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봄
무언가를 시작할 땐 많은 결심이 필요하다. 그리고 많은 ‘처음’을 지나 우린 현재에 다다랐다. 끝을 알 수 없는 길을 걸어가기로 결심했을 때 우리는 경계를 알 수 없는 새로움의 어느 선상에 오른다.
약간의 두려움과 동시에 설레는 기분.
어쩌면 이 시작은 아무것도 아닌 것일 수도, 다르게 생각한다면 인생의 큰 획을 긋는 행위이기도 하다.
건축을 전공하는 나 또한 그랬다.
몇 년 전 처음으로 대학교를 들어가 크리틱 교실의 문을 열었을 때. 그 공기가 얼마나 새로움으로 가득했는지 지금에서야 기억난다.
‘여기가 우리들의 공간이구나’
모든 게 조금씩은 어색했다. 그러나 건축학과생이 되어 설계실이라는 일종의 아지트가 생겼다는 점은 당시 1학년이었던 나를 매우 설레게 했다. 심지어 혼자가 아니라 동기들과 같이 쓴다니. 이곳에 얼마나 다양한 바람이 불어올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그날은 햇볕이 따스한 날이었다. 추위와 따스함 그 어느 사이에 학교 중정의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그 빛은 나를 지금까지 존재하게 했다. 설계실은 방학 동안 쓰지 않아서인지 먼지가 날렸다. 조용한 공기 속 서서 서로를 마주 보며 처음을 맞이하던 우리들은 교수님과 간단한 청소를 하고 수업을 시작했다.
‘주변의 물건을 그려오라’는 첫 과제에 나는 내가 매던 연두색 가방을 그려갔다. 가방은 지금은 내 취향의 변화로 인해 쉽사리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처음 크리틱을 받던 기억은 잊고 있었지 결코 사라지진 않았다. 트레이싱지 속 삐뚤빼뚤하게 그린 곡선의 연두색 가방 그림은 결심을 행동으로 옮겼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 가방을 그리기 위해 연필로 첫 선을 긋던 그 순간부터 나는 매 순간 새로움을 경험한 것이다.
그렇게 시작을 받아들였다.
건축을 전공하며 만들어갔던 다양한 문장들은 어느새 한 권의 책이 되어가고 있었다.
문득 첫 페이지부터 쭉 넘겨보니
나는
무수한 도전을,
무수한 실패를,
무수한 경험을 하며 시작에 적응했구나 싶다.
그리고 고학년의 건축학도로서 나의 시작점이자 과거를 바라본다. 지난 4년간 건축을 처음으로 알 게 된 시작점에서 나는 어디까지 왔는지.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새로움으로부터 얼마나 멀어졌는지.
뒤를 돌아보니 새로우면서도 두려웠던 그 환경은 어느새 나의 안전지대가 되어 있었다.
몇 번의 학기를 보내는 동안 차곡차곡 쌓여온 안정감과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이 기반이 되었기에 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졸업을 앞둔 상황에서 이렇게 또 한 명의 건축학도는 셀 수 없는 무수한 시작을 준비한다.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한 기대감과 도전 정신 그리고 정해지지 않은 미래에 대한 처음을 받아들였던 나의 첫 마음.
건축에 대해 아는 것도 없었지만 그저 누군가와, 무엇과 함께하고 탐구하고픈 마음으로 온 시간을 쏟았던 나의 그 마음과 열정.
또 다른 새로움의 시작인 오늘
첫날에 맞이한 그 따스한 햇빛을 기억한다.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그 설렘과 희망을 가지고 건축을 대하고 싶다.
현재 당신은 무언가의 첫 마음에 얼마나 가까워져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