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보 심리상담이라도 받으러 갈까. 나도 같이 갈게.
가서 속에 있는 말 다 하고 나면 좀 낫지 않을까.
신경정신과를 가면 어떤 도움을 받을 줄 알았던 남편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내가 약을 먹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수척해지는 나의 몰골에 남편은 매일같이 빌었다. 하지만 별로 생각이 없었다. 숨쉬기도 이렇게 귀찮고 성가신데 낯선 사람 앞에 앉아 내 얘기를 하라니. 심지어 자랑할 일도, 듣기 좋은 말도 아닌데.
겨우겨우 아이들의 등 하원을 시켰다. 사람들이 무섭고 불편해서 말은 점점 짧아졌다. 하지만 밖에서는 내색할 수 없었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코로나 예방접종 후유증이라고 둘러댔다. 나의 우울이 밖으로 새어 나오면 다 끝나버리고 말 것만 같았다. 억지로라도 감추고 꽁꽁 싸매야 할 것 같았다. 사람들 앞에서 아무 일도 없는 척 다 좋고 행복한 척을 했다. 어이없지만 그게 아이들을 지키는 방법 같아 보였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거짓말인데, 매일 가식을 떨었다.
그렇게 집에 들어오면 청소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었다.
더 이상 사무실도 나가지 않았다. 아빠에게도 가지 않았다.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노릇'들이 너무 무겁고 부담스러웠다.
어차피 잘하던 것도 아니었다.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데 아무렇지 않게 그 노릇들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이 편한 것도 아니었다.
집안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가족들에게 미안했고, 출근을 하지 않아서 마음이 불편했고 혼자 있는 아픈 아빠를 들여다보지 않는 것에 대해 죄책감이 들었다.
하고 싶지 않아서 하지 않았는데 그럴수록 나의 마음은 더 메마르고 아파졌다.
당연히 잠도 자지 못했다. 깜빡 잠이 들었다가도 밤새 수십 번도 더 일어났다.
나만 빼고 모두가 잠들어버린 새벽은 더 답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갑갑한데 숨이 막히도록 고요해서였는지 눈치 없는 달밤이 아름다워서였는지 새벽에는 눈물도 많아졌다.
소리도 없이 흐르던 눈물은 이내 주체가 안될 만큼 뜨거워지고 말았다. 곤히 잠든 아이들이 깰까 봐 옷방에 숨어 들어가 울고 또 울었다.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숨죽인 채 흘리는 눈물은 가슴에 또 맺히고 만다. 반사적으로 내 주먹은 또 가슴을 쳤다.
어떤 날은 다 내 탓 같다가도 어떤 날은 다 남 탓 같았다.
그런 나를 보고 남편은 어쩔 줄을 몰라했다. 남편은 자기에게 다 쏟아부으라고 했지만 말하기 싫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어떤 말이든 꺼낸다고 한들 당신은 나를 이해할 수나 있을지.
어차피 내가 아니면 아무도 나를 모른다. 그리고 지금은 나도 나를 모르고 있다.
자기 마음대로 또 가슴팍을 때리려는 못된 내 주먹을 남편이 막아섰다. 실성한 듯 울부짖는 내 힘을 당해낼 수 없었던 듯 이번엔 내 가슴팍 위에 자기 손바닥을 대었다.
| 여보 제발 그만해. 자기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자꾸 이렇게 때려...
어떡해, 이만큼 부어올랐네...
가슴뼈가 부어올랐다는 건지 깜짝 놀라 내 윗옷을 올려 살펴보던 그는 다시 한번 크게 놀랐다.
| 여보 어떡해. 피멍이 다 들었잖아. 대체 얼마나 때린 거야 진짜...
그만해. 답답하면 차라리 나를 때려.
남편은 흐느끼며 나에게 빌었다.
| 오빠... 나 여기는 하나도 안 아파. 이렇게 온 힘으로 때려도 아무 느낌이 없어. 마음이 너무 아파서 이 정도는 하나도 안 아프다고.
| 미안해, 여보. 다 내 탓이야...
내가 당신 꼭 고칠게. 원래대로 되돌려놓을게. 약속할게.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계속 이대로 살고 싶은 걸까.
무엇 때문에 나는 이렇게 버티고 있는 걸까.
그렇다고 이대로 끝내버리기엔 내가 너무 아까웠다.
나도 모르는 사이 불안에 잠식당해버리고 말까 봐 무서웠다. 어떻게 해서든 불안을 떨쳐버려야 했고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무엇보다 다 놓고 싶었던 마음 이면에는 우리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했다. 그러려면 내가 먼저 행복해야 하는데 지금의 나는 아이들에게 불안을 물려줄 수밖에 없는 못난 엄마 노릇을 하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가만히 눈을 감고 아이들을 떠올렸다.
서툴렀지만 온 마음으로 키워낸 선물 같은, 외롭고 힘겨웠던 긴 시간을 견뎌내게 한 기적 같은, 내 마음에 평안을 안겨준 축복 같은 그런 곱고 고운 아이들.
살며시 눈을 떴다.
되돌릴 수는 없어도 되살릴 수는 있겠지.
다시 살아지기는 하겠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를 위할 마음이 없다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힘을 내야 한다.
고집을 꺾고 남편의 말을 듣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