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봄
저마다의 텃밭이 있다.
때로는 황량하기도, 때로는 풍족하기도 한 이 땅을 무엇으로 채우느냐는 우리들의 몫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파종’이 있다. 3-4일 이내에 싹을 틔울 수 있는 열무부터, 약 한 세기를 기다리며 겨우 발아에 성공했던 연꽃까지. 마치 이른 봄의 새싹을 기다리는 농부처럼 우리는 고심해서 땅에 어떤 씨앗을 뿌릴지 고민하곤 한다.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그렇다. 건축이라는 분야를 알게 된 지 3-4년 차였던 어느 날에도 다름없이 하루하루를 꽉꽉 채워 살았다. SNS에 나오는 ‘여러 가지 유혹’에도 굴복하지 않고 설계실 안에서의 온전한 삶을 살았고 매일매일 종이를 어떻게 채울지 고민했다. 새벽에 일어나 새벽에 잠들기를 반복했다. 트레이싱지를 찢고 샤프에 샤프심을 채워 넣어 주어진 대지에 마구 스케치를 하기 시작했다. 스케치는 어느새 건물의 대략적인 형태인 매스가 되었고 시간이 갈수록 종이의 개수는 쌓여갔다. 건물의 용도를 정하고 또 다른 그림을 그리고 관련된 글을 쓰기를 반복했다. 흰 종이는 어느새 샤프의 검은 색으로 물들어 갔다.
…….
정신을 차리니 중간 마감이 끝나 있었다.
주변의 씨앗이 다 자라 수확을 할 때쯤, 그러니까 10월의 어느 날, 그날 길을 가다가 맞이한 따뜻한 바람 한 숨에 자동으로 걸음이 멈췄다.
‘내가 지금 뭘 하는 걸까.’
문득 생각이 난 건, 이대로 살면 안 되겠다는 것이다. 건축을 하고 있지만 왜 하는지도 어떻게 하는지도 심지어 내가 건축을 하는지도 모를 지경에 다다랐다. 누군가가 건축에 관한 육하원칙의 종이를 주었을 때, 한 글자도 적지 못할 것 같았다. 스스로에게 왜 열심히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해 보고, 이에 대한 대답을 찾다 보니 ‘설계를 잘하고 싶다’에 도달했다. 그저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가기만 해서 건축가가 된다면, 과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다면,
‘내가 지금 뭘 해야 할까.’
라는 생각에 꼬리를 물다 보니 건축에 대한 근원적인 생각, 즉 ‘설계를 잘해서 돌아오는 보상’이 아닌, ‘과연 우리는 어떤 목적으로 공간을 설계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건축가는 공간을 설계하는 것 그 이상을 넘어 공간이 어떻게 사용될지에 대한 거시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며, 그 공간이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몇 자 적기로 한다.
건축을 하는 이들의 머릿속에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있다. 여러 가지의 무한한 가능성을 담고 있는 씨앗이 있는 셈이다. 그 씨앗의 싹을 틔워 파종을 하면 곧이어 온전한 열매인 건물이 된다. 건축을 하는 이들 뿐만이 아니다. 누구나 빈 공간을 만나면, 그 자리에 무엇을 세울지 생각하며 저마다의 파종을 시작한다. 즉, 많은 사람들은 씨가 발아할 만한 땅을 보면 씨를 '뿌리는 것'이라는 전제로 세상을 바라본다.
이처럼 사람들은 빈 곳을 그냥 내버려두지 못한다. 땅의 입장에서 바라보자면, 어쩌면 인간이라는 생명체는 제 멋대로 자신을 차지하여 텃밭을 일구고 마는 이상한 생명체로 알지 모르겠다. 인간은 무의 공간을 활용하고 구조화하려는 본능을 지닌다. 로지에의 Primitive Hut을 떠올려 보자. 자연의 일부였던 땅에 질서를 부여하고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은 인류의 가장 본질적인 행위다. 하지만 건물과 도시를 다루는 건축가라면 여기서 멈추지 말고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우리(건축가)는 ‘씨를 뿌리는 자’ 라고만 설명할 수는 없다. 그 씨앗이 공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뿌린 씨앗은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 그리고 때때로 그 질서가 울타리가 되기도 한다. 울타리는 단순히 물리적인 경계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울타리와 같은, 건축을 통해 만들어진 질서는 때때로 사람들을 가두고 배제하기도 한다. 여기서 건축가들은 결국엔 ‘씨앗을 뿌리는 사람’ 의 역할 그 이상도, 그 이하의 역할도 할 수 없다는 것에서 오는 상당한 괴리감을 느낄 수도 있다.
