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시원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내 맘같이 눅눅하던 날의 점심이었다. 미역국 두 그릇을 시켜놓고 마주 앉은 우리는 말이 없었다.
그날 아침에 남편과 신경정신과를 다녀왔다.
요즘 통 잠을 이루지 못하는 본인도 진료를 받아볼 겸 같이 가보자고 해서 내키지 않았지만 따라나섰다.
내과의사가 말한 것처럼 굳이 병원에 가서 확인해보지 않아도,
2주 이상 지속된 우울감과 식욕감소, 불면증, 무기력감 등의 최근의 증상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당연히 나는 [남들보다 심각한 수준의 우울한 상태]였다. 원한다면 도움이 될 약을 처방해줄 수 있다고 하셨지만 내가 원한 치료방법은 아니었다.
마음에 든 병에 입으로 삼키는 약이 무슨 소용일까. 가시 돋쳐 상처 난 마음을 지금 당장 약으로 잠재워놓는다 한들 뒤탈이 없을까.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전문의의 입을 통해 직접 확인하고 돌아온 마음은 더 너덜너덜해졌다. 더군다나 그날은 나의 서른아홉 번째 생일이라고 했다. 언제 가입한지도 모르는 쇼핑몰에서 보내온 축하 쿠폰을 받고 나서야 그날이 그날인 걸 알았다.
어제까지 기억하고 있었는데 깜빡 잊어버렸다던 남편의 그럴듯한 핑계에도, 달력에 동그라미를 쳐두었음에도 바쁘게 다니느라 달력을 미처 보지 못했다며 미안해하시던 어머니의 말에도 서운한 마음만 커질 뿐이었다.
우리 엄마도 챙긴 적 없는 생일이었고 그동안 나에게 생일은 그리 특별한 날도 아니었다. 이전까지 남편은 내 생일을 그냥 지나친 적이 없긴 했지만 어쨌거나 원래 날짜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었고, 어머님은 나를 만난 이후 단 한 번도 그날을 그냥 지나치신 적 없었고 겨우 딱 한 번 깜빡하셨을 뿐이었다. 아이들을 키우며 좁아진 인간관계 탓에 어차피 내 생일을 기억하고 축하해주는 사람들도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왠지 서러웠다. 나의 존재가 하찮게 여겨져서 더 그랬다. 나조차 잊어버린 나의 생일날이 너무 초라해서 울음이 터졌다.
태어나 처음으로 가 본 미역국 전문점에서 진심이건 아니건 사과를 하고 있는 남편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미역국을 앞에 두고 울었다. 엄마가 있었다면 밥상머리에서 운다고 한 대 맞았을지도 모른다.
왜 하필이면 그 해의 내 생일을 약속이나 한 듯 다 잊어버린 거냐고. 매번 잊어버렸더라도 그해만큼은 다들 기억해주지 그랬냐고.
확인받고 싶었던 걸까. 아직도 나는 너에게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일날의 가벼운 축하 겨우 그것으로라도 확인시켜주었더라면 조금은 나아졌을까.
겨우 몇 술 뜨고 식당을 나와보니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채 여전히 눅눅했다. 날씨도 내 마음도.
흔히들 말하는 쓸쓸하다던 그 계절의 분위기 탓이었을까.
자꾸만 눈물이 났다.
어쩐지 더 쓸쓸하고 어쩐지 더 외롭고 어쩐지 더 슬펐다. 이런 나의 처지를 깨닫게 되자 서러움이 가득 묻은 눈물이 닦아내기가 무섭게 자꾸 흘러나왔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그랬다.
나에게 무슨 일이 있을 때 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배운 적도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도 못했다. 나이를 이렇게 먹을 때까지 어린아이처럼 그저 울기만 하였다.
운이 좋아 내 울음을 알아차려주는 은인을 만난다면 다행이었지만 그런 행운이 쉽게 올리 없었다. 거의 모든 울음은 나 혼자 멈추었다. 상대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서둘러 눈물을 닦았다. 내 가슴은 계속 울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갈수록 감정의 기복이 커졌다.
남편을 상대로 아예 작정이라도 한 듯 소소한 일들을 다 걸고넘어졌다. 그러다 남편이 더는 받아주지 못하고 터져 버릴 때쯤 울며 사과를 했다. 그러고 나면 자괴감에 빠져 스스로를 탓하고 비난했다.
불안의 연속이었다. 위태로웠다.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왜 자꾸 이러는 건지. 답답한 마음에 못난 나를 혼내기라도 하듯 가슴을 내리쳤다.
갈수록 울음조차 시원하게 나오지 않았고 울어도 더 이상 후련해지지 않았다. 내 가슴 안에 뭔가 꽉 막혀있는 게 틀림없다. 너무 답답하고 숨이 막힌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하는 거라곤 주먹을 움켜쥐고 가슴을 치는 것뿐이었다.
어떤 의욕도 없었다. 숱하게 넘어져봤지만 이번에야말로 어지간히 커다란 구덩이에 빠졌나 보다. 아니면 그동안 내 마음도 모르고 아무렇지 않은 척 툭툭 털어버렸던 흙먼지들이 한꺼번에 달라붙어 그 무게를 이기지 못했거나.
눈이 꺼지고 갈수록 초췌해졌다.
말하는 것도 귀찮고 어떤 날은 숨 쉬는 것도 귀찮았다.
숨은 쉬고 있는 건지 의식을 하지 않으면 그대로 숨이 멎어버릴 것만 같았다.
이대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내가 지금 살아 있기는 한 걸까.
그런 것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무뎌졌는데 마음은 왜 이렇게도 아플까. 만져지지도 않아서 달래줄 수도 없는데 어쩌자고 이렇게까지 아픈 거야 대체.
창밖의 초록잎은 어느새 따뜻하게 물들어가고 있었고 그럴수록 나는 더 쓸쓸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