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장. 그 사랑이 나를 단단하게 하였다.

by 달이음


현우는 전화를 끊은 후 다시 차창 밖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과거를 떠올린다.


[과거 회상]


교복을 입은 현우는

갑작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서준이네 집을 뛰쳐나간다.


서준은 놀라서 “야, 김현우!” 하고 이름을 부르며 뒤따라 나간다.


거실에 남겨진 서준 엄마는 당황한 표정으로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눈빛이 흔들리며 뭔가 큰 실수를 했다는 자책이 비친다.


골목을 빠르게 뛰어가며 현우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알고 있었어. 모르는 척하고 있었을 뿐이지.

친구들 부모님과 비교할 때마다 이상하다고 느꼈어.

왜 우리 부모님만 이렇게 나이가 많을까.

그냥 늦둥이로 태어난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었는데…

결국, 다 사실이었구나.”


과거로 더 깊이 돌아간다.

초등학생쯤의 어린 현우.


자고 있던 방에서 살짝 깨어 문틈을 본다.

엄마는 액자를 들여다보며 흐느끼고 있고,

아빠는 아무 말 없이 등을 다독인다.

엄마 손에 들린 액자 속 사진이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 없었다.
현우는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 장면이 강하게 머리 속에 남았다.


또 다른 회상.


서준의 자전거를 빌려 타다 넘어져

무릎이 까져 피가 난 채로 현우가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와서 엄마에게 사실대로 얘기하니,


평소에 다정하기만 했던 엄마가 처음으로 크게 화를 낸다.

“누가 자전거 타라고 했어? 절대 타지 말랬잖아!”


현우는 놀라서 멍한 상태가 되었다.


이내 엄마는 울먹이며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무릎을 치료해준다

“다신, 다신 자전거 타지 마… 제발…”


다음 회상.


“얘들아. 사과랑 배 까놨다.”


교복을 입은 현우가 서준이네 방에서 같이 놀다가 거실로 나간다.


서준이 엄마가 과일을 먹는 현우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툭 내던지듯이 묻는다.

“현우야… 너희 할머니, 할아버지 건강은 괜찮으셔?”


현우는 의아해하며 답한다.

“저… 할머니 할아버지 안 계신데요?”


순간 분위기가 얼어붙고, 서준이 엄마는 얼른 딴청을 부리며 화제를 돌리려 하지만,

현우는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저희 엄마, 아빠 말씀하신 거예요?”


서준이 엄마는 조심스레 말문을 연다.

“현우야, 사실은… 너도 다 컸으니 이제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얘기할게…”

이어지는 고백.


“너희 엄마, 아빠는… 사실 너의 친할머니 할아버지셔.

너의 진짜 부모님은,

너가 돌이 막 지났을 때…

사고로 돌아 가셨어.”


“사고…요?”

“마트에 가려다 앞에 있던 트럭이 자전거를 못 보고 옆으로 피하면서..

너네 엄마, 아빠 두분 다 그렇게..


서준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엄마 대신 설명한다.

“트럭 뒤에 실려 있던 철근이… 차 안으로…”


“……너도… 알고 있었어?”


“미안. 너 빼고는…

동네사람들 대부분이 다 알고 있었어.

너 할머니 할아버지가 이 사실 숨기려고 무지 애쓰셨거든.”


그렇게 현우는 진실을 듣고 충격에 빠져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서준은 "야, 김현우!"라고 외치며 뒤따라 나왔다.


현우는 눈물을 흘리며 서준의 손을 뿌리치지만,

서준은 그의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너가 그런다고 너네 부모님 안 돌아오셔.

지금 널 이렇게 키우신 게 누군지 잘 알잖아!"


현우는 울면서 대답한다.


"알아. 아는데... 나한테 그냥 말했어도 되는데.

왜 나만 빼고 다 아는 사실을 나한테만 숨긴 거야.

할머니, 할아버지가 부모님 대신이라며...

왜 부모님이 나한테 비밀을 만드냐고. 그냥 말해도 됐잖아.

난 그냥 말했어도 이해했을 텐데. 이미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는데..."


현우는 모든 걸 알아버린 그날의 상처를 덮기로 다짐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자신을 어떤 마음으로 키웠는지 뼈저리게 느껴졌다.


본인만 모르는 채 한다면,

우리 가족은 영원히 행복할 것이다.


이 기억을 품은 채,

현우는 그 날 이후로 어떠한 내색도 하지 않고 평소와 다름없이,


사실은 할머니, 할아버지인 두 분에게,

계속해서 엄마, 아빠라고 불렀다.


‘엄마. 제가 얼른 갈게요.’ ,

현우는 자신의 뿌리와 상처를 인정하고 감싸 안는,

단단한 어른이 되어 있었다.


현우는 창밖을 흐릿하게 바라보다가 짧은 회상을 마쳤다.

‘제발.. 괜찮으셔야 할텐데…’


손에 쥔 휴대폰 화면을 켰다 껐다 반복하며 현우의 마음이 점점 초조해진다.





필름의 끝에는 언제나 네가 있었다. [필.끝.너]


- 달이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