씨앗을 뿌리는 파종이라는 행위를 통해 특정한 프로그램과 기능을 가진 건축물들은 새로운 공간을 형성하면서 동시에 경계를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우리의 파종은 누군가에게는 접근이 제한된 공간, 혹은 특정한 방식으로만 사용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우리가 뿌린 씨앗의 결과는 늘 우리가 기대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씨앗마다 다른 조건이 필요하듯, 공간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어떤 공간은 빠르게 자리 잡고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만, 어떤 공간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의미를 깨닫게 된다. 때로는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어떤 공간은 철저히 계획된 대로 활용되는 반면, 어떤 공간은 계획을 벗어나 예기치 못한 삶을 담아내기도 한다.
이를테면,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을 생각해 보자. 이 건축물은 1929년 바르셀로나 세계박람회를 위해 세워졌고 박람회가 끝난 후 철거되었다. 그러나 60년이 흐른 뒤 그 가치가 재조명되며 재건되었다. 당시에는 그저 박람회 기간 동안 존재할 건축물이었지만 시간이 지난 후 그 건축적 가치가 인정되었고, 결국 다시 태어났다. 반면 그의 제자인 김종성 건축가는 서울의 힐튼 호텔을 오랜 시간 동안 기품 있는 건축물로 남길 생각으로 설계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호텔은 본래의 기능을 잃고, 결국 철거될 운명에 처해 있다.
공간이 어떻게 남을지에 대한 여부는 과거 해당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의 의도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향후의 삶에 매우 밀접한 곳들을 구축하는 일에 좋은 일일 수도, 좋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을 주관하는 입장에서 씨를 뿌리는 이들의 딜레마는 커질 수도 있다. '우리는 정말 씨를 뿌려야 하는가?' '그렇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맞는 것일까?'와 같은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 또한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처음의 시작, 그 무엇인가를 해보기 위한 첫 번째 노력, 그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손길을 간과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첫 번째 씨앗은 결국 누군가의 손에서 뿌려졌기 때문이다. 그것이 현재의 우리가 마주하는 '땅'이 된 것이다. 물론 그 씨앗이 건축가의 손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때로는 그것이 자연의 흐름이나 비건축적 요소들—예컨대 경제적 이유나 정치적 상황—에 의해 형성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에서 우리는 그 씨앗이 자라난 결과물 위에 서 있다. 비록 우리가 그 시작을 만들지 않았더라도 지금의 우리는 그 공간을 해석하고 다시 설계하며, 새롭게 사용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공간을 어떻게 사용할지, 그리고 지금 우리가 짓는 건축이 결국 어떤 미래의 '꽃'으로 피어날지를 고민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몫이다.
공간은 어떻게든 다양한 이유로 변화할 것임에는 확실하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건축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씨앗’으로 도시에 대한 ‘파종’의 행위를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씨앗을 고르고 뿌리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 씨앗이 자라며 공간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그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우리가 뿌린 씨앗이 울타리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그로 인해 형성될 새로운 질서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 그것이야말로 건축가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 아닐까 싶다.
파종이라는 행위는 분명한 목적과 결과에 대한 기대를 품고, 식물뿐 아니라 건축과 사회 전반에 또한 지속적인 관심과 능동적인 참여를 요구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파종은 건축을 공부하는 우리 모두가 깊이 고민해 볼만한 개념이다. 한 개인이 건축가가 된다면 그의 작업 하나하나가 곧 사회에 대한 파종이 될 것이고, 지금 우리 역시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이미 사회에 씨앗을 뿌리고, 그것이 자라나는 과정 속에 놓여 있는 셈이다. 아마 이러한 모든 과정은 명확하게 잘리기보다는 연속적이고 순환하며 사회 속에서 작동하고 기능할 것이다.
오늘도 우리들은 각자의 파종을 가지고, 우리 자신에게 또한 새로운 가능성을 심는다.
건축을 전공하는 ‘우리’ 안의 한 개인으로서, 이제 나 또한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정체성을 가지고 방향을 찾아가고자 한다. 내가 파종을 하며 씨앗을 뿌린 곳들에는 과연 어떤 것들이 자랄까. 그리고 그 씨앗들은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킬까. 나도 그렇지만, 건축가인 우리는 단순히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이 아니다. 사람들이 함께 머물고, 느끼고, 다 같이 변화할 수 있는 생명력이 있는 공간이 자라나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는 사람들이다. 우리들이 뿌리는 씨앗은 물리적인 구조물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씨앗 하나하나마다 사람들이 이 공간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그들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가 담겨 있다. 필자 또한 이와 같은 ‘글’로서 그 가능성을 전하며, 향후 건축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관점과 방향을 제시하고 싶다. 파종한 글감의 씨앗들이 무럭무럭 자라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고, 누군가의 삶을 품을 준비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