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던 아빠. 2편

내가 바라던 가족

by 이다래

서울에 올라온 지 1년 즈음됐을 때였다. 직장을 옮기게 되었는데 집과 거리가 꾀나 멀었고, 어차피 고시텔에 살고 있어서 이사를 한다 해도 큰 문제가 없었다. 집을 알아보러 가기로 한날, 부모님이 3시간을 걸려 서울까지 와주셨고, 직장 근처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발품을 팔고 있었다. 하지만 갖고 있는 돈에 비해 괜찮은 집은 쉽게 찾을 수 없었고, 급기야 생활정보지를 꺼내 들었다. 중계비가 들지 않으니 좋지 않겠냐는 아빠의 생각이었다. 그렇게 찾은 방은 요즘 말로 셰어하우스. 방 3개인 연립주택에 큰 방은 집주인 할머니가 쓰고, 작은 방 두 개를 세입자가 각각 하나씩 쓰는 형태였다. 이렇게만 들으면 서울에서 혼자 사는 여자가 어른과 같이 사는 형태니 나쁠 것도 없지. 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위치가 조금 마음에 걸렸다. 큰 길가에서 집주인 할머니를 만나 집까지 같이 걸어가는데 자꾸만 나타나는 오르막길에 아무 말도 못 하고 엄마와 알 수 없는 눈빛만 주고받은 기억이 난다. 시골 출신인 나도 그렇게도 가파른 길은 태어나서 처음 봤다.


집을 보고 난 뒤 아빠는 이 집으로 하자고 했고, 나도 얼떨결에 그러겠다고 했다. 계약을 하자마자 이사를 하고, 필요한 가구들을 샀다. 사실 집 자체에는 불만이 없었지만 가파른 길이 맘에 들지 않았고, 급하게 고른 가구들도 내 취향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티를 낼 수 없었던 건, 멀리서 와서 이사하는 내내 나와 함께 있어준 부모님의 수고를 알고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빨리 집으로 돌아가 쉬고 싶다고 말하고 있는 아빠의 뒷모습 때문이었다. 아빠는 집에 가구를 들여놓자마자 떠날 준비를 했다.


아마 남편이었으면 아인이에게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다. 몇 날 며칠이 걸려서라도 아인이에게 최적인 집을 구해줬겠지. 돈이 부족했다면 무리하게 대출이라도 받았을 거다. 집을 구해주고 나서도 집안 이곳저곳을 살펴봤겠지. 웃풍은 없는지, 문은 잘 잠기는지, 곰팡이 핀 곳은 없는지. 아마 멀쩡한 도배, 장판도 새로 하자고 하고, 창문이 옛것이면 샷시로 바꾸자고 했을 거다. 가구도 아인이가 고르는 건 다 괜찮다고 했겠지. 이건 약해서 안 되고, 저건 비싸서 안 된다는 말 따윈 안 했을 거다. 그러면서도 혼자 살아야 하는 아인이가 짠해 몰래 한숨을 쉬었을지 모른다. 모든 이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나보다 먼저 눈물을 흘리겠지. 아니, 애초에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하고 하룻밤 자고 간다고 했을 거다.


그런 상상을 하고 있으면 그때의 내가 조금은 덜 안쓰럽게 느껴진다. 내가 아인이가 된 것도 아닌데 괜히 그런 마음이 든다. 나의 어린 시절을 돌이키는 일은 대부분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곤 했다. 미워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바빠서 그 시절의 나를 돌보는 일 따윈 생각지도 못했을뿐더러 내가 나를 보듬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어색하고 오글거렸다. 하지만 이젠 아인이와 남편이 그때의 나에게로 가서 나를 안아준다. 내가 바라던 아빠. 내가 바라던 가족의 모습. 지금 내가 그 안에 있는 것 같아서 가끔은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사람이 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