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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온기 Jun 18. 2021

감성과 반성

미니멀라이프, 다 갖춰서 살 수는 없는 거였다







아이들은 다른 집에 놀러 갔다 오면 그랬다

'엄마 친구 집에 책상이 엄청 커'

'엄마 다윤이네는 2층 침대 있어'

'엄마 지은이네 소파가 새로 샀나 봐'


어쩜 나보다 발 빠른 소식으로 다른 집에 어떤 가구가 있는지 무엇을 새로 샀는지 나에게 와서 알려주었다

그럴 것이 난 다른 집에 가지 않는 편이고, 다른 이 역시 내 집에 잘 오는 편이 아니라서

특정 친한 사람들이 아니면 오고 가고 하는 왕래가 잘 없었다. 외향과 내향이 같이 존재하는 내 성격 덕분이다.




그중 단연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아이템은 2층 침대와 책상 그리고 장난감

지금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은 잘 모를 거다 나도 아이가 어릴 땐 이런 고민을 한 적이 없었으니깐

큰아이가 7살 초등학생 점점 커갈수록 아이는 보게 되는 것들이 많아졌다

올 것이 왔구나 지금까지는 나의 정해진 룰대로 아이를 케어할 수 있었지만 이젠 그럴 수 없겠구나

첫째와 둘째는 이층 침대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친한 친구네 집은 이미 자매가 쓸 수 있는 2층 침대를 들여놓았고, 또 다른 친구는 딸을 위한 방을 만들기 위해 이케아 책상과 침대가 들어가 있었다.

부러워했다 아이들이니깐 자신들의 감정을 솔직히 말한 것뿐이다

근데 나는 미안했다. 그렇게 해줄 수 없어서 미안했다.

15평 관사에서 4인 가족 살다가 남편이 진급하면서 22평으로 이사 갈 수 있었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관사라는 것이 가족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계급이 중요한 것이기에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이상  4인 가족도 계급이 안되면 15평에 살수 밖에 없었다

22평으로 이사 간 뒤 가족수가 5인이 되었다. 아이들 옷에 기본적인 가구들만 해도 방마다 가득 차는데 어떻게 2층 침대를 사줄 수가 있었겠냐 말이다. 그렇다고 거실엔 2층 침대를 두고 살 수는 없었고

제일 중요한 건 집 자체가 정리가 안되어 있었다

결혼 10년간 들여놓은 살림살이들이 빼곡히 차 있고 버리지 못해 모셔둔 물건들도 많았다.

버리지도 가지고 있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난 아이가 셋이었다 심지어 막내는 돌도 안되었고. 아이들 뒤치닥거리하는 것만으로도 하루 종일 진이 빠지는데 무슨 물건을 정리한다는 설레발 칠 수 있었을까?

그땐 그게 맞는 거였다

 

만약 그때 내가 물건을 정리한다고 거들먹거리고 집을 헤쳐 놓았으면 아마 난 지금 글을 쓰고 있지도 못할 정도로 삶을 영위하지 못했을 거였다 셋째 출산 후 산후우울증과 체력이 고갈되어 있는 상태였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핑계삼아 나의 마음의 허기를 채웠던건 아닐까?


1년 뒤 우린 31평 관사로 이사를 할 수 있었다 규정이 바뀌면서 5인 가족이라 넓은 평수로 갈 수 있었다

기회는 이때, 아이들에게 2층 침대를 사주기로 했고 부부의 침대도 있어야 했고, 막내랑 같이 자야 되니 싱글 침대 하나도 필요했다 물론 다 샀다 심지어 유행하는  북유럽풍 갬성 가득한 침대로 말이다.그리고 우린 3년쯤 뒤에 또 이사를 했고 싱글 침대는 구매한 지 3년 만에 버리기로 했다.그리고 퀸침대는 이사 오면서 예쁜쓰레기로 전락해 프레임은 버리고 매트리스만 가져왔다 그리고 제일 심플하지만 가장 쓰임새 많은 서랍형 프레임으로 교체하였다

침대에 대한 환상은 깨졌고, 더 이상 우리 집에 큰 의미가 있지 않았다. 신혼때 처럼 예쁜 가구들은 내겐 이제 필요하지 않고 내 라이프 방식과는 맞지 않는다

그리고 가구가 반이상을 차지하는 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사실 버린 건 아니다 3년밖에 되지 않았고 막내만 사용했기에 다른 주인을 만날 수 있게 해 주었다 물건을 의인화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리 집에서 인연으로 만난 거였는데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면서도 침대가 나가는 날 나는 너무 홀가분하게 청소를 할 수 있었다 

물건을 비우고 나서 아까워하지 않고 홀가분하다는 건

그 물건이 우리 집에 없어도 되는 걸 인정하는 거다. 그리고 다시는 사지 않을 자신도 생기는 것 같다. 이렇게 한 번씩 소비와 비움의 쓴맛을 보고 나면 다시 이런 실수를 하지 않으리라 마음먹게 된다. 집이 넓어지는 만큼 꼭  물건을 가득 채워야 하는 줄 알았던 어리석은 지난날을 반성하며  난 아침마다 비워진 공간을  걸리적거리는 물건 없이 청소기로 유유자적 밀고 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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