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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I Mar 04. 2019

뮌헨에서 보낸 시간

여행이라는 이상한 일


조금 긴 여행을 다녀왔다. 시도 때도 없이 먹고 마시고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다. 가족이 독일 뮌헨에 살고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다. 매일 흐리고 우중충한 날씨인데도 크리스마스 시즌의 유럽은 반짝였다. 거리며 상점가며 명동 거리를 방불케 하는 분위기에 나도 휩쓸리듯 다녔다. 마음에 드는 컵이 있는 노점에서 산 글루바인(Gluhwein)을 홀짝이며 걷다가 맛있는 냄새가 나면 멈춰 서서 먹고 또다시 인파 속을 걸었다. 알코올이 들어간 글루바인 덕에 몸이 따뜻했다. 거리의 불빛과 북적이는 사람들의 온기는 공기를 훈훈하게 했다. 크리스마스에 유럽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다가도 눈앞의 풍경이 모든 걸 잊게 만들었다.


내가 머문 곳은 이자르 강이 흐르는 바이에른 주의 작은 도시인 모스부르크(moosbrug)이다. 시내에는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옛 교회와 시청사, 작은 빵집과 로스터 카페가 있다. 커다란 간판 없이 오밀조밀 모인 가게들은 산책하듯 걸으면서 구경하기에 좋다. 독일어를 모르니 쇼윈도에 놓인 물건과 분위기를 찬찬히 살피면서 이곳은 어떤 가게인지 맞춰보는 재미가 있었다. 독일 마트의 식재료는 한국의 물가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가격이 싸다. 훌륭한 소고기도 우리나라의 돼지고기보다 저렴했다. 특히 내가 가장 사랑했던 주류 창고에는 이름도 상표도 다양한 맥주들이 빼곡히 진열되어 있었다. 같은 맥주를 한 박스로 사면 가격이 더 싸지만 한정된 시간에 더 많은 맥주를 맛보기 위해 다른 맛들로 채웠다. 그래도 행복한 가격이라 고르는 재미가 쏠쏠했다.


양조장에 있는 한 레스토랑에 갔을 때의 일이다. 족히 칠십 대는 되어 보이는 할머니가 철제 바스켓에 든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알고 보니 안에 따뜻한 물이 들어있어서 차갑지 않은 맥주였다. 이가 좋지 않은 노인들이 맥주를 즐기는 방식이었다. 한 사람 앞에 한 접시씩 자신의 몫을 천천히 먹으면서 대화하는 눈빛들이 오고 갔다. 미지근한 맥주는 맛이 없을 것 같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지’라는 말도 있듯 독일인의 지독한 맥주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가족들과 건배를 뜻하는 ‘브로스트!(brost)’를 외치면서 나이 들어서도 저들처럼 술을 즐길 수 있는 건강한 생활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암막 커튼을 걷지 않은 모스부르크의 아침은 세상이 끝난 것처럼 고요했다. 도로가에 인접한 아파트에 사는 사람에게는 이런 곳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휴식이었다. 일어나면 온 세상이 음소거된 것 같아서 오히려 내 움직임이 소음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창문을 열고 바깥을 볼 땐 순수한 호기심으로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았다. 한국에 오기 전 마지막 일주일은 매일 눈이 오다시피 했는데 걸을 때마다 눈 밟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산책을 하다가 동네 끝자락에 있는 이자르(ISAR) 강에 다다르면 강물 소리가 나지막이 울렸다. 강이 흘러가는 소리를 가만히 듣는 게 좋았다.


크리스마스와 실베스터 때도 아침은 여전했다. 분명 크리스마스 마켓에 모인 사람들은 내일이 없다는 듯 행복을 머금었고 나 또한 전염되어 행복에 겨웠는데 아침만 되면 세상은 어제 일은 까무룩 잊고 침묵을 토해냈다. 말간 고요 속에서 잠을 깨면 어제 맛본 축제의 달뜬 기운이 꿈같았다. 신기하게 적막하지는 않았다. 아직 여행 기간이 남은 여행자는 쉽게 추억에 잠기지 않는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게 가장 중요하니 말이다.  


실베스터(silvester)는 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달과 12월 31일이라는 뜻으로 한 해를 잘 떠나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 기간에는 마트에서 폭죽을 판다. 폭죽만 보여주는 전단지도 따로 있다. 사진 옆에 있는 QR코드로 접속하면 폭죽이 터지는 모습이 동영상으로 재생된다. 한국에서는 왠지 비행 청소년들이나 하는 위험한 이미지가 있는 데다 아무데서나 폭죽을 터뜨리는 게 불법이라서 엄격할 것 같은 독일 사람들이 이걸 행사로 즐긴다는 게 생소했다. 폭죽에 몇 만 원이나 하는 돈을 써 본 것도 처음이었다.


12월 31일 열두 시 십 분 전, 우리는 폭죽을 들고 집을 나섰다. 길가엔 불 꺼진 집이 더 많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어서 휑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쭈뼛쭈뼛 폭죽을 놓고 불을 댕긴 순간 10분 넘게 이어진 소리와 웅장함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우리가 불꽃을 터뜨리자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동네 사람들이 하나 둘 나와서 폭죽을 터뜨리고 새해 인사를 건넸다. 맥주를 든 옆집 아저씨도 비스듬히 서서 하늘을 바라봤다. 화약 냄새가 코를 찌르고 온 동네가 화염에 휩싸였다. 멀리 시내 쪽에서는 끊임없이 불꽃을 쏘아 올렸다. 자꾸 실성한 사람처럼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웃고 감탄하다가 얼결에 새해를 맞이했다.  


얼마 전 리베카 솔닛의 책 <길 잃기 안내서>를 읽던 중 ‘정체성의 용해’라고 적힌 구절에서 지난 여행이 떠올랐다. 정확히 그 두 어절은 여행의 기억을 환기하기에 충분했다. 몇 주 전만 해도 나는 낯선 나라, 새로운 공기, 아침의 고요, 빨리 저무는 해, 조용히 일상을 지키는 사람들 사이에 있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놀아도 되나?’라고 생각하다가도 나도 모르게 그곳에 섞인 나날들. 그렇게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즐긴 모든 순간들이 ‘정체성의 용해’가 아니었을까. 여행은 끝났지만 일상의 탄성을 찾아가면서 뮌헨에서 보낸 시간이 아득하게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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