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드레스와 턱시도가 그려진 청첩장. 아기자기하게 엽서로 만들었는데 마음에 드니? 결혼식장에는 부득이하게 참석 못 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가족사진을 걸어 두었어. 천정에는 3단 레이스를 흐트러뜨리고, 길 가운데로는 은은하게 펄 들어간 버진로드도 깔았단다. 주변에는 꽃 장식으로 버진로드를 더욱 돋보이게 해 주었지. 주례가 없기에 단상은 생략하고, 결혼식을 찾은 친구들이 신랑, 신부를 가까에서 볼 수 있도록 의자를 버진 로드 옆으로 깔았어. 신랑, 신부가 돋보이도록 조명을 달고, 동선에 방해되지 않도록 카메라 아우트라인도 정해주었어. 작은 부분도 놓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는데,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매년 5월이 되면 많은 어린이집에서는 '우리 가족'을 생활주제로 놀이한다. 5월은 가정과 관련된 날이 많다. 특히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은 어떤 어린이집도 그냥 지나칠 수 없을 만큼 큰 행사 중 하나다. 아이들은 5월 초부터 가족 행사를 치르다 보면 자연스레 가족에 관심을 갖는다. 우리 어린이집 역시 그랬다.
아이들에게 가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물어보았다. 저마다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했다.
"뼈가 하나 튀어나와 그 위에 살이 붙고, 몸과 얼굴이 생기면 가족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뼈가 해골처럼 부서졌다가 다시 합채 한 다음 껍질이 벗겨지면 그 안에서 사람이 튀어나와요. 그럼 우리는 가족이 되는 거예요.
"가족은 탯줄이 이어지면 만들어지는 거예요."
어디서 이런 생각들이 오는 건지. 대답이 참으로 신박하다. 간혹 "엄마 아기 씨랑 아빠 아기 씨가 만나서 아기가 태어나요. 그게 가족이에요."라고 답하는 아이도 있다. 생각 모으기가 끝나면 가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 수 있는 그림책을 본다. 그림책을 통해 아이들이 이해한 것을 다시 이야기해 보기도 하고, 교사인 내가 말해주기도 한다. "두 사람이 만나 결혼을 하면 부부가 가족이 되고, 서로 사랑해서 아기가 태어나면 부모와 자녀가 한 가족이 되는 거야" 교사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거칠게 끄덕이는 아이들이지만 표정을 보아하니 이해 못 하는 듯하다.
여러 번 이야기 한들 이해 못 하면 아이들과 놀이를 통해 직접 알아가면 된다. 부모님을 통해 가족사진과 결혼식 사진을 얻었다. 가족사진과 결혼식 사진을 비교하며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찾아본다. 같은 점은 사진 속 엄마, 아빠가 둘 다 있다는 것 하나뿐. 온통 다른 점 투성이다. 우선 사진 속에 사람의 숫자가 다르고, 장소도 다르다. 표정과 옷차림도 다르다. "선생님 둘 다 엄마, 아빠 사진인데 다른 사람이에요. 틀리게 생겼어요." 하며 한 아이가 결혼식 사진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풋!' 나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가족사진과 결혼식 사진을 비교하던 아이가 갑자기 사인펜을 가져오더니 엄마, 아빠 얼굴을 색칠하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건지 물어보니 화장하는 중이란다. 그렇게 가족사진 속 얼굴은 사인펜으로 덧칠해져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마음에 드는지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퍼진다.
한쪽에선 역할 놀이가 한창이다. "여보, 나 나갔다 올 테니까 청소 좀 하고 있어요", "네! 여보, 잘 다녀와요." 엄마, 아빠의 말투를 흉내 내며 말이다. 아이들에게 결혼한 사인지 물어보니 아직 아니라고 한다. 내일 결혼할 거라고. 아이들의 상상 놀이를 확장시켜줘야겠다. 친구들과 힘을 합쳐 교실을 결혼식장으로 구성하기로 했다. 이름은 '평화 결혼식장' 마침 주말에 삼촌 결혼식을 다녀온 아이가 진두지휘했다.
하루 꼬박 고생해 만든 결혼식장, 아이들은 자신의 결혼을 알리기 위해 청첩장을 돌리기 시작했다. 옆 반 친구, 원장 선생님 하원하며 엄마, 아빠에게도 전달했다. 안타깝게도 결혼식은 코로나19로 참석이 안 된다. 대신 비디오와 사진 촬영으로 부모님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나 역시 청첩장을 받았다.
진우야, 내 기억으로는 작년에도 네 이름으로 된 청첩장을 받은 것 같은데 너는 올해 다시 청첩장을 돌리는구나. 한 번 하면 두 번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결혼'이라고 하던데 너는 아닌가 보다. 일 년에 한 번씩 결혼을 하는 너는 나보다 낫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