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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곱슬머리앤 Dec 17. 2021

크리스마스까지는 더 먹어야 해

 

 어린이와 함께 지내면 이벤트에 열정을 쏟게 된다. 가을 내내 할로윈이었던 우리 집은 겨울 내내 크리스마스일 예정이다. 올해 처음으로 어드벤트 캘린더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거다 싶었다. 


아이를 재워 놓고 사부작사부작 궁리를 시작한다. 집안을 돌아다니며 쓸 만한 재료들을 모아서 책상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두꺼운 판지를 오려 나무 모양을 만들고 종이 띠가 달린 세모난 초콜릿을 오너먼트 삼아 걸어 본다. 가느다란 전구를 둘러보니 이제 그럴싸하다. 흡족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든다. 


다음 날 밤 아이와 함께  하나, 둘, 셋, 짠! 하고 반짝이는 전구를 켰다. 조촐한 크리스마스 트리에 우아아, 감탄사와 함께  물개 박수가 나온다. 이 순간 나는 대단한 걸작을 세상에 공개한 예술가처럼 한껏 우쭐해진다. 

하루에 딱 하나씩만 먹는 초콜릿이라는 말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던 아이는 며칠이 지나자 제법 의젓하게 앉아 오늘의 초콜릿을 기다린다. 또 며칠이 지나자 섬세하게 초콜릿 포장을 벗기는 기술까지 터득한다. 그런데 입가에 초콜릿을 안 묻히고 먹는 방법은 아직 모른다. 별로 안 궁금한 것 같다. 


어린이집에 가는 길에  “이제 크리스마스까지 몇 밤이나 남았어?” 물어보았다. 

곰 생각하던 아이가 이렇게 말한다.


음… 많이 먹어야 돼!


세 개가 세상에서 제일 많은 것인 줄 아는 아이에게 열흘이 넘게 남은 밤을 세 보라고 했으니 그야말로 우문현답인 셈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말이 듣고 싶어서 어리석은 줄 알면서도 매번 묻는다.


나는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노는 어른들과 어린 시절을 보냈다. 꽃밭이 보이면 꽃반지를 만들어 손가락에 끼워 주는 엄마가 있었고, 커튼을 잘라 원피스를 만들어 주는 이모도 있었다. 여름이면 아빠와 이모부와 삼촌들은 바지를 둥둥 걷고 개울에 들어가 혹여나 바닥에 뾰족한 것이 있을까 더듬더듬 골라내고 야트막한 둑을 쌓아 주곤 수선을 떨어가며 송사리 잡는 법을 알려 주었다. 

어린이에게는 야금야금 꺼내 먹을 수 있는 추억이 많아야 한다는 걸, 살다 보면 그것 만한 곳간이 없다는 걸 알려 주려고 바쁜 일 미뤄두고 기꺼이 사부작거렸을 어른들의 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이제 일주일 뒤면 크리스마스다. 오늘은 뭐라고 하려나 궁금해서 한 번 더 물어보았더니, 오늘 아침엔 이렇게 말한다. 


음… 더 먹어야 돼!



 참으로 현명한 어린이로구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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