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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한복이 Sep 07. 2022

그렇지만 다행입니다

첫 직장에서 만났던 동생이 있다.

가늘고 톤이 높은 목소리에 수다스럽기까지 해서 처음엔 조금 독특해 보였지만 웃음에 거짓이 없고 자기감정 표현이 조금은 서툴어도 늘 솔직했던 아이.

살짝 풍기는 백치미가 매력이던 순수했던 그 아이는 아기 때 돌아가신 엄마 사진을 늘 품고 다녔다. 이미 모서리가 낡아서 부드러워진 사진을 보며 엄마를 그리워했다.

나와 겨우 두 살 차이였지만 한참 어린 동생 같았던 그 애가 어쩐지 신경 쓰여서 자꾸 챙기게 되었고 그 애도 유독 나를 잘 따랐다.

무채색의 나와 통통 튀는 형광색의 그 아이가 어울려 다니는걸 사람들이 의외다 할 정도로 우리는 많이 달랐다. 그럼에도 금세 가까워졌고 같은 집에서 함께 먹고 자고 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는 없는 끈끈한 무언가가 우리 사이에 생겨났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퇴사를 했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지만 타 지역이고 각자의 생활을 하다 보니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1년에 몇 번씩은 꼭, "언니가 해주는 밥 먹고 싶어요"하며 반갑게 연락이 왔다. 그러면 우리 집으로 불러 우리가 함께 살았을 때처럼 밥을 해 먹였다. 몇 번을 말해도 질리지도 않을 옛날 일을 회상하며 함께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그 애가 집으로 돌아갈때면 아쉬운 마음을 가득 담아서 미리 만들어 둔 밑반찬을 조금씩 담아 손에 쥐어 보냈다. 늘 친정 오는 마음으로 온다고 고마워 했고 나 역시 그런 마음이었다. 나를 만나 예전처럼 속상한 일도 다 풀어놓았고 너무 좋은 사람을 만나 사랑받고 있다는 얘기도 했다.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 게 참 좋았다. 자주 보지 못한 만큼 모아두었던 보따리를 풀어내며 후련해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늦지 않은 나이에 곧 그 남자와 결혼을 했고 두 사람을 공평하게 나눠 닮은 고운 두 아들도 낳았다. 늘 덜렁대던 애가 아이들은 야무지게 잘 키우는 게 그렇게 기특할 수 없었다. 요리에 소질도 없고 자신도 없어하더니 엄마가 되고부터는 아이들의 밥상을 제법 근사하게 차려냈다. 정작 본인은 엄마를 기억하지도 못하면서 누구보다 훌륭하게 엄마 역할을 해가고 있었다. 너무 대단해 보였고 그런 엄마를 만난 고운 두 아이들에게도 복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바빠서 정신없던 아침에 '언니'라는 두 글자만 찍힌 메시지를 확인했다. 지난밤 늦은 시간에 온 메시지였다. 나중에 전화해야지 해놓고 깜빡 잊고 말았다.

며칠이 지나고서야 생각나서 아차 하는 마음에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그 뒤로 생각날 때마다 몇 번의 전화를 더 걸어보았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바쁜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사이 몇 개월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고서야 한참만에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반갑게 전화를 받은 나에 반해 그쪽은 아니었다. 아직 오전 시간이었음에도 살짝 취한 듯한 목소리였다.

말도 안 되는,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해대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정신 차리고 똑똑히 다시 말해보라고 다그쳤다.


그날은 아이들의 소풍날이었단다. 좋아하는 젤리를 주머니에 넣고서 신나게 손을 흔들며 등원을 했던 둘째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아파트 단지 내의 어린이집이라 아파트 주민이 운전하는 차에, 그것도 바로 집 앞에서.

겨우 3살이었다. 등원한 지 한 시간 만에 주검이 되어 돌아온 아들을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제법 담담했다. 그 목소리에 내 가슴이 찢기는 것 같았다.

그 어린것을 혼자 먼 길 떠나보낸 것만 해도 미칠 지경인데 심지어 운전자와 소송 중에 있다고 했다. 말 그대로 사고였기에 대단한 보상을 원한 게 아니었다. 하루아침에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진심 어린 사과는커녕 본인의 잘못이 없다고 나오는 그 사람과 뒤따라오는 아이들을 챙기지 않고 혼자 앞서 걸었던 인솔교사에게 꼭 아이 몫의 사과를 받아내고 말 거라고, 너무 지치고 힘들지만 엄마로서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풀이 죽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의 죽음 앞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맨 정신으로 멀쩡히 살아 있는 게 죄스럽다고 했다.

아직 아기인데, 혼자 너무 무서울 텐데 엄마가 같이 가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겨우 나 같은 엄마를 만나게 된 게 너무 미안하다며 자꾸 자기 탓을 했다.

도저히 이 아이를 가슴에 묻고 살아갈 용기가 없다고, 못할 거 같다고 했다.

하늘이 노래졌다. 왜 이 아이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원망스러웠다.

그 상실감이 얼만큼인지 가늠조차 안 되는 큰 시련 앞에 감히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위로랍시고 흔히 하는 말들이 그 아픔에 비해 너무 가벼운 것 같아서 꺼내기가 조심스러웠다.

그저 첫째도 지켜야 되지 않겠냐고. 너는 여전히 엄마라고. 아이에게는 전부인 엄마가 무너지면 아이의 세상도 무너지고 마는 거라고.

얼마나 아프고 힘들지 상상하는 것조차 상상이 안되지만 너는 할 수 있다고. 꼭 해냈으면 좋겠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그 아이를 위해 내가 뭔가 해줄 수 있는 게 더 있지는 않을까 마음이 자꾸 초조해졌다.

그게 대체 무엇일지 알 수 없어 답답했고 미안했다.

그저 틈틈이 안부 메시지를 보내주면서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꼭 행복해지기만 바랄 수밖에.

시간이 참 빠르게도 흘렀다. 끝도 없는 이 긴 시간을 괴로워하며 보낼 걸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쓰렸지만 한편으론 차라리 그 아이의 시간이 휙 하고 얼른 지나버렸으면 했다. 시간의 힘을 믿기에. 엄마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곁에 남은 큰 아이를 위해서라도 조금은 무뎌지길 바랬다.


3년 정도 지난 것 같다. 사고가 있고 그 아이에게 먼저 연락이 온 것이.

일은 잘 해결되었고 큰 아이도 잘 커주고 있다고.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엄마가 되고 싶지는 않다며 이제 술도 끊었다고 했다. 단단한 목소리만큼 그 아이는 많이 안정이 된 것 같았다.

통화가 끝나갈 때쯤이었다.

"우리 못 본 지 진짜 오래됐다... 한 번 갈께요. 언니가 해주는 밥 먹고 싶어요."

감사했다. 그 고통의 시간을 무사히 지나온 것도. 그 목소리를 다시 들려준 것도.

그 아이의 뜸한 안부가 다시 일상이 되어 가는 게 눈물겹도록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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