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소원
고둥이 여름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나에게 여름의 의미가 달라졌다. 7년 전, 나의 아빠로 인연을 맺고 나의 아빠로 산지 10년째 되는 해
아빠가 담관암 진단을 받았다 아빠는 두 번의 수술과 수없이 많은 항암치료를 받고 힘든 날 좋은 날을 번갈아 지내며 버티고 있다. 그 과정을 나는 고스란히 지켜볼 수밖에 없는 딸이었다. 힘들어하는 아빠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빠가 드시고 싶은 음식이나 간식을 사드리는 것뿐
그 이상 내가 아빠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드시고 싶은 것이 있냐고 물어봐도 늘 아빠는 괜찮다 돈 쓰지 말라며 손사래를 치시지만, 경력단절에 아이 셋을 키우는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평소에 아빠가 좋아하시는 걸 보내드리곤 한다. 그리고 항암치료로 못 드셔도 늘 잘 먹었습니다. 라며 메시지를 보내신다. 드시고 다 토하신 걸 알면서도 아는 척을 할 수가 없었고 아는 척을 하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걸 알기에 난 끝내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아빠를 위해 난 한여름 까맣게 살을 태우며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걸 해줄 기회가 생겼다. 아빠는 여름 남자라는 별명을 지어줄 만큼 해산물을 좋아하신다. 생선회 생선요리, 갑각류, 조개 등 바다에서 나는 음식을 평소에 늘 즐겨 드셨다. 그래서 우린 아빠 생신 때면 늘 횟집을 갔고, 아빠는 횟집에서 회를 비롯해 간장게장까지 싹싹 긁어 드시고 아빠 앞엔 생선 뼈가 수북이 쌓여 산을 이루고 나서야 일어나신다. 그렇게 좋아하시는 아빠에게 4시간이나 멀리 떨어진 해안가 가까운 곳에 사는 딸이 해줄 수 있는 게 생겼다. 아빠에게 여름을 보내드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남편 직업으로 내가 4번째로 이사했던 곳은 남해로 둘러싸여 있는 경남 사천 20분만 가면 지천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삼천포가 있었고 조금만 더 들어가면 남해 섬을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늘 아이들과 인적 드문 어촌 동네를 걷고 구경하며 지냈다 그러던 주말 돌이 많은 어촌 바닷가에서 아이들과 돌을 뒤집으며 작은 게 등을 보며 놀고 있었는데, 남편이 고둥이 있다고 한다. 고둥? 우리가 여행지나 행사장에 가면 손수레에서 바다 냄새 풍기며 뜨겁게 담겨 있는 그 고둥을 말하는 거였다 순간, 아빠가 생각났고 난 아이들에게‘이거 외할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건데’라며 말하자 남편이 그럼 이거 주워서 장인어른 보내드리자고 했다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남편이 “고둥 많은 데를 알아냈어! 우리가 남해 들어갈 때 다리 건너서 칼국수 먹었던 곳 있지 그 뒤에 고둥이 엄청나 거기 갯벌 체험도 안 하는 곳이라 사람도 없어 이번 주말에 가자”
이 글을 쓰면서도 눈물이 난다 친정에서 너무 멀리 이사를 온 후 자주 보지도 못하는 아빠 때문에 걱정이 많고 힘들었는데 남편이 흔쾌히 먼저 알아봐 주고 가자고 하는 게 정말 고마웠다. 우린 다가오는 주말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외할아버지가 아픈 걸 아는 둘째는 외할아버지 드릴 거라며 더 열심히 잡겠다고 했다. 코끝이 찡해졌다. 고둥을 잡으러 간 곳은 정말 발을 못 디딜 정도로 많았고 길거리에서 파는 것보다 크기도 컸다. 한여름 땡볕에 우리는 팔다리 얼굴이 익어가는 줄도 모르고 바구니 한가득 온몸에 뻘을 묻혀가며 열심히 4시간가량 잡았다 장사해도 될 만큼 고둥을 잡아서 맑은 바닷물에 씻어 잠시 담가 둔 후 돗자리에 앉아 하늘을 쳐다보았다. 아빠에게 이 하늘을 매일 볼 수 있는 시간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빠가 좋아하실 걸 생각하며 된장 넣고 삶은 고둥은 아이스박스에 포장되어 아빠에게 택배로 보냈고. 예상했듯 아빠는 종일 삶은 고둥 그릇을 끼고 바늘로 빼서 드셨다. 얼마 전 엄마와의 통화에 항암치료가 효과가 없으니 항암 후유증으로 힘들어하지 마시고 편하게 지내시는 게 어떻겠냐는 의사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아빠는 진료실을 나오며 ”시한부 인생이구나”라며 혼잣말하는 걸 엄마가 들었다고 한다. 나는 가슴이 아파 한참을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번 여름에도 아이들과 고둥을 잡아서 아빠에게 보내드려야겠다고. 아빠가 못 드신다고 해도 보내드리고 싶다 내가 싫어하던 여름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아빠에게 좋아하는 고둥을 잡아서 드릴 수 있는 계절이라 서다 그래서 여름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