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성하기 짝이 없는 이 일을. 우리는 왜 하는가
너 교대 왜 가?
고3시절. 수능성적표가 나온 뒤, 대학교 입학원서를 쓰는 시즌이었나봅니다.
저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친구들에게서 종종 이런 질문을 듣곤 했죠.
그 질문 속에는 아마도 '너는 왜 하필 선생님을 하려고 해? 네 성적이면 더 멋진 대학교와 직업을 꿈꿔도 좋을 것 같은데?'라는 안타까움이 전제로 깔려있었을겁니다.
사실 저도 속이 조금 쓰리긴 했어요.
멋드러진 캠퍼스가 있고, 그 속에 낭만이 가득할것만 같은 다른 활기찬 종합대학에 비해서, 교대는 단촐하기 짝이 없는 단과대학이었고, 캠퍼스는 고작.... 흔한 고등학교 교정 수준에 불과했으니까요.
그래도 그것으로 인한 쓰린 속을 능히 이길만큼, 선생님이 되고싶긴 했나봅니다.
며칠 전 읽었던 김연수 씨의 산문집에서 본 글귀였어요. 이 구절을 읽는데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교직, 가르치는 일이 딱 이렇거든요. 안타깝게도 눈에 띄는 성과가 바로 보이지 않아요.
직선의 단순한 길이 교직이라면 성과가 바로 보여야 해요. 인풋이 있으면 아웃풋이 곧바로 있어야 하죠.
그런데 교직은 생각보다 아웃풋을 맛볼 기회가 적어요. (중,고등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래서 교육을 백년지대계라고 할까요. 백년 후에나 맛볼 수 있는 아웃풋이 바로 교직이라서?
이렇게 아웃풋이 눈에 잘 띄지 않다보니, 아이들과 트러블이라고 있는 날에는 내가 이 어린아이들하고 지금 뭘 하고 있나 하는 자괴감까지 들어요. 고백하건대 저도 신규 시절에는 내가 왜 그토록 교대를 지원한 것인지 회의감에 많이 빠지기도 했어요. 친구들이 왜 교대에 지원한 저를 안타까워했었는지 진심으로 이해가 되더라고요. 그 때 심정으로는, 김연수 씨가 쓴 이 글귀에서 ‘삶’이라는 것을 ‘교직’으로 바꾸어 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에요.
효율성, 경제성의 측면에서 볼 때 이렇게 엉성하기 짝이 없는 일을 제가 계속하는 이유는 따로 있어요.
바로 교육의 힘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에요. 비록 단기간에 그럴듯한 성과는 볼 수 없지만, 교육이라는 건 언젠가 나(=가르치는 사람)로 인해 긍정적인 변화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일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참 좌충우돌 힘들었던 신규시절. 경제성과 효율성 제로의 일을 하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가 봅니다.
그 시절. 굽이치는 곡선길에 있던 저를 세워주었던 노래 '꿈꾸지않으면'이라는 곡에는,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배운다는 건.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엄마가 되고보니, 육아도 교직과 비슷했습니다.
육아도 교직만큼이나 경제성 제로, 효율성도 제로인 일 같더군요.
직선으로 가면 편할 길이, 도무지 직선으로 가지지가 않으니까요.
책대로라면 당연히 이래야할 아이인데, 내 아이는 대체 왜 이러지 않는 건지.
이유식을 정량으로 계량해서 만들어주면, 아이도 정량대로 먹어주어야 하는데?
왜 내 아이는 입을 꾹닫아 버리는 건지. 육아가 직선이 아닌 복잡한 길로 들어가 버리는 건 순식간입니다.
목표를 향해서 똑바로 가고 싶은데 자꾸만 장애물이 생기고 길이 굽이쳐요.
힐링 좀 해보겠다고 여행을 계획했는데 아이가 보란 듯이 아파요.
내 육아가 굽이치는 것도 이렇게 한 순간입니다.
어디 이뿐인가요.
한 번에 알아듣지도 못하잖아요.
경제성, 효율성 100%의 일이 만약 육아라면, 내 말 한 마디에 아이가 움직여야 하는데 웬걸요?
한 번에 응해주는 아이가 어디 있던가요.
'해다오.' 하면 해주지 않고, '하지말라고.' 하면 꼭 하는 게 아이들입니다.
하지 말라고 단호히 이야기해도 그 때뿐이고요.
심지어 그 때에도 안 먹힐 때도 다반사죠.
역시 육아는 경제성, 효율성 0%입니다.
하루에 세 끼 먹이고, 기저귀 예닐곱 개 갈면 하루가 지나가있습니다.
내가 육아를 안 하고, 밖에서 다른 어떤 일을 해도 이것보단 효율적이지 싶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우는 아기를 달래도 토닥이고,
하루에도 몇 번씩 토라지는 첫째를 달래고 토닥이다보면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 싶어요.
그런데.
그럼에도불구하고.
이렇게 우리가 효율성, 경제성 떨어지는 일을 하는 이유는.
딱... 교직과 같네요.
나로 인해 내 아이가 언젠가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
그러니 위 노랫말을 이렇게 바꿔도 무방하겠죠.
자라는 건 꿈을 꾸는 것.
기른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이 노래를 다시 들으며 생각해보니, 육아는 마냥 비효율적이고 비경제적인 일만은 아니네요.
엄마노릇이란, 겉으로 보기엔 단순해보여도, 희망을 노래해야 하는
아주 추상적이고도 복합적이며, 아주 가치있는 놀라운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하는 일이니까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또 글을 쓰는 저도
오늘도 이런 마음으로 육아 해야 겠죠.
희망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이 영상 속 아이들 목소리 만큼이나 아주 행복하게 말이에요.
초등교사. 김수현.
닉네임. 달콤맘.
블로그. 달콤맘의 달콤한 육아, 달콤한 교육 운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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