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은 그날을 '과거의 내가 죽던 순간'이라고 불렀다. 그 새벽을 기점으로 급변한 삶을 맞았으니 그렇게 칭하는 일이 이상할 것 없었다.
미련하도록 순진하게 살았다. 고분고분하진 않아도 엄마가, 세상이 내는 숙제를 차곡차곡 열심히 풀었다. 좋은 학교, 좋은 회사, 좋은 집, 좋은 조건의 결혼을 하고 아들 딸을 낳아 그 애들을 다시 좋은 학교에 보내고 좋은 회사, 좋은 집... 그렇게 시집 장가를 보내고...
남아있는 문제들의 밑천이 드러날수록, 앞으로도 쳇바퀴처럼 반복될 시시한 끄트머리가 선명해질수록 나는 차츰 생기를 잃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외로웠고 좀체 행복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달리 방도는 없었다. 쌓여있는 문제들을 꾸역꾸역 풀면서 살아내는 수밖에.
그러다가 참지 못하고 허무가 울음처럼 터지던 날. 더는 별볼 일 없는 게 인생이라고 확정 지은 새벽. 오답을 채점하듯 거침없이 가로로 금을 그었다.
뭉글뭉글 솟는 붉은 피를 내려다보면서... 시끄럽게 호들갑을 떠는 앰뷸런스를 타고... 오답이 난무하는 시험지를 받아 든듯한 표정의 의사를 관통해서... 내 몸이 두둥실 떠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주인을 잃은 풍선처럼 진료실의 모퉁이에 걸려 껍데기만 남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성실하게 숙제를 하고도 낙제점을 받은 구제불능의 여자를, 죽는 것마저 실패하고 고개를 수그린 자신을 마주하는 이상한 순간이었다.
병원을 나오는 길. 어둠이 가신 풍경은 고요했다. 간 밤의 난리통이 무색하게 천진한 아침이 오고 있었다.
*
그로부터 나는 변했다.
차근차근 세상의 숙제를 건네받지 않았다. 죽겠다는 난리 법석으로 낙제생을 자처했으니 아쉬울 것도 없었다. 가진 것 없는 놈이 무섭다는 말은 틀리지 않다.
우선 더는 회사를 다니지 않아가난해졌다. 등 떠미는 가족과는 연락을 끊고 낯선 동네의 옥탑방으로 이사했다. 온종일 틀어박혀 책을 보거나 산책을 하며 철저히 혼자가 되었다. 남의 말을 들을 일이 없어졌으니 혼잣말이라도 중얼거려야 했다. 지금의 불안과 갈증의 이유를 묻고 간절하게 더듬어 깜깜한 길을 찾기 시작했다. 문제를 내는 사람도 답변하는 사람도 온전히 내가 되었다.
내면으로 깊이, 더 안으로... 이는 점차 굵직한 뿌리를 내리다가 깊은 속의 영혼과 맞닿는 듯했다. 그럴 때면 본 적 없는 묘한 평온을 느꼈다.
이제는 거침없이 오답을 긋던 그날을 축하할 일이다. 그리고 적막하던 그 새벽을 '내면의 나를 만난 순간'이라고 고쳐 부르기로 한다.
살아있는 모두는 강하다.
뜨거우면 몸을 사려 피하고 물에 빠지면 허우적거린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애를 쓴다. 혹여 어둠으로 가라앉는 중이라면 자신을 믿으면 된다. 침전하다 숨이 막히면 흙먼지를 일으키며 박차 오를 자신을. 끝내 자신을 구하려고 어떻게든 사력을 다할 스스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