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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온기 Jul 22. 2021

한 여름 1층에 산다

그것도 도로옆 버스정류장



우리 집은 관사다. 그 의미는 나에게 선택권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관사는 한정되어 있고 그 안에서 들어갈 집을 고른다 해도 내 입맛에 맞는 집이란 찾아보기 힘들고, 단 1%라도 좋다면 그걸 위로 삼아 살아간다


작년에 이사 온 이곳은 도시의 변두리 25년이 넘은 한동짜리 아파트, 1층과 2층 그리고 12층이 군에서 매입한 외부 관사 계속 부대 내에 있는 관사에 살다가 처음으로 외부에 있는 아파트 관사로 이사 가는 우리 가족은 너무 신이 났었다. 근데 1층뿐이란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4개월의 주말 부부 생활을 하루라도 빨리 청산해야 했기에 더 이상 다른 곳을 기다릴 여유가 우리에겐 사치였다.1층이면 세 아이가 뛰어도 부담 없고, 짐 옮길 때도 편하고 이래저래 좋은 점만 생각하며 이사를 했는데. 살아보니 좋은 점만 생각하기엔 너무한 1층러의 삶




여름이 시작되며 밤낮없이 베란다 문을 열어놓기 시작했다. 우리 집 앞 베란다 앞은 동네 버스 정류장

기가 막히게도 위치가 아주 딱 맞은편!

오래된 주택들이 많고 젊은 사람보다 나이 든 분들이 훨씬 많은 이 동네의

담소 나누는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은 곳이다.





할머니들의 밤 토크


어느 밤 11시경

날이 더워지면서 잠을 잘 못 이루시는 할머니들께서 부채와 핸드폰을 하나씩 들고 앉아 계셨다. 처음엔 그다지 목소리가 크지 않다고 여겼는데 점점 데시벨이 높아지면서 집의 반대편 뒷베란다에서도 세명의 할머니들의 목소리가 너무 쩌렁쩌렁한 것이 아닌가  우리 집 아이들은 9시면 잠자리에 들기 때문에 밤 11시면 아이들이 한참 깊은 잠에 빠져들기 시작할 때쯤인데  점점 커지는 할머니들의 목소리에 혹시 아이들이 깰까 봐 조심스러워졌다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누구의 험담인지 알정도로 선명하게 들렸고 경상도 특유의 사투리는 안 그래도 큰 목소리를 더 확장시켜주는 듯했다

"추버 죽겠다 무슨 에어컨을 그리 키는지 발시러버 죽겠다 아이고"

오른쪽에 앉은 할머니의 목소리에 왼쪽 할머니가 대답하셨다

"밸로 덥지도 않은데 이 눔 아새끼들이 계속 에어컨 틀고 난 추버서 못있겠드라"

에어컨을 켜놓은 집에 상당히 불만을 가지시고 나오신 것 같았다.

그리고 가운데 있는 할머니는 드라마 영상을 보시는지 볼륨을 최대로 올리시고 유유히 아무렇지 않게 시청하시는데 나와 남편의 인내심이 점점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고

난 끝내  행동으로 옮겨버렸다. 사람들이 시끄럽게 할 때 말을 섞으면 감정이 격해져서 가끔 써먹었던 것

베란다 문을 아주 세게 '쾅'하고 닫아 버리는 것이다

난 모기장을 살짝 열었다가 있는 힘껏 쾅~ 하고 닫았다. 그러자 한 할머니가 소릴 듣고 고개를 뒤쪽으로 돌리자  옆에 있는  할머니가 " 와그라는데 와 쳐다보니? 뭐 있나?"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눈치는 챈 것 같아 한번으로 끝내고 이제 좀 조용하겠지 싶었는데

잠시 조용한가 싶더니 이번엔 스피커폰 통화모드

"여가~ 거기 거 버스 정류장 여 앉아 있다 ~ 너는 어덴데? 에어컨 때문에 추버가 나와있다 아이가"

하... 정말 나이 드신 분들 욕하고 싶지 않지만 , 너무 없는 개념 어떻게 해야 될지 부글대는 속을 누르며

조금만 더 참자 노인네들 어쩌겠냐 싶어 끓어오르는 분노가 꼭지까지 올라오기 직전

할머니 세 분은 정류장을 떠나셨다.


새벽 청년들


새벽 1시 잠들었던 나를 깨우는 청년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들린다

"이새꺄 친구니깐 그런 거 아이가~친구 아이믄 이라겠나~ 씹쎄끼"

이 대화가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불법 변경한 자동차의 머플러 소리가 계속해서 웅웅거렸다

"연락 좀 하고.~ 이 새끼는 손까락이 뿌라짓나 전화를 안하노~"


이날뿐만 아니라 일주일에 서너 번은 우리 집 앞에서 젊은 남자 셋이서 저렇게 대화를 나눈다.

이 동네는 다 저런 사람들만 있는 건가 싶어 지네

내가 자는 방 방충망을 순간 느끼는 짜증을 최대한 섞어 아주 강하게 내리쳤다.

소리를 들은 젊은 남자들은 서둘러 마무리 하며 자리를 떠났다. 난 그들이 다시 오지 않기를 소망한다


새벽 두시 음악인


느닷없이 하모니카 소리가 들려온다. 아니 이 시간에 대화 소리도 아니고 하모니카를 부는 사람은 도대체 뭐지? 한참을 계속 하모니카를 불며 정류장을 서성이는데 더이상 못 참겠다며 일어선 순간

윗집에서 베란다를 가로질러 걷는 쿵쿵쿵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베라다 문 소리가 나고

나지막이 들리는 윗집 남자의 말

"저기요~"

그러고 나서 하모니카 소리는 뚝 끊어졌다

내가 하려고 한 그 찰나 윗집에서 먼저 나서 준 것이 참 고마운 날이었다 그리고 그나마 짧게 끝난 새벽의 소음이었다





1층에 이사와 살면서 소리에 대한 스트레스가 높아졌다. 특히나 부대안 관사와 너무 다른 사람들의 생각으로

층간소음부터 내가 알고 있는 그런 기본적인 사람들의 배려가 이곳에서는 안 통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부대안은 한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들이고 알고자 하면 누구집인지 금새 알아볼 수 있는 곳 그래서인지 몰라도 서로 피해주지 않기위해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다 그랬다.

그런데 이곳은 익명이라는 핸디캡이 있어서 일까 지극히 아주 개인적인 삶들을 살아가는 것 같다.

어쩌면 이게 정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 10 시건 새벽 1시이건 자신들의 말할 권리를 행사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고 내가 아이들을 일찍 재운다고 윗집 아이들이 일찍 자는 건 아닐 테고

자정까지 초등학생 남매를 재우지 않고 서로 악다구니하며 울고불고 싸워도 부모의 중재가 없는 윗집이 어쩌면 평범한 집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1층 안방 베란다에서 담배냄새가 나는데도 관리사무소에서는 냄새는 절대 아래로 내려오지 않는다며 어느 집에서 담배를 폈을까 아리송한 표정을 하는 게 어쩌면 그들의 사는 방식일 거라고 이해해본다


지금까지 내가 싫었던 건 남에게도 하지 않아야 되는 게 맞는 거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살았는데  너무 좁은 세상을 살았던 걸까? 다들 저렇게 살고 있었는데 나만 피해 주지 않으며 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사람 쉽게 변하지 않듯 나 역시 모진 마음 먹어보지만 나의 아이들에게 그런 모습 보여주고 싶지는 않다 늘 그렇듯 어제처럼 또 살아갈거다. 내가 사는 방식이 정상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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