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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한복이 Sep 15. 2022

너와 나의 푸르름


  요즘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을 보면 왜 그렇게 예쁜 건지. 막상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교복도 촌스러운 것 같고 맘에 들지 않았는데 요즘엔 교복도 어쩜 그리 예뻐 보일까. 그것도 한창 예쁠 때라 예쁜 거겠지만 괜히 한 번, 나도 다시 교복이 입고 싶다...

  교복 한 번 몸에 걸치는 거야 뭐 그렇게 대수일까. 그보다 교복이 어울리는 나이가 되고 싶은 거겠지.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어떤 할머니가 나를 보며, "한창 좋을 때다... 애들만 키우지 말고 예쁜 옷도 많이 입고 하고 싶은 거 다 해봐요. 지나고 나면 그때가 제일 좋아"라고 하셨었는데 여고생들을 보는 내 맘이 딱 그렇다.

  까르르 웃으며 걸어가는 예쁜 소녀들을 보면 나도 저랬는데 싶어 지금의 내 모습이 갑자기 새삼스럽다.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은 걸까 싶어서.

  어느 나이대나 다 그렇겠지만 여고생은 특히나 여고생만의 예쁨이 있는 것 같다. 생글생글 방글방글 깔깔깔 어쩜 웃기도 그렇게 잘 웃는지. 하긴 그때는 굴러가는 쇠똥만 봐도 좋을 때긴 하.






  그때 우리 담임 선생님은 40대 중후반 정도의 남자 선생님이셨다. 어릴 적 많이 보았던 만화영화 둘리에 나오는 고길동(희동이 아버지)과 헤어스타일까지 많이 닮으셨는데 외모만으로도 벌써 여고생들의 웃음보를 공략할 조건이 차고도 넘치셨다. 그런 우리와는 달리 선생님께서는 크게 잘 웃지도 않으시고 항상 인상을 쓰고 다니셨으며 큰 보폭으로 바쁘게 걸어 다니셨다. 실내화를 질질 끌고 다니는 걸 아주 싫어하셨는데 치마 입은 여고생들에게 당신의 걸음처럼 걸으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며 바쁜 걸음을 굳이 시범 보이곤 하셨다.

  목소리도 엄청 크신 데다가 화를 잘 내셨 문제는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는 거다. 

 종례시간이나 수업 시작 전 교실에 들어오실 때는 아주 멀쩡하게 들어오셔서는 수업이 진행될수록 선생님 점점 뜨거워지셨다. 우리가 반응이 약하거나 조금만 답답하면 소리를 지르셨는데 그럴 땐 천장을 보면서 화를 내셨다. 다 알면서도 천장을 바라보는 선생님의 시선에 속아 한두 명은 꼭 선생님과 같은 곳을 바라봤다.

  한 번 소리를 지르고 나면 코를 한 번 훌쩍이 바지를 추켜 올리고, 흥분하설상가상으로 말까지 더듬으셨다. 앞니가 살짝 튀어나오고 덧니가 있으셨는데 흥분해서 큰소리를 내실 적엔 사방으로 튀어 다니는 굵은 침방울이 간접조명을 받아 멀리서도 보일 지경이었다. 앞에 앉아 온 몸으로 파편을 두드려 맞은 친구들은 수업이 끝나면 책이나 공책에 날아든 파편 자국에 동그라미를 치고 누가 더 많이 맞았는지 내기라도 하듯 설전을 벌였다. 지는 게 이기는 싸움이라 이긴 친구에게는 안타까움을 가득 담은 눈빛으로 심심한 위로를 전하면서.

  아무튼 희한한 건 매번 그렇게 소리를 지르시는데도 선생님을 싫어하는 아이들이 별로 없었다. 목소리는 크셨지만 인간미 넘치시고 의외로 귀여우셔서 인기도 많으셨다. 앞에 선 선생님은 얼굴이 벌겋게 되어 소리치시는데 앉아있는 여고생들은 그 모습에 웃느라 큭큭 거리기 일쑤였다.


