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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맘 Mar 06. 2016

3월 워킹맘.
헤어짐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흔한 워킹맘의 더 흔한 마음 앓이.


복직을 하루 앞둔 날,

18개월 둘째는 엄마의 복직을 직감했나 봅니다. 

3월부터 엄마가 일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아이가 알아듣건  말건 숱하게 이야기를 해왔었습니다.

비로소 그 날이, 바로 내일 시작된다는 걸. 세상을 고작 18개월 남짓 살아온 아이도 직감할 수 있나 봅니다. 



아이는 아빠에게도 가지 않고 제 뒤꽁무니를 따라다닙니다. 

자신의 눈에 딱 한 사람. 엄마만 보인다는 듯. 그렇게 저를 졸졸 따라다닙니다. 

그 뿐이 아니었어요. 

영 통잠을 자지 못하고 자꾸 잠에서 깨어 주변에 엄마가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휴직 마지막 날 밤. 

아이는 자신의 볼을 제 볼에 맞댄 채 잠이 들었고, 

조금이라도 자신과 엄마와의 접촉이 끊어지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에서 깨곤 했습니다. 

원래 우리 둘째는 잠이 들면 누구라도 옆에 두지 않는 아이였습니다. 






오랜만에 화장을 했습니다. 

첫날이니 더욱 차림새를 갖추어보았어요. 

넥 부분에 포인트로 보석이 박힌 검정 원피스를 골라 입고, 입술도 칠했습니다. 

평소에는 뿌리지 않던 향수도 뿌렸지요. 

그 시각, 딸 둘이 눈을 떴습니다. 

아이들을 깨우고 싶지 않았는데 전에 없던 인기척에 아이들이 불편했나 봅니다. 

한껏 꾸민 엄마의 얼굴을 보고 첫째는 말없이 몸을 일으키더니 시키지도 않은 세수와 양치를 시작했습니다. 

엄마의 출근이 첫째에게 미치는 영향은 이래요. 

첫째로 하여금. 내 할 일은 내가 스스로 해야 한다는 각성이 들게 합니다.


하지만 둘째는 아직은 이런 사고가 당연히 어렵습니다. 그저 평소와는 다른 엄마의 모습이 마냥 낯설 뿐입니다. 아이는 일어나자마자 고래고래 큰 울음을 짓습니다. 아이를 어르고 달래 보지만, 이번 울음은 쉽게 잦아들 소리가 아닙니다. 그 사이 첫째는 아빠와 함께 등원 준비를 합니다. 자신도 따라 울 수 없다는 걸 아는 나이가 되었어요.


등원 이모님께서 오셨고, 곧 출근시간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아이들과 헤어져야 할지 그동안 머릿속으로 많은 그림을 그려봤었는데, 막상 그 일을 실행하려 하니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겨우 마음을 추슬러, 첫째에게만 인사의 말을 건넸습니다. 등원 이모님따라 유치원 잘 다녀오라는 말에 첫째는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마 첫째는 이런 아침 풍경이 낯설지 않을 겁니다.  


아빠와 엄마가 그렇게 일터에 있는 동안. 고맙게도 첫째는 유치원에서 큰 소리로 자기소개를 했다고 합니다. 유치원에서 찍힌 밝게 웃는 아이의 모습. 그 사진 한 장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참 많이도 울었나 봅니다. 잔뜩 쉬어버린 상한 목소리가 그걸 증명하고 있네요.


이렇게.

'적응'이라는 이름으로, 아이에게 '헤어짐'을 가르친지, 이제 고작 3일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비교적 어린이집에 잘 적응한 것 같았는데, 아이는 아직 엄마와의 헤어짐은 몸에 익히지 않았었나 봐요.

아이는 헤어짐을 배우는 대가로 참 많은 울음을 토해내고 있어요.



퇴근한 엄마를. 둘째는 마주 보지 않습니다.

다용도실 문을 살짝 열고, 그 사이에 다리를 끼운 채, 그저 엉엉 울기만 합니다.

아이의 마음을 도무지 가늠 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힘껏 안아주고 싶은데, 안김도 거부하는 아이를 앞에 두고 저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외출 복장의 엄마에 자지러지게 울었던 것이 떠올라, 얼른 실내복으로 갈아입고 뽀득거릴 만큼 시원하게 세수를 했습니다. 아이는 그제야 제 품에 포근히 안깁니다.

멀쩡히 잘 자라고 있는 아이에게, 제가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일까요.

