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다섯, 우리 가족은 모두 일곱 명이다.
그때는 형제자매가 많아 봐야 셋이었고, 사실 셋도 잘 없었다. 그런 탓에 누가 형제가 몇이냐 묻는 게 괜히 부끄럽고 너무 싫었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그런 생각은 내가 스무 살 성인이 딱 되자마자 사라졌다. 나를 감출 필요 없이 모든 걸 맘껏 털어놓을 수 있는 평생지기 친구를 넷이나 만들어주셨으니 그저 감사하다 할밖에.
그건 그렇고.
우리 일곱 식구는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외식이란 걸 해본 적이 없다.
예전엔 단순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알게 되었다. 다섯 아이를, 그것도 나이 터울이 들쭉날쭉이라 연령대가 다양한 아이들을 다섯이나 데리고 외식을 간다는 건 밥을 먹기를 포기한 거나 다름없다는 걸. 그래도 그때는 외식이 하고 싶다거나 외식을 못해 불만이라거나 그런 아쉬움을 느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바로 솜씨 좋은 우리 엄마 손맛 덕분인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봐도 우리 엄마는 집에서 참 다양한 메뉴를 많이 해주신 거 같다.
콩나물과 미더덕을 가득 넣은 매콤한 아귀찜하며 소라, 꽃게, 새우, 오징어 등 갖은 해산물을 넣어 끓인 시원한 해물탕은 지금 생각해도 군침이 돈다. 삼겹살에 묵은지를 넣어 자박하게 볶아 낸 김치 두루치기는 상추에도 척 올려 한입 크게 싸 먹거나 불에 살짝 그을린 곱창김에다 싸 먹어도 아주 그만이었다. 쫄깃한 꼬막살을 듬뿍 넣은 된장찌개는 다른 반찬 따위 필요치 않고 큰 양푼이에 손으로 뚝뚝 잘라 넣은 상추와 그냥 비비기만 해도 밥 한 공기가 아쉬울 정도였다.
우리 엄마표 분식은 또 어떠랴. 무심한 듯 크게 썬 세모 모양 어묵만 봐도 입맛도는 매콤 달콤 떡볶이에, 고명은 무한리필이요 국물이 끝내주는 잔치국수, 그보다 더 맛있었던 건 엄마가 비벼주는 매콤한 비빔국수였다. 국수 삶는 날엔 잔치국수 한 그릇씩 담아주고 양푼이에 비빔국수도 꼭 비벼주어서 다 같이 한두 젓가락씩 함께 먹었다. 그 기억 때문인지 지금의 나도 국수를 삶을 때면 마지막에 꼭 비빔국수로 마무리한다.
이렇듯 부지런하고 솜씨 좋은 엄마 덕분에 굳이 식당을 가지 않고도 맛있는 음식을 건강하게 많이 먹고 자랐다.
그 많은 음식들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외식 대표 메뉴가 있었으니 바로 자장면이다. 예나 지금이나 자장면은 어린아이들 입맛에 제일 맛있는 음식이 아닐까.
당시 외식은 하지 않았지만 한 번씩 배달은 시켜주셨는데 지금이야 전화만 하면 고기도 구워서 가져다주는 세상이지만 그때는 배달음식 하면 중국집이 거의 대표적인 메뉴였다. 특히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허락(?)되었던 외부음식은 짜장면과 아빠가 퇴근길에 사 오시던 치킨이 전부였다.
비가 많이 오던 날에 엄마와 아빠가 화투를 치고, 게임에서 이긴 아빠가 기분이 좋아 시켜주었던 짜장면. 토요일 점심 무렵 옆집 아주머니와 시장에 장 보러 가시면서 옆집 언니 동생들과 먹으라며 미리 시켜주고 가신 짜장면. 오이채와 완두콩 몇 알 곱게 올려진 어느 집 짜장면과 서툰 젓가락질로 통조림 옥수수 골라먹기 바쁘게 했던 짜장면, 고기며 채소며 죄다 갈아놔서 마치 토한 거 같다며 먹기를 망설이다 괜히 엄마한테 한대 쥐어 박혔던 짜장면까지. 추억도 많고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는 항상 맛있는 짜장면이었지만 나에게 더 특별한 이유는 엄마가 해줬던 그 맛 때문이다.
엄마는 짬뽕은 가끔 해줬었는데 짜장은 그렇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에 짜장면 한번 해보자 하시며 춘장을 사 오셨다. 아무래도 집에서 해 먹으면 마음껏 먹을 수 있기에 짜장면을 먹는다는 기대에 부풀어 엄마가 시키기도 전에 감자도 깎고 양파도 다듬었다. 얼른 짜장면이 완성되기만을 기다리며 똥마려운 강아지 마냥 부엌을 들락날락거렸다. 이윽고 두툼한 칼국수 면 위로 먹음직스러운 짜장소스와 채 썬 오이가 올라가고 기다렸던 만큼 빠른 동작으로 면을 비벼 입에 넣었다.
'윽. 뭐지?... '
우리의 반응을 살피는 듯한 엄마의 눈.
"맛있다 엄마!"
면을 끊기도 전에 서둘러 말한다.
그제야 엄마의 입안으로 한 젓가락 후루룩 빨려 들어간다. 이제는 엄마의 반응을 살피는 내 눈. 고개를 갸웃하며 한 젓가락 더... 그리고 한참 뒤 입을 뗀 엄마.
"이상하네.. 왜 이리 새콤하지?"
엄마의 짜장면은 그동안 먹어 온 달달하고 부드러운 그것과 맛이 달랐다. 조금 텁텁하고 조금 짜고 그리고 아주 많이 시큼했다.
그 뒤로도 엄마는 몇 번의 시도를 더 했고 시큼한 맛이 처음보다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중국집 짜장면의 맛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엄마는 집에서 만든 짜장면은 별로 맛이 없다고 했지만 그 낯설었던 맛도 몇 번 먹다 보니 익숙해진 건지 나는 시큼한 짜장면이 좋아졌다. 엄마의 짜장은 면보다 밥 위에 올려 먹는 게 더 맛있었다.
어릴 때는 매일매일 먹으라 해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던 짜장면. 어른이 된 지금은 절대 그럴 수 없을 것 같지만 엄마가 해주셨던 시큼한 짜장면이라면..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엄마가 되어 만드는 짜장도 내가 기억하는 맛처럼 조금 시큼하다.
물론 우리 아이들은 달달한 중국집 짜장을 더 좋아해서 잘 안 먹는다. 하지만 가끔 그 시절 다섯 자매가 옹기종기 모여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며 후루룩 입에 넣기 바빴던 그 맛이 그리울 때면 나는 오롯이 나를 위해 춘장을 볶는다. 그때처럼 시끌벅적하게 함께 먹어줄 언니 동생은 이제 가까이 없지만 나의 추억에 공감해주며 시큼한 짜장에도 군말 없이 맛있게 먹어주는 남편이 있어 그 시간이 외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