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중독증

네 번째 봄

by 새봄

5살 무렵, 엄마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새벽 6시에 일어나 수학 학습지를 풀던 아이가 있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책상 앞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사실은 벗어난다는 개념조차도 몰랐다. 나도 모르게 책상에 중독된 것이다. 책상은 익숙한 곳이지만 그 생각조차도 들지 않을 정도로 나에게 깊게 스며들어 있다.


그것을 나는 ‘책상중독증’이라고 부른다. 책상중독증의 대표적인 증상은 책상을 벗어난 경우, 금단 증상 (이라고 불리는 것) 이 온다. 아무것도 하지 못할 거 같은 불안감과 두려움이 머릿속을 지배한다. 책상 앞에 앉아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정신을 차리면 책상이,


‘음, 그래. 어김없이 오늘도 왔구나’


라며 나를 반긴다. 대학생이 되어도 별 다를 바가 없었다. 수능이 끝난 후 드디어 책상에서 탈출한 나는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잠시 살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집 책상이 아닌 설계실 책상이 나에게 둘만 아는 신호를 보낸다. 어김없이 매일 설계실에 가고, 편한 의자에 앉아 불편한 책상에 팔을 올려두고 마우스를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도면을 생각 없이 그리다 보면- 점과 선을 잇고, 선을 이어 네모를 만들고, 네모를 칠하다 보면 - 낮인지 밤인지 모를 시간들이 반복된다. 도면을 완성한 순간에는 그 모든 시간들이 사라지고 오직 도면만이 분명하게 남는다.


책상을 떠나보려고도 했다. 마치 ‘책상과의 슬픈 이별 이벤트’를 만들며 일부러 침대에서 작업해 보기도 하고, 공원에서 스케치를 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책상 앞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도 무언가를 놓치고 있을 거라는 알 수 없는 예감이 들었다. 결국 다시 책상으로 돌아온 나 자신을 보며 나 역시 영원히 그를 떠날 수 없겠구나라는 확신이 든다. 어쩌면 책상은 단순한 가구가 아닐지도 모른다.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버리는 공간이자, 동시에 나를 가둘 수밖에 없는 감옥과도 가까운 어떤 형태일 지도 모른다. 익숙함과 탈출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나는 여전히 책상 앞에 앉아 있고 언젠가 떠나갈 날만을 기다리기만 한다.


책상에 앉아 하지 않는 활동들은 없을까. 요즘에는 집 앞 공원이 같이 운동이나 몇 분 하자며 나를 유혹하지만 책상이라는 악동이 나를 더 큰 목소리로 불러들인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책상의 유혹을 받아들이는 것이 일종의 이치지만 그것을 거절한대도 마냥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 기분이다. 하지만 그런 것이 마냥 쉽지만은 않다. 어쩌면 책상 앞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생산적인 무언가 (물질이든, 무형이든)를 도출해야 할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하고 있는 설계 또한 도면을 요구하고, 도면은 결국 손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을 요구한다. 일상 속에서 너무 많은 일들이 쉴 틈 없이 주어질 때 느끼는 압박감으로 인해 우리는 책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책상은 더 이상 단순한 도구가 아닌 것으로 결론을 내야겠다.




아, 그런데 나 이 글 책상에서 쓰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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