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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I Jan 01. 2018

잘 하려고 해도 안 되는 일

일상 탐구 1탄  



<화분 가꾸기>


아빠는 매일 아침 식물을 바라보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셨다. 거실 바닥에 엉덩이가 닿지 않은 채 최소 삼십 분 정도는 화분을 바라보는 일이 매일의 루틴이었다. 아침잠이 많은 나는 늘 오전에 베란다를 향해 몸을 등지고 있는 아빠를 보는 게 익숙했다. 인사라도 하려고 옆모습을 보면 입술에 힘을 잔뜩 주는 특유의 골몰하는 표정을 하고 계셨다. 그래서인지 아침 인사는 자연스레 식물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곧 꽃을 피울 것 같거나 뿌리가 썩는 징조가 있거나, 잎과 뿌리가 갈증을 느끼는지의 여부를 내가 먼저 물어본 것처럼 설명하셨다. 벌레 먹은 곳을 갈무리하고, 잎이 치우치는 부분엔 철 옷걸이로 지지대를 만들어 세우고, 떨어질 잎을 미리 솎아서 새 잎이 돋아날 자리를 마련하는 등 그렇게 아버지의 손을 타는 식물들은 아침 햇살이 당도하기도 전에 잎맥에 수분이 돌고, 부풀어 오르고, 피어나길 반복했다.

결혼을 하고 아빠처럼 집에 식물을 들였다. 꽃시장에 가서 허브 종류나 꽃을 피우는 화분 몇 개를 사 왔다. 모든 새 것으로 가득했던 신혼집이었던 만큼 매일 청소를 하고 화분에 정성을 들였다. 햇빛이 날 때 베란다에 두고 매일 물을 주면 잘 자랄 거라고 생각했다. 아빠가 식물을 가꾸는 걸 오랫동안 지켜보고 이야기를 들었는데도 식물들이 하나둘씩 죽어나갔다. 게다가 아빠 집에서 잘 크던 화분까지 키워 보겠다고 가져와서 죽게 만들었다.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식물을 하나의 생명으로 바라보고 애정을 쏟은 게 아니라 새 집, 새 물건과 함께 새로운 소품으로써 여겼다는 자각이 들었다. 제대로 알고 가꾸지 않아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였다. 사람도 그랬다. 상대의 마음보다 내 마음이 더 앞섰을 때 상대에게 비친 나의 말투와 표정은 무채색이었을 것이다. 열심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온도가 식물에도 전달된다는 걸 몰랐다. 그래서 당신은 식물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될 때조차 가만히 바라보고 계셨구나. 아빠의 왜소한 뒷모습에 비해 식물은 화분이라는 작은 세상에서도 싱그러울 수 있었구나 싶었다. 사람이든 식물이든 생명이 있는 것은 존재만으로 찬란하다. 그렇게 보면 식물을 키운다는 표현이 조심스럽다.


<화장의 기술>


중학교 때 얼굴이 너무 하얘서 교무주임 선생님이나 선도부 선배들에게 화장을 한 거 아니냐는 오해를 받았다. 머리색도 연한 갈색이어서 염색에 대한 오해까지 덤이었다. 그러나 과거는 과거일 뿐,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엄청난 성인 여드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워낙 피부에 관심이 없어서 잘 씻고, 바르는 데 노력을 기울이지 않던 탓인지 20대 내내 여드름을 달고 살았다. 늘 얼굴이 간질간질했고, 주변 사람들은 내적인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까지 해줬다. 얼굴에 뭐가 난 것만으로 괜히 고개가 숙여지고, 스트레스 종자가 된 것처럼 주눅이 들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좋은 피부의 기준은 결과 안색, 광채 같은 수준이 아닌 그저 여드름이 없는 피부가 되었다. 30대가 된 지금도 가끔 여드름이 올라오긴 하지만 내가 화장의 기술과 멀어지게 된 일차적 원인은 성인 여드름이었다.

요즘 뷰티 크리에이터들이 유튜브나 개인 방송을 통해 화장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우연히 영상을 보다가 화장의 기술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본래의 얼굴보다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장하는 기술의 향연이었다. 눈은 두 배로 커지고, 콧대는 날렵해지면서 튀어나온 광대는 죽고, 볼터치로 긴 얼굴까지 축소시키더라. 한참을 멍하게 봤다. 늘 기초를 바른 후 선크림, 파운데이션, 마스카라, 눈썹, 볼터치 순으로 화장을 하긴 하지만 요즘 화장 좀 한다는 여자들에 비하면 빈약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나는 제법 옷을 많이 사는 편이니까 아무래도 그쪽에 집중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한쪽에 열심이면 다른 일정 부분은 조금 게을러도 된다는 생각으로 보류해온 게 화장이다. 이런 합리화는 과소비를 막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가끔 기분 전환으로 샀던 명품 립스틱도 이제 시들해졌으니 앞으로도 '지금보다 예뻐질' 화장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sns>


sns는 옷 매장에서 마주한 거울 같다. 거울은 맞는데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은 아니다. 뻔히 나를 알기에 머리로는 집 거울을 상상하며 스스로를 바라봐야 허튼 소비를 하지 않는다. 장 그르니에는 <섬>에서 ‘달은 우리에게 늘 똑같은 한쪽만 보여준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삶 또한 그러하다. 그들의 삶의 가려진 쪽에 대해서 우리는 짐작으로밖에 알지 못하는데 정작 단 하나 중요한 것은 그쪽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바라보는 타인의 모습과 스스로가 내보이는 모습도 각각의 ‘똑같은 한쪽’이라 생각한다. 일상의 피로와 늘 잠재된 불안과 함께 한 장의 사진과 글만으로 표현하기 힘든 행복의 진폭이 ‘가려진 쪽’으로 존재한다. 인간관계가 넓지 않은 나는 불특정 다수에게 뭔가를 내보인다는 것 자체가 약간의 피로를 수반한다. 동시에 혼자 보기 아까운 하늘이나 책, 어떤 문장은 누군가도 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찍어 올린다. 다만 온전한 기록에 가깝기 때문에 해시태그를 거의 쓰지 않는다. 그랬더니 몇 년째 팔로워는 크게 늘지 않았다. 때로 진심을 담은 글을 올려도 누군가 올린 빵 사진이 더 많은 ‘좋아요’를 받는 걸 보고 이곳은 복불복 세상이라고 여겼다. 팔로워와 좋아요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얘기를 친구에게 들었는데 그렇게 한 것으로 보이는 사람의 계정에 가보니 20분 안에 900명의 좋아요를 받더라. 그 사람의 사진은 늘 정확한 시간 안에 ‘좋아요’가 900대로 붙는데 그 숫자를 돈으로 샀고 나머지 몇십 명은 순순한 팔로워라는 것이다. 그래서 900대는 변함이 없지만 뒷자리 숫자만 늘 달랐다. 가짜 인맥을 살 돈으로 책 몇 권을 더 사는 게 낫겠다. 게다가 특별히 인기가 있어보지 않아서 인기에 연연하지 않으니 다행이다. 그런 본성이 sns를 절대 잘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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