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예뻐?? 안 예뻐???
아이들 수다는 끊임없다. 어제 이야기를 시작으로 오늘 아침 기분, 너랑 단짝이 될 수 없는 이유와 나와 함께 놀기 위해 네가 해야 할 일, 무한대보다 더 큰 숫자가 있다 vs 없다 논쟁까지... 주제는 정말 다양하다. 이런 아이들 대화를 듣고 있으면 어이없어 '피식' 웃음이 난다. '와, 이런 생각을 하네!' 감탄도 한다. 아슬아슬한 분쟁으로 대화에 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도 한다.
간혹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생각에 잠긴다. 칭찬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이야기. 기분이 이상하다. 아이들은 순수하니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자. 그렇지만 다시 생각하면 할수록 기분이 찜찜하다.
4살 하원이는 애교쟁이다. 교사가 청소하면 “선생님, 힘들죠?" 하고 어깨를 주무른다. 하원이는 교사 표정과 기분을 잘 파악하고 적절한 언어 표현과 행동을 건넨다. 어느 날 하원이는 나에게 다가와 수줍은 미소로 "선생님이 제일 좋아" 하며 손가락 하트를 날렸다. 사랑스럽다. 내가 제일 좋단다. 아이들 뒤치다꺼리로 힘이 쭉 빠져 있었는데 달달한 커피 한 모금을 마신 기분이다. "나도 하원이가 제일 좋아" 하고 손가락 하트를 날린다. 하원이는 웃으며 뒤로 넘어지는 흉내를 낸다.
동료 교사에게 하원이가 한 이야기를 하니 깔깔거리며 웃는다. "안 그래도 교사실에서 하원이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하원이가 나한테도 그렇고 대다수 선생님들에게 선생님이 제일 좋다고 이야기했대요." 헐. 방금까지 달달했던 커피는 쓴 디 쓴 에스프레소로 변했다. 진심 사회성이 뛰어난 아이다.
교사 생활 17년 차.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예쁜 옷은 불필요하다. 액세서리는 거추장스럽고 화장 역시 땀범벅이 되어 지워지기 일쑤다. 출근 복장은 면바지와 티셔츠. 노 액세서리, 노 메이크업은 진리다. 그런 나에게도 심플한 액세서리와 풀 메이크업, 단정한 정장을 입고 출근할 때가 있다. 학부모 면담 기간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완벽하게 장착하고 교실에 들어선다. 놀이하던 아이들은 나를 뻔히 쳐다본다. 달라진 내 모습이 신기했나 보다. 그것도 잠시. 아이들은 흥미를 잃고 각자 놀이에 집중한다. 그렇지만 선빈이는 유난히 ‘반짝이’를 좋아한다. 선빈이는 내 눈두덩에 발린 펄 섀도를 빤히 쳐다보며 예쁘다고 이야기한다. 하루 종일 내 옆에 앉아 얼굴만 쳐다본다. 평소 어린 짝꿍 선생님 옆을 맴돌던 선빈이가 오늘따라 내 주변에서 떠나질 않는다. 나 역시 예쁘단 말에 기분이 좋아진다. 평소보다 더 많은 상호작용과 놀이 지원을 한다. 다음날, 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선빈이는 그런 나에게 관심이 없는지 다시 짝꿍 선생님에게 돌아갔다. '우리 어제 좋았잖니. 화장 안 한 나하곤 놀 수 없는 거니? 그런 거니?' 12시 땡! 신데렐라 놀이는 끝났다.
6세 반 교사의 미덕은 기다림이다. 오은영 박사는 '한 가지 행동 변화를 위해 양육자는 백 번, 천 번 같은 말을 반복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그렇지만 14명의 행동 변화를 위해 나는 천 4백 번, 만 4천 번을 말해야 한다. 그럼에도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나도 화가 난다. 눈웃음은 사라진다. 부드러웠던 목소리도 딱딱해진다. "같은 말 여러 번 하니까 선생님도 화가 나. 선생님이 말하지 않아도 너희들 스스로 해줄 수 없겠니?" 단호한 목소리에 교실이 고요해진다. 눈치 보던 아이들은 스르륵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일을 한다. 움츠린 아이들을 보니 마음이 무겁다. 그제야 분위기를 풀기 위해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며 칭찬한다. 아이들은 금방 미소를 되찾는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차연이가 나에게 다가와 이야기한다. "선생님은 웃으면 예쁜데 안 웃으면 무서워요." '안 웃을 때? 혼낼 때를 이야기한 건가? 그럼 너희들이 혼나지 않도록 잘하던가...' 어이없어 웃음이 난다. 그런데 이거 나 예쁘단 말이야? 안 예쁘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