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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시인 May 15. 2020

떠나고 싶다

떠나고 싶다

하루 이틀 
잠만 자고 오는 여행 말고
손가락만 바삐
좋아요만 남는 휴양 말고

밥을 해 먹고 빨래를 하고 
등이 나가면 등도 갈고
계절이 바뀌는 모습에 감탄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떠나고 싶다

그곳은 겨울에는 밟을 만큼 눈이 내리고 
여름에는 더위 가실 만큼 장댓비가 내린다
겨울밤 바람이 세차서 껴안고 있지 않으면 잠에 들 수 없고
여름밤 바람이 선선해서 달빛길 따라 걷지 않을 수가 없다
땅이 비옥해서 무엇을 심어도 맛이 풍부하고 양이 넘쳐나며
남은 양식으로 술까지 빚을 수 있다
당일배송이 되지 않아서 조급할 필요가 없고
아는 사람 하나 없어서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실수를 해도 풀들은 계속 자라나고
한밤중에 노래를 불러도 다음날 아침은 평온하고
한사코 울고 나면 아무렇지 않게 일상으로 돌아간다
원천이 되는 곳
당신도 있는 곳

나는 이제 그만 떠나고 싶다
나는 그만 이제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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