죄책감에 요 며칠. 깊은 잠에 들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마음고생이 저 뿐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압니다.

또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는 것도 잘 압니다.

이런 마음고생을 우리 둘째보다 더 어린 개월 수의 아이들이 겪고 있음을 잘 압니다.

아이의 요즘 날들은 너무 새로운 날들이라, 딱 그만큼의 진통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숱한 진통 끝엔 부쩍 맛볼 기막힌 성장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잘 압니다.

다만, 아이가 겪을 성장통이 '일하는 엄마'로 인한 것이라는 생각이 괴로울 뿐이지요.




그래도.

요즘의 오늘을. 그리워하며 회상할 날이 반드시 올 겁니다.


-너 그때.'엄마 미어! 엄마 시러!'라고 하면서 다용도실에 다리만 뻗고 엉엉 울었었다?

-푸하하하. 정말? 내가?


이런 대화를 나눌 날이 아마 올 겁니다.

가까운 미래에,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 가족이 그 시절 힘들긴 했지만. 우리 가족 참 대단했다고. 참 멋있었다며. 너희들이 이렇게 잘 커주어 고맙다며. 엉덩이 토닥거리며 칭찬해줄 날들이 올 겁니다.


그 날을 위해서. 요즘의 오늘을 열심히 살아볼 생각입니다. 복직을 하기로 한 선택이 옳다, 그르다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일하는 엄마라서 미안한 마음도 거두어볼 생각이에요. 그냥 요즘의 선택이 훗날 분명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해있기를 바라며, 요즘의 오늘을 살아볼 생각입니다.


헤어짐을 가르치는 대신, 우리 가족이 모두 모인 시간에 그 이상의 진한 사랑을 가르쳐주리라 다짐도 합니다.

지금 우리의 시간은 조금 느리게 가는 듯, 혹독하게 힘든 시간이지만, 

그래. 이런 날들도 있는 거지! 라며 쿨하게 지내보려 합니다.




엄마. 뭐 도와줄 거 없어요?


저녁밥을 뚝딱 먹어치운 첫째가 밥상 닦기를 자처합니다. 

닦는 모양새가 영 서툴지만, 아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예쁜 고사리 손입니다. 

엄마의 기분을 일부러 띄우려는 듯, 아이는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이야기하려 합니다.


-엄마, 종일반 선생님한테 학을 접어드렸는데, 정말 네가 접은 거냐고 물어봤어. 히히. 

- 엄마, 우리 팀은 검정팀이야. 태인이가 연두팀을 하자고 했는데 연두팀은 벌써 있대. 그래서 검정하기로 했지!

-엄마, 내가 자기소개를 하면, 친구들이 '그래그래 반가워!'라고 말해주는 건데, 내가 자기소개할 때 아이들이 엄청 크게 해줘서 진짜 기분 좋았어.

 -엄마. 나 종일반 시작해서 너무 좋아. 그림도 더 많이 그릴 수 있고. 간식도 먹을 수 있어. 나 종일반 좋아 엄마.


이렇게 혹독한 제 겨울인데. 첫째는 주머니 속 따뜻한 손난로 같아요.

우리 가족만의 겨울이 지나면, 곧 봄이 오겠지요. 

그리고 우리는. 더욱 진하고 강하고 끈끈한 가족이 되어있을 거예요. 

그런 믿음만이 필요한 요즘입니다.


 

선... 생님...... 우리 엄... 마가요... 일을 해서요..... 준비물을... 다 못 샀어요.....


지난 금요일. 

학교에 출근했더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어떤 아이가 제 자리로 와 말을 건넵니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엄마가 얼마나 바쁘셨겠어.

괜찮아. 괜찮아. 걱정 마.


괜찮다는 말에 아이가 다행이라는 듯 미소를 지었습니다. 

이 아이도 오늘 집에 가서 "엄마, 학교 정말 재밌었다?!" 말하면서, 

아이의 엄마에게 따뜻한 손난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의 하루가 특별히 즐겁기를 소망했습니다.





아이들의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입니다.

전업맘이라고 해서 힘들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

오늘은 특별히 저를 포함한 워킹맘분들에게 힘을 드리고 싶었어요.

2016년 3월.

우리 잘 지내보아요 :D







초등교사. 김수현.

닉네임. 달콤맘.

맘스홀릭 엄마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블로그. [달콤맘의 달콤한 육아, 달콤한 교육] 운영 중.

http://blog.naver.com/ggoryg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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