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와 헤어지고, 서준과 보미는 캠퍼스 근처 조용한 카페에 마주 앉았다.
보미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빨대로 휘저으며 의외로 조용하게 앉아있었다.
서준은 컵을 내려놓으며 툭 던지듯 물었다.
“야. 너가 생각하기에… 우리, 썸 같냐?”
보미는 들고 있던 빨대를 놓으며 약간 버럭하듯 대답했다.
“아니거든?!”
그런데 말과는 달리, 얼굴은 살짝 붉게 물들어 있었다.
서준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근데… 우리 썸 맞는 거 같은데.”
보미는 당황해서 다시 고개를 돌렸고, 서준은 말을 이어갔다.
“나 너 좀 귀여운데. 그냥… 우리 사귈까?”
조용한 카페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보미는 두 손으로 컵을 감싸고, 고개를 살짝 숙이며 작게 말했다.
“...아니, 그렇게 갑자기 말하면 어떡해.”
서준은 다시 툭 내뱉듯 말했다.
“됐어. 그냥 해본 말이야. 없던 얘기로 해.”
그 말에 보미가 재빨리 고개를 들었다.
“아니! 싫다는 건 아니야.”
서준은 멈칫했다.
보미는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나도 너… 귀엽고 편해. 너랑 있으면… 좋아.”
서준은 깜짝 놀란 눈으로 보미를 바라보았다.
보미는 얼굴이 더 붉어진 채 입술을 꾹 깨물다가 말했다.
“...그래. 우리, 사귀어.”
서준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다가, 피식 웃으며 컵을 들었다.
“그래. 그럼 우리 오늘부터 1일이다.”
보미는 입꼬리를 억지로 감추려 애썼다.
하지만 귀 끝까지 붉어진 모습은 감춰지지 않았다.
이람, 현우, 이진.
셋은 밥을 먹고 천천히 길을 걸으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진이 말했다.
“삼촌도 잘 계셔. 엄마, 아빠, 그리고 나까지. 다 지금은 모로코에 정착해서 거기 병원에서 일하고 있어.”
현우가 이람과 이진의 대화 사이를 껴들며 물었다.
“아직도 세분 다 의료 쪽 일 하시지?”
“네. 삼촌은 정형외과 의사, 우리 아빠는 내과, 엄마는 간호사에요.
어렸을때부터 병원이 없는 지역을 찾아서 이동하며 거의 평생을 봉사하면서 살아왔어요.”
이람이 조용히 말을 이었다.
“나도 19살까진 같이 다녔었어.”
“근데… 여기 수의대 들어오려고 한국에 온 거야. 여기가 전국에서 수의학과 제일 유명해서.”
현우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때 그렇게 갑자기 사라진 거였구나. 13살 때.”
그리고는 이람의 양 볼을 살짝 잡고 앙탈을 부리듯 말했다.
“너 그때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진짜 울고불고 난리치며 너 찾아다녔단 말이야.”
이람은 미안하다며 현우의 품으로 쏙 들어갔다.
그걸 보는 이진은 “아오 눈꼴시려워.” 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셋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따뜻한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내고, 현우는 이람과 이진을 배웅해준 후 집으로 향했다.
이람의 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소파에 푹 파묻혀 오랜만에 회포를 풀기 시작했다.
“언니, 근데 진짜 여긴 조용해서 좋다~ 모로코에서는 이런 밤 되게 드물거든.”
“그러게. 거기선 항상 어딘가 바쁘고 시끄럽고, 그래서 조용한 집이 그리웠겠네.”
이진은 노트북 의자에 앉아 헤드셋을 끼고 음악을 틀기 시작했다.
익숙한 비트와 함께, 음악 소리가 헤드셋을 뚫고 나왔다.
이람은 순간 인상을 찌푸렸다.
“아직도 음악 그렇게 크게 듣니? 귀 망가진다니까 또.”
“언니는 예전부터 나한테 잔소리할 땐 꼭 엄마 같단 말이야~ 근데… 좀 그리웠다. 이런 잔소리.”
이람은 말없이 웃으며 이진의 어깨에 쿠션을 던졌다.
“잔소리가 아니라 너 걱정하는거야”
두 사람은 그렇게 밤이 깊도록 수많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어린 시절 함께 다녔던 봉사 지역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의 일들까지.
그날 밤, 이람의 작은 원룸엔 오랜만에 사람 냄새가 풍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