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암 환자의 가족

모두 어떻게든 버티고 있다

by 다정한온기

말기암 환자만큼 버티고 있는 엄마를 보고 왔다.

코로나로 집에서 300km 나 떨어져 있는 친정집에 1년 만에 갔다 온 지난 3월

그리고 다시 방문한 친정에서의 3박 4일


지난 3월보다 아빠는 한참은 더 야위였다 말기 담관암 환자인 아빠는 배에 복수가 차서 복수를 빼는 호스를 끼워 놓은 채 생활하고 있었고 차에서 내려 아빠를 보았을 땐 눈물이 울컥 쏟아져 그런 나를 들켜버릴까봐

괜스레 엄마를 쳐다보며 오는길이 힘들었다며 투정만 늘어놓았다. 복수로 인해 부은 다리는 코끼리 다리처럼 두꺼워져 있었고 소화를 못 시켜 음식 섭취가 힘들어진 아빠는 얼굴과 팔에 앙상하게 뼈가 드러나 보인다.


그래도 딸이랑 손녀들 왔다고 힘겹게 걸으며 웃으며 맞이해주는 아빠의 모습에 속으로 오길 잘했구나 생각했다 더 이상 치료할 게 없다며 항암도 중단했고, 복수가 차서 몸이 부어올랐다는 엄마의 말에 아이들이 방학하면 바로 올라가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친정엄마나 친정오빠에게서 전화가 오면 가슴이 쿵쾅거렸다. 혹시나 얼굴도 못 보고 아빠를 보낼까 싶어서

전화벨 소리에 누구의 전화인지를 확인하기 전에는 심장이 쪼그라드는 느낌을 받는다.

하루라도 빨리 아빠 얼굴을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엄마와 통화를 할때면 엄마는 마음 정리를 하고 계신 듯 늘 '소용없다. 아빠 저 정도면 어쩔 수 없다' 고 말했다.그걸 계속 들어오다가 안 되겠다 싶은 얼마 전 울면서 이야기했다.


"엄마 왜 자꾸 소용없다고 그래! 그런 생각하고 있는 거 아빠가 느낄 수도 있잖아 아빠는 어떻게든 살고 싶을 텐데 왜 옆에 있는 엄마가 소용없다고 포기하는 말을 해 "


"그리고 엄마 나는 지금 당장 가 볼 수도 없는 딸인데 자꾸 그런 얘기하면 금방이라도 아빠가 어떻게 될 것 같아서 무섭단 말이야"


엄마는 미안하다고 했다. 이제 얘기 안 한다고..

자꾸 그런 얘기하는 엄마한테 너무 서운해서 울면서 이야기했지만. 엄마의 마음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말기암 남편의 보호자로 지내고 있는 엄마는 나보다 더 가슴 아픈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르니깐 말이다


암환자는 못 먹어서 죽는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아빠도 음식을 거의 못 드신다. 그러다 입에 맞는 음식을 먹는다 해도 속에서 받아주지 않고 토해내거나 설사를 하는 게 일상이고, 먹고 싶어 먹은 음식은 소화가 안돼서 매일 몇가지의 소화제를 입에 털어 넣고 계신다.

먹고 싶다고 해서 엄마가 음식을 하면 금세 입맛이 없어져 한 숟갈도 먹지 못하거나, 기껏 좋다는 음식을 해주면 금방 토해버린다. 아침에 먹은 음식을 점심에는 메스꺼워하고, 소화시키기 힘든 밀가루 음식을 먹고 싶다고 하면서 해달라고 하신다. 친정집 냉장고에는 아빠에게 해주려고 산 식재료들이 가득가득 쌓여 가고 있었다.


그렇게 엄마는 그게 뭐라도 아빠가 먹을 수만 있으면 계속 음식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하루에 냄비가 5개가 나올 때도 있고, 다 먹지 못해 버리기도 일쑤고, 최근 몇 년간 악화된 상태로 소득이 없는 상황이라 돈 쓰는 일에 힘들어하는 엄마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번 친정 방문은 아빠를 한 번이라도 더 보려고 아이들과 간 것이었지만, 아빠의 곁에서 24시간 지켜주는 엄마의 힘듬을 많이 알게 되었다.

엄마랑 통화할 때는 늘 아빠에 대한 안부를 물어보고 아빠가 드시고 싶은 게 있는지 내가 뭘 사서 보낼 것들이 있는지 항상 그런 식의 통화였다.

사실 엄마도 암환자이다. 갑상샘암으로 두 번이나 전신마취로 수술을 했고 지금도 늘 약을 드시고 계신다.

그런 엄마의 안부를 제대로 물어본 적이 있었나 생각해보았다.


24시간 아빠 옆에서 어떻게든 드실 수 있게 무엇이든지 해주기 위해 일을 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나니 엄마의 삶은 어디에 있는지 안쓰러워진다. 더군다나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 뜨거운 불 앞에서 온몸에 땀이 흠뻑 젖으며 드시고 싶다는 알탕을 끓이는 모습을 보고 내가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 너무 가슴이 아팠다.


아빠가 암 진단을 받은 지 8년째

엄마는 그 긴 시간을 아빠 옆에서 함께 했다. 내가 아빠를 걱정하는 마음에 엄마에게 속상함을 토로한 것이 부끄러워진다. 난 그저 걱정하는 것에서 끝나지만 엄마는 온전히 삶을 다 아빠를 위해 보낸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런 엄마에게 나는 울며 토로하지 않았어야 했는지 모른다. 겨우 걱정만 하는 주제에 말이다


친정에 있는 내내 아빠는 엄마가 차려준 밥상에 밥 한 숟갈 뜨면 그만이었다. 엄마는 가스레인지 앞에서 노상 아빠가 드실 음식을 계속하는 게 반복이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이 나는 엄마만큼 할 줄도 모를뿐더러 아빠를 위해 어떻게 음식을 하는지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빠가 드시고 싶은 음식을 물어보고,열심히 사다드리는 일뿐이었다.


"아빠 메밀국수 드실래요? 제가 사 올게요"

"아빠 팥빙수 드실래요? 내가 사 오면 돼요"

"아빠 고기 드시고 싶지 않아요? 내가 부드러운 거 사 올게요"

"아빠 드시고 싶은 맛조개 사러가요 내가 사줄게 다른 것도 먹고 싶은 거 있음 사요"

"아빠 아빠 아빠 드시고 싶은 거 내가 사 올게 다 얘기해요"


메밀국수를 사 온 점심엔 엄마가 다 드시고 나서

"불 앞에서 땀 안 흘리고 먹으니깐 좋네 아유"


내가 같이 있지 않으면 꾸역꾸역 뜨거운 불 앞에서 음식을 해서 먹을 텐데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힘들지 않고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었고

단 한끼라도 누구든 편하게 드시게 하고 싶었다.


내가 기껏 머무른 시간은 3박 4일, 내가 본 엄마의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고

전부를 본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짐을 싸서 친정을 떠나오는 길은 늘 가슴이 아프다.

가까이 살 수 없는 것이 안타깝고. 자주 올 수 없는 것이 아쉽다. 그리고 마지막일까봐 겁이난다.

엄마가 얼마나 힘들지, 얼마나 참고 인내하고 있을지 그 모든 것을 알 수 없지만

이젠 전화통화에 엄마의 안부를 , 엄마가 드시고 싶으신 것이 무엇인지 꼭 물어볼 거다.

환자만큼 힘든 보호자를 하고 있는 엄마를 위로할 방법은 그것뿐 인 것 같다.


"엄마 날 더운데 뭐 드시고 싶은거 있어? 내가 택배로 보내줄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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