  그날도 그랬다. 시험이 끝나고 첫 시간이었던 거 같은데 몇 번이나 강조한 문제를 틀린 사람이 많다고 오기 전부터 이미 화가 나셔서는 씩씩거리며 교실에 들어오셨다. 보폭이 평소보다 두배는 족히 더 될 듯싶었다. 유독 더 흥분하셔서는 이건 뭐, 침을 튀기는 수준을 아예 넘어섰다. 우리는 선생님의 침방울에 본능적으로 집중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내가 두 번째 줄에 앉아있었는데 어떻게 해서인지 선생님의 파편이 내 짝꿍의 책위에 떨어졌다. 그것도  불어 놓은 비눗방울 마냥 곱게 날아와 반원의 형태로 자리 잡고서 무지갯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깜짝 놀란 짝꿍이 이것 좀 보란 듯이 내 옆구리를 찔렀고 거기서 나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야 말았다.

  한 번 터져 나온 웃음은 멈출 수가 없었다. 고개를 숙이고 계속 큭큭거리는데 짝꿍은 방울 크기만큼 크게 동그라미를 그렸다. 숨넘어가는 나에게는 그만 웃으라는 손짓을 하며 무심한 듯 별표를 달았다.

  선생님은 앞에서 잔뜩 화가 나 불그락 푸르락 하고 계셨지만 교실 안 그 누구도 동요하지 않고 평안했다. 그게 더 웃겼다. 배가 아파 미칠 지경이었다. 장이 꼬이는 것 같았다. 숨도 쉴 수 없었다. 웃음소리가 새어 나올까 봐 코와 입을 틀어 막자 피가 머리로 쏠리는 느낌이었다. 짝꿍도 그런 내 모습에 웃음이 터졌다. 이제 곧 있으면 우리는 호흡곤란으로 실려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다 선생님께 들키고 말았다. 숨넘어가는 우리를 보고 바지를 어디까지 추켜 올리시며 성큼성큼 걸어오셔서는 "왜! 왜!" 하셨다. 나는 이미 실성 직전이었고 내 짝이 겨우 숨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선생님, 얘 죽을 거 같은데 한 번만 크게 웃고 다시 하면 안 돼요?"

  선생님은 생각지도 못한 얘기였는지 어이없다는 듯 코를 빨아 당기시고는 피식 웃으시며 자리로 돌아가셨고 반 친구 모두 소리 내어 웃었다. 그제야 나도 허리를 펴고 큰소리로 마음껏 웃으며 조금씩 진정하게 되었다.



  

  워낙에 웃음이 많은 편이긴 하지만 그땐 왜 그렇게 웃음보가 자주 터졌었는지. 그것도 수업시간처럼 조용해야 할 타이밍에 뜬금없이 터져서는 여간 곤란한 게 아니었다.

  수업종이 울리고 선생님 몰래 우유마시던 중 이제 두어 모금만 더 마시면 미션 클리어인데 괜히 터진 웃음에 우유를 질질 흘리다가 결국 선생님께 걸렸던 일, 친구에게 주겠다고 던진 쪽지가 친구 어깨 맞고 바닥으로 사정없이 튕겨나간 걸 보고 또 배를 잡고 떼굴떼굴, 근엄하신 선생님의 뒷 머리카락이 방금까지 주무시다 오신 듯 떠있는 걸 보고 선생님이 뒤로 도실 때마다 웃느라 한 시간 내내 큭큭 거렸던 기억, 책 읽으시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삐끗하기라도 하면 그날은 누구 하나 실려나가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정도였고, 누군가의 뱃속에서 들려오는 꼬르륵 소리는 또 왜 그렇게 웃기게 들리는 건지 눈물을 훔치기 일쑤였다. 돌아보면 별일도 아닌데 뭐가 그리도 좋았는지 리는 내내 웃었다. 웃음을 참느라 부들부들  떨면서, 배꼽이 떨어져 나갈세라 배를 꼭 감싸고서.


  한창 감수성 예민하고 꿈 많았던 나의 여고생 시절, 미래에 대한 고민도 많았고 답답했고 속상했고 어려웠다. 그럼에도 그때가 자주 생각나고 그리운 것은 유해한 그 웃음들 때문이리라. 

  활짝 피어나 있으면서도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그 시절이 이토록 그리워질 날이 오리라는 건.

  다시 오지 않을 한창 예쁜 때라서 혹은 싱그럽고 촌스러운 나와 나의 친구들이 웃고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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