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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커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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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I Oct 01. 2018

커피 일기

1. 기록의 시작


커피를 좋아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자동으로 원두를 갈고 커피를 내릴 준비를 한다. 핸드드립 커피를 마시는 재미를 알게 된 후로 캡슐 머신은 2년 넘게 찬밥 신세다. 혼자 마셔도 좋고 누군가 함께 해도 좋은 맛있는 온도를 가진 커피. 그런 커피에 대해 더 잘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다. 그러다 드디어 얼마 전 학원 등록을 했다. 첫날, 냄비 받침으로도 훌륭한 이론서를 받았다. 학원에서 뭔가를 수강해 본 일이 오랜만이라 무척이나 떨렸다.  




사람들 앞에서 자기소개를 했고, 종이에도 자신에 대해 적는 시간이 주어졌다. 이름 빼고 뭘 써야 할지 몰라 한참을 뜸 들이다가 적었다. 나는 자격증이나 카페 창업과 같은 목적이 전혀 없어서 지원 동기에 '맛있는 커피를 만들고 싶어서'라고 적었다.




모든 일에 꼭 목적이 있어야 할까? 그냥 재밌을 거 같아서 할 수도 있다. 재미는 저평가되어 왔다. 나 또한 매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 때문에 커피 배우기를 미뤄왔다. 사실 살면서 중요하다고 여기는 건 언제든 하게 되어 있다. 그러느라 차일피일 새로운 즐거움에 대한 호기심을 미룬다. 누구나 아이처럼 놀이와 삶이 가까운 시절이 있었다. 친구와 손을 잡고 걷다가 갑자기 경보를 하고 달리기 시합을 하는 식으로 즐거웠다. 나이가 들수록 크든 작든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제대로 하지 않을 거면 시작도 하지 말자는 식으로 스스로를 다그칠 때가 있다. 그래서 만족하나? 얼마나 합리적이었나? 실패한 것은 그저 졸작이 되었나? 그런 면에서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은 요즘 시대를 그저 설렁설렁하게 살도록 내버려 두질 않는다.  



인생의 여러 가지 선택을 두더지 잡기 놀이라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언제 어느 구멍에서 튀어나올지 모를 기회를 잡기 위해 뿅망치를 들고 있다. 기다리는 사람, 나오기도 전에 두드리는 사람, 두더지가 나와도 칠 생각이 없는 사람 등 같은 뿅망치를 들고 있어도 방식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어찌 됐든 인생은 한 번이니 게임으로 쳐도 딱 한 판이다. 기왕이면 뿅망치를 다부지게 잡고 두더지가 나올 때 신나게 두드리면 될 일이다. ‘해볼까’ 말고 ‘해보자!’의 마음으로.



커피의 역사, 원두 재배 방식, 종류, 이름, 맛과 향까지 장장 3시간의 수업을 들었다. 왠지 교실에서 커피 향이 진동을 하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처음과 같은 집중력을 유지하기 힘들었지만 뭐든 놓치기 싫어서 노트에 그림도 그리고 메모를 했다. 원래 첫날이 뭐든 파이팅이 되는 날 아닌가.   




이론 수업을 듣다가 스펀지처럼 쏙쏙 들어오는 재미 요소가 있었다. 예를 들면 재배 과정 같은 거다. 커피나무는 너무 강한 열과 빛에 약해서 이를 가려줄 키 크고 잎이 넓은 나무를 옆에 심는다고 한다. 그것을 그늘 경작법이라고 한다고. 옆에 서서 바람과 빛을 적당히 막아주는 키 큰 나무는 커피나무의 보디가드인 셈이다. 역시 나무도 사람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잘 살 수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 이런 깨알 재미가 커피 일기를 쓰게 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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