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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I Jul 30. 2018

1.5인분의 마음



가끔 집에 혼자 있을 때 파스타를 만든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면 더더욱 파스타를 만들기 좋다. 편으로 썬 마늘, 스팸 몇 조각, 송송 썬 애호박과 양파는 기본이고 양송이나 냉동 새우가 있다면 더 맛있는 옵션이 된다. 면이 삶아지는 동안 프라이팬에 준비한 재료를 볶다가 시판 토마토소스를 넣고 약한 불로 졸이듯이 익힌다. 여기까진 좋다. 문제는 면의 양을 조절하는 것이다. 양을 수치화한다면 약간 부족한 2인분인데 그냥 1.5인분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낮은 접시에 푸짐하게 쌓인 파스타를 바라보면서 ‘또 많이 해 버렸네.’라고 생각한다. 매번 이러는 걸 보니 일부러 이 양을 즐기는가 보다. 다분히 의도적인 1.5인분의 파스타를 먹고 나면 기분 좋은 포만감과 함께 왠지 스트레스도 풀리는 것 같다.  


파스타의 일 뿐만 아니라 사소한 즐거움을 주는 일들이 있다. 가령 작은 그림을 그린다거나 문득 생각난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데 이런 소소한 일들이 쉼이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목적이 이끄는 움직임 보다 결과 값이 선명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을 보내는 일이 중요하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


매일 일기를 쓰면서 공백에 일기와 관련된 작은 그림을 그린다. 맥주나 커피를 마신 날은 잔을 그리는 식이다. 아이패드가 생기고 나서는 전용 펜슬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리는데 선을 그리고 색을 채우다 보면 시간이 지난 것도 모를 만큼 푹 빠져있다. 글을 쓰고, 다른 중요한 일을 하다가도 잠깐 쉬는 시간을 가질 때 그림을 그리면 다시 텅 빈 마음으로 작업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림을 그리면서 집중하는 시간에도 쉴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편지를 쓰는 것도 그렇다. 한 때는 편지지를 사러 문구점에 자주 들락거렸다. 내 마음에도 들고 상대가 좋아할 편지지를 고르느라 시간과 발품을 들이고 첫 글씨, 첫 장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딱히 편지를 쓸 일이 없어진 요즘에도 마음에 드는 편지지를 발견하면 문득 생각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쓴다. 매일 보는 사이라도 그 사람을 생각하면서 글을 쓰다 보면 얼굴을 맞대고서 하지 못한 말들이 술술 나온다. 잘 해준 일보다 잘 하지 못한 일을 반성하듯 적기도 하고, 앞으로의 우리를 그려보기도 하면서 그런 생각을 적고 있는 나를 새삼스럽게 발견하기도 한다. 그래서 편지를 쓴다는 건 스스로를 다독이는 시간이기도 하다.


파스타를 만들어 먹고, 그림을 그리고, 편지를 쓰는 시간은 사소하다. 그러면서도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시간이 된다. 혼자서 충분히 채우는 시간이 부족하면 타인에게 내어 줄 품이 그만큼 줄어든다. 그런 면에서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은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반대로 혼자서만 자신이 소중해 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가족이든 가까운 지인이든 그들과 다시 함께 하기 위한 간격이 필요하다.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넣을 때 손으로 눌러 한 치도 들어가지 않을 만큼 공기를 채워야 잘 달릴 수 있다.  바람이 다 들어갔다고 보여도 조금 더 넣어주는 몇 초의 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나 자신을 빵빵하게 채우는 시간이 있어야 다시 사람들 사이로 달려갈 수 있다. 자꾸만 1인분이라는 정량으로 스스로가 얄팍해질 때 1.5인분의 마음을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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