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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I Dec 18. 2017

겨울 바다

<바다를 보내주는 사람>을 듣다가


커피 그라인더에 원두를 넣고 물을 끓이다가 파도가 치는 소리로 시작하는 노래를 들었다. 전날 버스 안에서 이어폰을 꽂고 들을 때 바깥의 소음에 묻혀 들리지 않던 소리였다. 노래의 제목은 <바다를 보내주는 사람>이다. 커피를 갈면서 노래의 가사에 집중했다. ‘회색빛 도시’, ‘사랑을 믿지 않는 사람들’ 사이 바다를 보내주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은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읊조린다. 누군가의 연서를 듣는 기분을 느끼다가 마지막으로 바다에 간 게 언제였는지 생각했다. 필터에 담긴 원두가 빵 모양으로 부풀어 오르고 집 안에는 겨울 빛이 들었다가 금방 사그라진다. 지금 눈앞에는 설거지가 있고 책갈피가 꽂힌 책이 있고 몇 시간 후에 닥칠 출근 시간이 있지만 즐거운 ‘딴 짓’을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바다가 그리운 계절은 늘 겨울이었다. 겨울의 바닷바람은 몸의 온기를 탈탈 털어내서 정신까지 바투 서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특히 날씨가 맑은 날의 겨울 바다는 하늘과 바다가 경계 없이 잘 닦인 유리창 같아서 바라보는 눈까지 맑게 한다.


상상 속에서 바다에 간다. 우선 가는 길에 휴게소에 들러 시키자마자 뚝딱 나오는 우동을 먹어야 한다. 면발은 살짝 아쉬워도 뜨뜻한 국물만큼은 모두 들이켠다. 바다에 도착하면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몸의 감각이 마비될 때 까지 바다를 넋 놓고 바라본다. 멀리서 파도가 저들끼리 부딪히는 모습을 보다가 포말이 닿고 스며드는 순간을 포착한다. 바다의 일렁거림에는 언어가 있다. 그곳엔 마음이 앞서서 하고 싶던 말을 삼키게 되는 순간도 있고 해저의 고요를 닮은 침묵도 있다. 한참을 고민하다 뱉은 말이 파도 소리에 실려 가기도 한다. 그래서 바다에 가면 혼자든 둘이든 한참을 말없이 바라보기만 하나 보다.


검푸른 바다는 매섭게 들이치다가도 이내 잔잔해진다. 그 반복되는 유속을 하염없이 바라보면 언제 부유할지 모르는 온갖 말이 침전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밀물과 썰물이 바다의 일만은 아니라는 듯 발끝에 닿다가 멀어진다. 어쩌면 중요한 건 말이 아니라 지금 눈앞에 바다가 있다는 사실 뿐이다. 바다 앞에서 떠도는 생각은 모양을 결정할 어떠한 언어도 어울리지 않는다. 부옇게 일어난 말들이 이내 하나 둘씩 사라진다. 먼 바다로부터 온 포말이 터진 자리에 빛이 머문다. 옆에 있던 사람이 이제 돌아가자고 말하기 전에는 바다를 등지지 않는다. 바다에 더 있고 싶다며 억지로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겨울 바다는 늘 미련이 남는다. 언젠가 바다에 혼자 올 거라고 다짐하지만 결국 혼자 온 적은 없다. 우리는 각자의 바다를 바라보고 떠나기를 다짐했던 뭍으로 돌아온다. 내게도 바다를 보내주는 사람이 있다.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묻지도 않고 함께 바다를 볼 사람이. 다시 파도 소리로 시작하는 1번 트랙을 재생한다. 조만간 바다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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