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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한복이 Sep 19. 2022

낡은 이태리타올

  일요일 아침 엄마와 목욕탕을 갔다.

  "미야, 목욕탕 갈 준비 해라"

  그 말 한마디에 몸은 분주하게 그러나 마음은 미적거렸다. 별로 가고 싶지가 않다.



  더 어릴 때는 우리 집에서 제법 거리가 있는 목욕탕에 다녔던 것 같은데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인지 어렴풋하게 엄청 큰 파란색 굴뚝만 생각이 날 뿐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기억이 나는 곳은 새로 생긴 아파트들 사이에 있는 그리 크지 않은 붉은 건물의 수성탕이다.

  엄마랑 목욕탕을 가면 좋기도 하고 안 좋기도 했다.

  일단 일요일 아침에 가는 것 자체가 별로였다.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아침잠이 많아서인지 이상하게 일요일 아침에는 좀 몽롱한 기분이다. 머리도 무겁고 몸도 축 처지는데 그런 몸을 이끌고 뜨거운 목욕탕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니.

  도축장에 끌려가는 가축의 마음이 이럴까. 신발을 질질 끌어가며 최대한 뒤처져 걸었다. 엄마의 손을 잡고 깡총깡총 뛰다시피 걸어가는 내 동생의 발걸음조차 못마땅스러웠다.

  목욕탕 건물 안에 들어서는 순간 코끝을 어슬렁거리는 목욕탕 특유의 미적지근한 냄새에 속이 메스꺼웠다. 그 냄새를 참고 들어가면 꿉꿉하고 끈적이는 느낌이 안 좋다. 그리고 사물함을 열었을 때 나는 나프탈렌 냄새 역시 좋지 않았다. 어차피 거기까지 따라 들어갔다면 이제는 차라리 최대한 빨리 옷을 벗고 목욕탕으로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엄마와 가는 목욕탕이 싫었던 진짜 이유는 이 탕 안에서 벌어질 것이기에 각오는 단단히 해야 할 것이다.




  숨이 꽉 막히는 목욕탕 안은 습기 때문에 눈이 침침했고 현기증이 났다. 엄마는 자리를 잡고 세숫대야와 의자 등을 세팅한다. 비누로 내 몸을 한 번 씻긴 후 뜨거운 물에 데리고 들어갔다. 발가락만 살짝 담가도 이렇게 뜨거운데 엄마는 거침없이 물속으로 들어가 목 끝까지 쑤욱 담갔다. 그리고 나에게도 오라는 손짓을 했다. 뜨거워서 들어가기 싫은 티라도 내면 엄마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차피 들어가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기에 손바닥으로 물을 가르며 들어가 본다. 허벅지가, 옆구리가 데일 것 같은 느낌을 참아가며.

  이상한 것은 그렇게 뜨거웠어도 한 번도 그 물에 덴 적은 없다는 거다. 그래서 군말 없이 꼭 들어가야만 하는 물이기도 했다.

  십여분이 흐르고 엄마는 먼저 밖으로 나갔다. 조금 있다가 엄마가 부르면 나오라고 했고 나는 그 적응되지 않는 온탕에서 얼른 나와 엄마 몰래 바로 옆의 미온탕으로 들어갔다.

  아! 살 것 같다. 엄마는 때를 미느라 내가 여기 들어왔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수영장을 한 번도 가보지는 못했지만 여기보다야 좋을까. 신나게 물속에서 점프를 했다. 찰랑찰랑 잔 파도가 일었다. 엇박자에 앉아버린 내 입속으로 미지근한 물이 들어왔다. 그 정도는 나쁘지 않았다.


  엄마가 나를 불렀다. 냉큼 밖으로 나가 엄마 옆에 앉았다. 엄마는 집에서 챙겨 간 커다란 수건을 바닥에 쫙 펼쳐 깔고는 그 위에 누우라고 했다.

  이거였다. 내가 그토록 목욕탕을 가고 싶지 않아 했던 이유. 정말이지 진짜 너무너무 싫었다.

  모두가 알몸이었지만 거기에 누워있는 내가 알몸 중에 진짜 알몸인 것 같은 이상한 기분. 부끄러움이었다.

  그리고 수건을 깔고 누웠어도 돌바닥은 차가웠고 너무 딱딱했다. 수건이 등에 배겨 아팠고 베개도 없이 바르게 누워 있는 것은 머리가 뒤로 젖혀진 것 같아 불편하고 어지러웠다. 게다가 때를 미는 엄마의 손은 왜 그리도 매운지, 우리 집 때수건은 새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다 따가운 것밖에 없는 건지. 그 상황에서 가만히 누워있을 사람은 아마 없을 거다.

