 것이라면, 책장을 넘겨 읽어볼 수 있는 것이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지난여름 책장 사이사이에 끼워 잘 말려놓은 풀꽃들처럼, 날이 갈수록 색은 조금 바래지고 말더라도 보고 싶을 때면 그게 언제라도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라면 시간이 흐르는 것이 이렇게 아쉽지는 않을지.


한정원 님의 '시와 산책'을 읽으며 빈 종이에 따라 적었다.

"보이는 척하며 웃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연필을 쥔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나의 마음을 읽어주는 것 같아 눈물이 났다. 괜찮아도, 괜찮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오늘, 나의 마음은 이러한데 당신의 마음은 어떠하냐고.

수도 없이 말을 걸었다.

하늘에다 대고, 허공에다 대고.

엄마! 엄마! 하고.


비록 혼잣말이었지만 대답을 들은 척 웃는 것만으로도 내내 따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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