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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온기 Sep 04. 2021

당신은 나의 우유를 비난할자격이 없다







“거기다 차 세우고 뭐 하는 거야
여기가 너네 땅이야 ”


욕설과 함께 내게 날아온 남자의 반말이었다.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알고 있는 육두문자로 그 남자에게 힘껏 소리 질렀다 “왜 욕하고 지랄이야 이 00야”









셋째를 출산하고 100일이 되기 전이었다.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나는 편하게 출산에 대한 평안을 누릴 수 없었다. 이미 위로 딸 둘이 있었고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내 몫이 있었기에 차를 이용해서 막내가 잠든 틈을 타 후다닥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야 했다. 100일도 안된 아이에게 쌀쌀한 가을 아침은 가혹할 수 있기에 외출 준비에 필요한 시간이 더 추가해야 된다. 그래서 셋째가 잠들어 있는 시간에 차로 10분 거리의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기 위해 조바심을 내며 두 아이를 서둘러 준비시켰다. 등원 준비하느라 일어나서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나는 아이들이 먹다 남긴 우유라도 먹어서 쓰린 속을 달래야 했다. 빨리 우유를 마시려고 컵을 최대한 빠르게 입속으로 들이부었다. 우유는 내 입술이 아닌 인중까지 감싸는 기분이 들었다. 다 마신 컵을 내려놓고 조용히 아이들과 문 밖으로 나섰다. 가을이지만 제법 찬 공기가 느껴졌고 셋째를 안 데리고 가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두 아이와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무사히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난 뒤 돌아오는 길부터  잘못된 시작이었을 거란 생각을 해본다. 달릴 수는 없지만 골목길로 가면 조금이라도 집에 빨리 도착할 수 있다는 생각에 들어선 길은 마음을 더 채근한 것 같다.

'혹시 셋째가 일어나서 보이지 않는 엄마를 찾느라 대성통곡하며 울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만 하고 가던 중 반대편에서 오는 차를 비켜주다 주차되어 있던 차와 접촉사고를 낸 것이다.







 

난 탄식이 절로 나왔다.

‘왜 하필 지금이야 어쩌지’

차를 세운 뒤 빠르게 차주에게 연락을 해 접촉사고를 냈으며 죄송하다며 말한 뒤 보험회사에 연락했다 보험회사 직원이 올 때까지 시간이 내겐 몇 분이 아닌 몇 시간 같이 느껴졌다



골목길에서 사고 난 차 두 대가 길의 반쯤 차지하고 있으니 오고 가는 차들로 밀리기 시작했고, 지나가던 차 한 대가 보조석 창문을 내리더니 나에게 욕설과 함께 반말을 한 것이다. 그 남자는 자신의 갈길이 조금 불편하다는 이유로 나에게 거침없는 욕설을 한 것이다. 무엇이 그렇게 불편했단 말인가? 다른 차들도 한 대씩 양보하며 잘 지나가고 있는데 골목에서 얼마나 속도를 낼 수 있다고 육두문자를 쏟아내느냔 말이다. 그래서 나도 같이 쏟아냈고 기어코 그 남자는 차를 세우고 내려 나에게 성큼성큼 걸어오면서 더 거침없는 욕설과 후려칠 것처럼 손은 포물선을 그렸다. 애 셋 낳은 엄마가 뭐가 무서울까 난 무섭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집에서 혼자 울고 있을지도 모르는 셋째 생각뿐이었다. “때릴 거면 때려봐 네가 먼저 욕했잖아”라며 같이 응수했고, 흔한 오버액션을 했던 그 남자는 나에게 억울한 한마디를 던지고 갔다,“야 입에 묻은 우유나 닦고 다녀 ”라고 말이다. 난 그 말에 내 인생이 통째로 슬퍼졌다. 앞서 내게 했던 욕보다 입에 묻은 우유나 닦으라는 말이 더 가슴을 후벼 파고 화가 났다.



그 남자는 나의 아침 상황을 몰랐고 관심도 없다. 난 밤새 잠투정하는 아이를 재우고, 수유하느라 몇 시간 자지도 못했는데 그 아침 두 아이를 등원을 준비하며 허기진 배를 조금이라도 채우려 우유 한잔 마신 것뿐이다.

접촉사고가 난 상황을 정리하고 난 서둘러 집으로 갔고, 나의 걱정과 달리 셋째는 아주 평온하게 잘 자고 있었다. 아이가 자는 걸 확인한 나는 거울을 보며 내 입술에 묻은 우유 자국을 보았고 선명했다. 그리고 후줄근한 옷을 입고 서 있는 거울 속 내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눈에서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고 가슴에 돌덩이를 뱉어내듯 입을 틀어막고 오열했다. 억울했다. 난 열심히 아이를 돌보고 키운 것 밖에 없는데 일면식도 없는 남자의 그 한마디가 이렇게 가슴 아플 줄 몰랐다. 엄마라면 다들 이렇게 사는 줄 알았는데, 그 아침 나는 짙은 화장을 하고 한껏 꾸미고 나갔어야 했을까?

다른 사람의 삶이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기에 말은 아무렇게나 막 던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입에 묻은 우유 자국이 그 사람에겐 그저 지저분해 보였을지 모르지만 난 그 아침 짧은 일상의 사투를 벌였던 흔적이었다. 그날의 난 평생 잊지 못할 그래서 지금도  마음 한가득 화가 차올라 두 주먹을 불끈 정도로 억울함을 느끼곤 한다. 당신의 아내 이야기였다면, 당신의 아이들 이야기였다면 그런 말을 쉽게 내뱉지 못했을 것이다. 내 평생 가장 억울한 한마디 "야 입에 묻은 우유나 닦고 다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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