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아가는 시간6)
당신도 이런 날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기꺼이 배려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닳아버린 날.
누군가를 챙기느라
정작 나는 뒤로 밀려난 하루.
몸은 지치고 마음은 허무한 감각.
괜찮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전혀 괜찮지 않았던 날.
나는 어릴 때부터,
무언가를 나누면
항상 마지막에 내 몫을 챙기는 사람이었다.
사탕이 몇 개인지 몰라도
먼저 나눠주고,
내 몫이 없어도 그냥 웃고 말았다.
편의를 위해
혹은 다른 사람을 위해
손해를 보는 일이 오히려 기뻤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게 편했고,
내가 주는 것보다 더 받으면
때로는 빚처럼 느껴졌다.
하나를 받으면
두 개를 주는 일이 더 마음 편했다.
돌이켜보면, 어른이 되어서도
비슷한 장면이 많았다.
밥을 먹으면 내가 먼저 계산했고,
모임을 하면 내가 장을 맡아 더 움직였고,
대화에서는 말하기보다 더 들으려고 노력했다.
대부분은 좋았다.
뿌듯했고
오히려 힘을 얻었다.
그런데 어떤 관계에서는 좀 달랐다.
두 번까지는 괜찮았다.
세 번째부터는 마음이 지치고 무거워졌다.
이런 일이
하나씩 쌓일 때마다
이유 없이 피곤해졌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어떤 관계에서는
이건 배려가 아니라,
나를 갉아내는 역할을
스스로 맡는 일이라는 걸.
시간이 흘러, 결론에 도달했다.
배려를 당연하게 소비하는 관계를,
이제는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함께 일하거나,
함께 준비하는 자리에서도 비슷했다.
나는 내가 필요한 자리면
기꺼이 앞에 섰고,
더 움직였고,
더 책임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
누군가는 편하게 쉬고,
누군가는 묻어가기 시작했다.
그때도 나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떳떳했고,
잘 해내는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고,
무엇보다 관계를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지인이 있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전화가 왔다.
메시지가 왔다.
몸이 아픈 이야기,
직장에서의 트러블,
관계의 어려움,
자신의 어두운 과거.
나는 늘 들었다.
끝까지 들었다.
다 괜찮아질 때까지 함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내가 도움이 필요해서 연락했을 때,
언제부턴가
답장은 늘 늦어지고 있었다는 걸.
메시지를 나누다가
도중에 사라지고
다음 날 연락이 오기도 했다.
설명은 없었고,
미안함도 없었다.
당연하다는 얼굴이었다.
한 번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 가끔은 좀 이해가 안 돼."
돌아온 말은 차가웠다.
"그러면 내가 내 스케줄 다 내려놓고
답을 해야 하나?"
너무 어이가 없을 때는,
할 말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날 나는
침묵했다.
할 말을 몰라서가 아니라,
이 관계를 성숙하게 정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듣자마자 느꼈다.
이 관계에서
굳이 애써
나를 지우면서까지
좋은 사람으로 남을 이유가 있을까.
그럼에도
나는 그때도
먼저 사과했다.
습관처럼, 관계를 지키는 쪽을 선택했다.
관계를 나쁘게 끝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이상
내 고민을 털어놓지 않았다.
더 이상
내 시간을 쉽게 내어주지도 않았다.
상대는 자연스럽게 멀어져 갔다.
또 한 번은,
첫 아이의 조리원 동기,
아이 친구 엄마와의 관계였다.
처음엔 따뜻했다.
서로가 힘들 때 만난 관계는
그 공통분모만큼이나 더 애틋하다.
그래서 나도
더 잘하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식사비 계산은 늘 내 몫이었고,
아이들 간식 챙김도 내 몫이었고,
편의를 위해 챙겨간 내 물건들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곤 했다.
때론 내 아이까지
그 당연함의 불편함을
감당해야 했다.
모든 것이
당연해졌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나를 지우면서까지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할까.'
그래,
나는 남에게는 친절했지만,
나에게는 무례했다.
때론 내 가족과 아이에게까지
그 무례를 감당하게 했다.
배려는 아름답다.
하지만,
일방적일 때
그건 소모가 된다.
존중 없는 배려는
자존감을 깎는다.
성숙한 관계는
이렇게 생겼다.
성숙한 관계는,
누가 더 했는지 세지 않지만
누가 얼마나 고마운지는 잊지 않는다.
한쪽만 무너지게 두지 않고,
함부로 편해지지도 않는다.
매달리지는 않되,
외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제
기준을 만들었다.
세 번 반복되면 멈춘다.
존중이 없으면 거리를 둔다.
설명하지 않아도 느껴지면 떠난다.
상대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나를 지킨다.
배려는
나를 포함할 때만
사랑이 된다.
우리는 늘
잘 버티는 사람입니다.
참고,
넘기고,
웃으며 견딥니다.
그래서 더 쉽게
나를 잃습니다.
오늘은,
누군가를 먼저 챙기기 전에
나에게 먼저 묻기로 했습니다.
"나는 지금, 괜찮은가."
그리고
무리한 마음 하나 내려놓고,
나에게도 친절해지기로 했습니다.
세상을 다 배려하느라
정작 나를 방치하지 않기로.
오늘은,
그 결심 하나로도
충분히 단단한 하루입니다.
당신도 조용히 선언해 보세요.
'나는 더 이상
나를 희생하며 살지 않겠다.'
그 선택 하나만으로도
오늘은,
충분히 나를 지켜낸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