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이 모로코로 돌아간 날,
이람은 괜히 마음 한구석이 휑한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이어진 가족의 온기를 짧은 시간 안에 떠나보내려니 생각보다 마음이 허전했다.
그날 저녁, 현우가 이람을 데리러 왔다.
“산책할래?”
“응. 좋아.”
둘은 조용한 공원 길을 나란히 걸었다.
초록빛 가로등이 벤치 아래를 따뜻하게 비추고 있었다.
잠시 걷다, 현우가 말없이 벤치에 앉았다.
이람도 옆에 조심스레 앉았다.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다가, 현우가 이람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이람아, 나 있지… 너를 다시 만나고 나서 하루하루가 선물 같아.”
이람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대답했다.
“나도 그래. 아직 조금 어색하긴 한데… 그래도… 좋아.”
현우는 잠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 진짜 연인처럼 해도 돼?”
이람은 순간 숨을 삼키고, 조금 떨리는 눈으로 현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없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현우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이람의 얼굴에 닿을 듯 말 듯 손끝을 멈췄다.
그 순간, 이람은 너무나 떨리는 가슴을 느끼며 살며시 눈을 감았다.
현우의 얼굴이 이람의 얼굴로 서서히 다가가고
그의 입술이 이람의 작고 부드러운 입술에 닿았다.
한참을 마음속에 그려왔던 그 첫 순간이,
가만히 너무나 조용하게 현실이 되었다.
바람은 잔잔했고, 가로등 불빛이 두 사람의 그림자를 천천히 길게 늘였다.
현우는 이람의 이마에 이마를 살짝 대고 숨처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람아. …너무 보고 싶었어. 내가 많이 좋아해..”
이람은 떨리듯 작게 웃었다.
그리고 말없이 현우의 입술에 다시한번 입술을 포개었다.
며칠 전, 카페에서 나와 어둑해진 거리를 걷던 보미와 서준.
둘은 이제 ‘사귄다’고 말은 했지만 말 한마디 꺼내는 것조차 어색해졌다.
보미가 먼저 입을 뗐다.
“…야. 사귄다고 하니까 좀 이상하다.”
서준은 한쪽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게. 말만 바뀐 건데, 분위기가 왜 이래.”
보미는 서준의 옆을 툭 치며 말했다.
“야. 지금 긴장했냐?”
“하, 누가? 내가? 설마.”
말과는 달리, 서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 톤 높아져 있었다.
보미는 그 모습이 웃겨서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야, 근데... 그거 있잖아.”
“뭐.”“그거. 연인들이 제일 많이 하는 거.”
서준은 눈을 가늘게 뜨며 보미를 바라봤다.
“…뭔데.”
보미는 걸음을 멈추더니 서준 쪽으로 휙 돌아섰다.
“키스.”“………”
서준은 순간 할 말을 잃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보미는 능청스럽게 말했다.
“우리 이제 사귀잖아? 첫키스 같은 거 해야 되지 않겠어?”
“…아니, 그런 걸 사귀기 시작한 첫날에 한다고?”
“왜? 너 쫄았냐?”
“하, 내가?”
서준이 당황한 기색을 감추려 고개를 살짝 젖히고 피식 웃었다.
그 순간- 보미가 먼저 서준의 앞으로 한 발짝 다가섰다.
그리고 서준의 셔츠 앞자락을 툭, 잡아당겼다.
“그럼 내가 먼저 할게.”
짧고 빠르게, 서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순간 모든 소리가 멎은 듯 고요했고,
서준은 눈도 못 감은 채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보미가 한 발 물러서며 말했다.
“됐지?”
서준은 여전히 얼떨떨한 얼굴로 보미를 바라봤다.
“…지금 뭐, 한 거야?”
보미는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첫키스. 속전속결 스타일.”
“…. 다음엔 내가 한다. 아, 당하다니 자존심 상해”
“후후. 알겠어.”
서준은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진짜 미친다. 너무 귀여워…”
그리고는 보미의 어깨를 조용히 쓱 감쌌다.
말은 아끼고, 마음은 드러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