  엄마가 내 배를 밀 때, 배에서 허벅지로 내려갈 때, 팔 안쪽을 밀 때, 너무 아파서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났고 손으로 내 몸을 가리고 엄마손을 막았다. 그러다 괜히 찰싹! 때수건까지 낀 엄마손에 한 대 맞았고 엄마의 힘은 아까보다 더 세졌다. 내 몸이 좌우로 흔들렸다. 나는 울기 직전이었다. 서있는 사람들이 다 나를 한 번씩 내려다보며 지나갔고 창피했다. 얼른 앞판이 끝나 돌아눕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아니다. 뒤판도 결코 만만한 게 아니다.

  엄마는 나를 옆으로 눕혔다가 엎드려라고 했다가 일어서라고 했다가, 온몸 구석구석 손톱 만한 때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아주 열정적이었다. 우리 엄마의 열정은 명절 앞에 더 불타올랐고 엄마의 그 모습도 어쩐지 싫었다.

  울상이 되어 주위를 둘러보던 중에 어쩌다 눈이 마주친 저 애는 대체 왜 저리도 평온하게 때를 밀고 있는 것인가. 나의 몸은 이리도 시뻘겋고 작은 내 두 눈은 이슬을 한가득 머금고 있는데 말이다.




  부끄럽고 아프고 짜증도 났지만 협조를 잘해야 조금이라도 빨리 끝날 것이다. 고통의 시간을 인내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꾹 참고 견뎌야 했다.

  누구나 들어갈 수 있지만 아무나 들어갈 수는 없는 곳, 바로 냉탕에서 노는 것이 그것이다. 엄마손에서 해방이 되면 쏜살같이 냉탕 앞으로 갔다.

  냉탕에서 놀려면 일단 얼음장 같은 물 온도를 견뎌야 한다. 언니는 별로 차갑지도 않은 건지 으, 으, 짧은소리만 낼뿐 몸에 물을 뿌리며 제법 수월하게 탕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언니처럼 다리에 한 바가지 물을 부어보고는 성큼 따라 들어갔다. 물이 너무 차가워서 턱이 덜덜거렸다.

  궁금한 건 냉탕은 꼭 그렇게 극도로 차가워야만 하는 걸까. 언니는 물이 시원하기만 하면 사람들이 냉탕에서 노느라고 안 나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이렇게 차가운 덕에 아무나 들어올 수 없으니 우리끼리 마음껏 놀 수도 있고.

  몸이 온도에 적응만 한다면 냉탕에서 노는 건 상상 이상으로 즐거웠다. 특별할 게 없는데도 그랬다.

  바가지에 물을 담아 둥둥 띄웠다가 꼬르륵 바닥으로 빠지는 것만 봐도 재미있어서 몇 번을 반복했다.

  뒤집어엎은 바가지에 의지한 채 매달리면 내 몸이 물에 둥둥 떴다. 비록 얼마 못가 가라앉고야 말았지만 바가지 덕에 신나게 물장구도 쳐보았다.

  맘처럼 움직여주지 않는 다리를 애써 옮겨 어기적거리며 달아나면 언니는 물속에서 눈을 뜨고 나를 잡으러 다녔다. 언니처럼 물속에서 눈도 떠보고 사물함 열쇠를 던져놓고 잠수해서 꺼내오기도 했다.

  한바탕 신나게 놀고 있는데 할머니들이 들어오시면 우리는 이만 한쪽으로 물러나야 한다. 이유는 할머니들이 거센 폭포수를 틀어놓으시고 그 밑에 앉아 계실 예정이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추운데, 소리를 듣자 하니 아프기도 엄청 아플 텐데 저 폭포수 아래서 저만큼이나 오래 버티시다니. 그 광경은 보고 또 보고 목욕탕 갈 때마다 봐도 놀랍고 대단해 보였다.

