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콤맘 Apr 11. 2016

육아를 하는 이유

엉성하기 짝이 없는 이 일을. 우리는 왜 하는가

너 교대 왜 가?


고3시절. 수능성적표가 나온 뒤, 대학교 입학원서를 쓰는 시즌이었나봅니다.

저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친구들에게서 종종 이런 질문을 듣곤 했죠.

그 질문 속에는 아마도 '너는 왜 하필 선생님을 하려고 해? 네 성적이면 더 멋진 대학교와 직업을 꿈꿔도 좋을 것 같은데?'라는 안타까움이 전제로 깔려있었을겁니다.

사실 저도 속이 조금 쓰리긴 했어요.    

멋드러진 캠퍼스가 있고, 그 속에 낭만이 가득할것만 같은 다른 활기찬 종합대학에 비해서, 교대는 단촐하기 짝이 없는 단과대학이었고, 캠퍼스는 고작.... 흔한 고등학교 교정 수준에 불과했으니까요.

그래도 그것으로 인한 쓰린 속을 능히 이길만큼, 선생님이 되고싶긴 했나봅니다.


모교의 중잔(중앙잔디). 다른 종합대학에 비하면 '꼬마잔디' 수준이었지만 :D





"내가 //이라는 건 직선의 단순한 길이 아니라 곡선의 복잡한 길을 걷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그 때다. 그게 사랑이든 복권당첨이든, 심지어는 12시가까울 무렵 버스를 기다리는 일이든, 기다리는 그 즉시 내 손에 들어오는 것은 하나도 없다. 효율성과 경제성의 시각으로 냉정하게 검토해보자면 //이라는 건 굉장히 엉성하게 만든 물건이다."




며칠 전 읽었던 김연수 씨의 산문집에서 본 글귀였어요. 이 구절을 읽는데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교직, 가르치는 일이 딱 이렇거든요. 안타깝게도 눈에 띄는 성과가 바로 보이지 않아요.     

직선의 단순한 길이 교직이라면 성과가 바로 보여야 해요. 인풋이 있으면 아웃풋이 곧바로 있어야 하죠.     

그런데 교직은 생각보다 아웃풋을 맛볼 기회가 적어요. (중,고등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래서 교육을 백년지대계라고 할까요. 백년 후에나 맛볼 수 있는 아웃풋이 바로 교직이라서?



이렇게 아웃풋이 눈에 잘 띄지 않다보니, 아이들과 트러블이라고 있는 날에는 내가 이 어린아이들하고 지금 뭘 하고 있나 하는 자괴감까지 들어요. 고백하건대 저도 신규 시절에는 내가 왜 그토록 교대를 지원한 것인지 회의감에 많이 빠지기도 했어요. 친구들이 왜 교대에 지원한 저를 안타까워했었는지 진심으로 이해가 되더라고요. 그 때 심정으로는, 김연수 씨가 쓴 이 글귀에서 ‘삶’이라는 것을 ‘교직’으로 바꾸어 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에요.      


                                   

“내가 /교직/이 직선의 단순한 길이 아니라 곡선의 복잡한 길을 걷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바로 그 때다.  효율성과 경제성의 시각으로 냉정하게 검토해보자면 /교직/은 굉장히 엉성하게 만든 물건이다.” 



기찻길따라 가기만 하면 쉬운 일.  하지만 삶은. 교직은. 이런 직선코스가 아니다.




효율성, 경제성의 측면에서 볼 때 이렇게 엉성하기 짝이 없는 일을 제가 계속하는 이유는 따로 있어요.     

바로 교육의 힘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에요. 비록 단기간에 그럴듯한 성과는 볼 수 없지만, 교육이라는 건 언젠가 나(=가르치는 사람)로 인해 긍정적인 변화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일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참 좌충우돌 힘들었던 신규시절. 경제성과 효율성 제로의 일을 하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가 봅니다.


그 시절. 굽이치는 곡선길에 있던 저를 세워주었던 노래 '꿈꾸지않으면'이라는 곡에는,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배운다는 건.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엄마가 되고보니, 육아도 교직과 비슷했습니다.           

육아도 교직만큼이나 경제성 제로, 효율성도 제로인 일 같더군요.

직선으로 가면 편할 길이, 도무지 직선으로 가지지가 않으니까요.

책대로라면 당연히 이래야할 아이인데, 내 아이는 대체 왜 이러지 않는 건지.    

이유식을 정량으로 계량해서 만들어주면, 아이도 정량대로 먹어주어야 하는데?    

왜 내 아이는 입을 꾹닫아 버리는 건지. 육아가 직선이 아닌 복잡한 길로 들어가 버리는 건 순식간입니다.

목표를 향해서 똑바로 가고 싶은데 자꾸만 장애물이 생기고 길이 굽이쳐요.    

힐링 좀 해보겠다고 여행을 계획했는데 아이가 보란 듯이 아파요.     

내 육아가 굽이치는 것도 이렇게 한 순간입니다.     


                             

어디 이뿐인가요.    

한 번에 알아듣지도 못하잖아요.     

경제성, 효율성 100%의 일이 만약 육아라면, 내 말 한 마디에 아이가 움직여야 하는데 웬걸요?

한 번에 응해주는 아이가 어디 있던가요.

'해다오.' 하면 해주지 않고, '하지말라고.' 하면 꼭 하는 게 아이들입니다.

하지 말라고 단호히 이야기해도 그 때뿐이고요.  

심지어 그 때에도 안 먹힐 때도 다반사죠.     

역시 육아는 경제성, 효율성 0%입니다.         


                                                 

하루에 세 끼 먹이고, 기저귀 예닐곱 개 갈면 하루가 지나가있습니다.

내가 육아를 안 하고, 밖에서 다른 어떤 일을 해도 이것보단 효율적이지 싶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우는 아기를 달래도 토닥이고,    

하루에도 몇 번씩 토라지는 첫째를 달래고 토닥이다보면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 싶어요.            




그런데.

그럼에도불구하고.

이렇게 우리가 효율성, 경제성 떨어지는 일을 하는 이유는.    

딱... 교직과 같네요.    

나로 인해 내 아이가 언젠가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                              

그러니 위 노랫말을 이렇게 바꿔도 무방하겠죠.          

                       

자라는 건 꿈을 꾸는 것. 
기른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정해진 길이 없어도, 직선이 아닌 험난한 곡선으로 가는 민들레씨앗처럼, 육아는 참 기대가 있는 일.


 


'꿈꾸지 않으면' 노래영상

                                                                                                                                                                                                                                          이 노래를 다시 들으며 생각해보니, 육아는 마냥 비효율적이고 비경제적인 일만은 아니네요.    

엄마노릇이란, 겉으로 보기엔 단순해보여도, 희망을 노래해야 하는    

아주 추상적이고도 복합적이며, 아주 가치있는 놀라운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하는 일이니까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또 글을 쓰는 저도     

오늘도 이런 마음으로 육아 해야 겠죠.    

희망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이 영상 속 아이들 목소리 만큼이나 아주 행복하게 말이에요. 






초등교사. 김수현.

닉네임. 달콤맘.

블로그. 달콤맘의 달콤한 육아, 달콤한 교육 운영 중

(http://blog.naver.com/ggoryggory)


매거진의 이전글 3월 워킹맘. 헤어짐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