  우리 엄마는 목욕이 다 끝나도 냉탕에는 굳이 들어가지 않았다. 바가지에 물을 퍼놓고 고작 세수를 하거나 발만 헹구는 게 다였다. 그러면서도 춥다고 말했고 냉탕 안에 있는 우리를 보기만 해도 몸을 떨었다. 엄마가 추위를 많이 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목욕이 다 끝나고 나오면 엄마는 요구르트를 사주셨다. 시원하고 달달한 요구르트를 쪽쪽거리며 집으로 돌아올 때면 아침에 오기 싫어서 툴툴대던 마음 같은 건 새카맣게 잊어버리고 마냥 행복하고 개운하기만 했다. 그 기분에 매번 그렇게 못 이기는 척 목욕탕을 따라다녔는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들어서야 아이들을 데리고 목욕탕을 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더 어릴 때는 엄두가 나지 않아 가더라도 혼자서 다녔기 때문이다. 한 주에 한 명씩 번갈아 데리고 다니다가 얼마 전 두 딸을 같이 데려갔다가 정신이 없어서 아주 혼쭐이 났다.

  한 명은 탕에서 놀겠다고 하고 한 명은 답답해서 밖에서 놀겠다고 하고, 그렇다고 한 아이를 혼자 둘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실소가 터지면서 또 한 번 엄마가 참 대단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처럼 아이들을 눕혀놓고 그렇게 열정적으로 때를 민 것도 아니었는데, 아이들은 살살 미는 시늉만 했을 뿐인데, 예상한 것보다 시간이 훨씬 오래 걸렸다.

  내 몸은 앞판 뒤판 다 씻은 건지 어쩐 건지 기억도 없고 배고프다는 아이들을 데리고 서둘러 나오려는데 냉탕에 앉아 있는 아주머니들을 보고 아이가 자기도 한 번 가봐도 되냐고 물었다.

  "엄청 차가운 물이야. 감기 걸릴 수도 있으니까 들어가지는 말고 손만 살짝 담가보고 와. "

  "진짜 차가운 물 맞아? 그런데 저 사람들은 어떻게 저렇게 앉아 있어?"

  내 말을 믿지 못하는 듯한 아이에게 확인시켜주기 위해 냉탕 앞으로 갔다. 굳이 물에 손을 넣어보지 않아도 이미 바닥으로 넘쳐흐르는 차가운 물이 발바닥을 적셨다. 탕 속에 손을 담가보게 하자 부들부들 떠는 듯한 시늉을 하며 돌아선 아이의 놀란 표정이 너무 웃겨서 웃음이 났다.

  밖으로 나왔더니 들어갈 때는 안보이던 삶은 달걀이 평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배가 고프다던 아이들은 제발 하나만 먹으면 안 될까 하며 거기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이들부터 얼른 머리를 말리고 옷을 입힌 뒤 각자 좋아하는 음료수를 하나씩 고르게 하고 평상에 앉혔다. 어지간히 배가 고팠던 건지 앉자마자 한 개씩 들고는 급하게 껍질을 까더니 평소에는 먹지도 않던 노른자까지 해치웠다.  맛있었는지 욕심을 내어 사이좋게 하나씩 손에 꼭 쥐고 목욕탕을 나오면서 그랬다.


  "엄마, 목욕탕 오는 거 원래도 좋았는데 이제 더 더 좋아졌어. 이제부터 목욕 다하고 나면 계속 이거 먹을래. 그리고 다음에 오면 아까 사람들이 앉아 있던 물 있지? 거기에 다리까지 넣어볼 거야, 꼭 꼭."

  "엄마, 나도야~"





  

  흐르는 세월에 시대가 변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들이 있다. 공중목욕탕도 그중 하나다. 주거형태가 달라지면서 삶의 질이 높아진 부분이 없진 않지만 공중목욕탕을 활발하게 애용했던 나에게는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그때는 당연했던 일상들이 지금의 아이들에겐 체험활동 같은 느낌이 들만큼 많은 것이 빠르게 달라지고 있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도 남겨주고 싶다. 언젠가 사라져 버릴지 모를 우리 동네 공중목욕탕에서 엄마랑 때도 밀고 달걀도 까먹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엄마 등을 밀었던 기억들을.

  조금 더 크면 스스로 냉탕에도 들어가 놀겠지. 그걸 본 나는 감기 걸린다고 또 한 마디 하겠지만 그러면서도 왠지 웃고 있을 것만 같다.

  멀리 있을 어느 날에, 내가 그랬듯 우리 아이들도 자신의 아이에게 들려줄 포근한 옛날이야기가 되어주기를 바라며 아이들이 좋아하는 분홍색과 노란색의 이태리타올을 하나씩 장만했다. 아이가 엄마 등에 비누칠을 해주는 용도로.

  이 까슬한 때수건으로 아이들의 몸을 씻길 날이 올까 싶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목욕탕 바닥에 수건만을 깔지 말자고 다짐하는 내가 조금은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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