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다정한 말을 거는
집으로 가는 언덕길을 오르며 엄마와 옛날얘기를 한다. 여기는 영국빵집 (초등 동창 이름이 영국이기도 했고, 이국적으로 생겨 이목을 끌기도 했던 아이 이름을 따서) 자리, 여기는 두 번째 점방(언덕길 위쪽에 비슷한 가게가 있었던 탓에 아래 가게는 저절로 두 번째 점방으로 부르게 되었던) 자리, 한참 비디오가 생기기 시작했을 때는 길자.라는 친구가 하던 비디오 대여점도 여기 있었지. 언덕을 거의 오르면 초등 4학년 때 이사 가기 전까지 살던 이모 집도 있다. 가로로 난 골목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서녘 집 옆이 빨간 벽돌집, 큰 이모 집이었다.
언덕을 다 오르면 할머니가 주인인 첫 번째 점방이 있다. 이십 원짜리 '자야'는 비싸서 십 원짜리 '뽀빠이'를 사 먹고, 하얀 설탕이 잔뜩 붙은 오 원짜리 젤리를 사 먹던 곳. 카드를 갖다 대면 알아서 계산되는 지금을 생각하면 참 오래된 얘기다. 점방 앞에는 나무 전봇대가 있었다. 과자를 사 들고 나오며 전봇대를 올려보기도 많이 했다. 몇 살 때였는지 생각나지 않는 기억 속의 나는 전봇대를 힘껏 올라간다. 한 발 한 발 위를 보면서 올라갈 힘이 없을 때까지 올랐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전봇대를 한가득 껴안고 주욱 미끄러져 내려온다. 낡은 티셔츠나 하나 걸쳤을까. 오랜 비바람과 뜨거운 해에 조금씩 삭아가던 전봇대라는 걸 미처 몰랐던 어린 나는 전봇대 잔가시가 온몸에 박혀 눈에서 불이 났다. 너무 아파서 팔짝팔짝 뛰었다. 요즘 같았으면 구급차를 불렀을 일이다. 그랬던 탓인가, 아이를 키우면서 웬만한 일엔 괜찮아, 로 퉁쳤다.
그런 골목을 가르며 아래로 내려가는 찻길이 생겼다. 골목을 동강 내는 찻길을 보면 기억조차 끊기는 느낌이다. 필름 한 편이 난데없이 싹둑 잘리거나, 오래된 노래에 지윽한 잡음이 생기며 빨리 감기는 느낌이 이럴까. 어린 생각으로 골목은 길었다. 눈이 많이 내려 소복이 쌓이기라도 한 날엔 승주네 집 높은 담벼락에 붙어 다른 곳보다 더 높이 쌓인 눈더미는 손으로 만지거나 발자국 찍기 아까울 정도였다. 엄마를 따라 멀리 할머니 집에 다녀오다가 따뜻한 호떡 한 봉지를 사 품에 넣어 안고 오며 아무도 걷지 않은 눈 쌓인 그 길을 보면 호떡 심장만큼이나 따뜻했다. 이미 사라졌으면 아무 생각도 없었을 걸 지금껏 변하지 않았던 오래된 골목이 새로워지는 일은 낯설다.
동네를 채웠던 것들이 사라지고, 변하는 것이 이제 새롭지도 않을 만큼 흔한 일상이 되었다. 새로움에 대한 갈증이 생기기도 전에 세상은 낡은 것을 미련 없이 갈아치운다. 지금보다 더 편하게, 지금보다 더 빠르게, 지금보다 더 크고 멋있게. 그런 중에 때때로 생각나는 옛 기억. 계단에서 스치는 냄새 하나로, 문득 지나는 희미한 색깔 한 조각에 단번에 시간을 무너뜨리며 기억이 온다. 오늘은 우연히 나무 전봇대를 만나서 어딨었는지 몰랐던 긴 자락의 기억이 실타래처럼 끌려 나온다. 잊은 게 아니었나 보다. 점점 쌓이고 덮여가서 보이지 않았을 뿐 치우지 않았으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나 보다. 작은 느낌 하나가 불러오는 기억이 한 세월이다. 기억을 세다 밤 다 밝히게 긴….
돌아보아야 안다, 지나온 길인 걸. 앞을 향하고선 지나온 길이 보이지 않는다. 산을 오를 때 길을 잃을까 봐 자꾸 뒤를 돌아보며 걸었던 적이 있다. 돌아가기 위해 뒤를 보았다. 걸어온 길을 잃더라도 다른 길로 찾아가면 되는데. 집을 찾아가는 길은 여러 갈래니까. 지나온 길을 돌아보기보다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일이 생산적인 거라고, 앞을 보며 가는 사람이라야 지금보다 나은 사람이 된다고 다짐했었다.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선 낯선 길을 걸어야 하는 줄 알았다. 오래된 골목길이 오래된 나에게 오늘 제법 다정한 말을 걸어온다. 네가 걸었던 길은 새 길이었다고. 앞서 갈 때 보지 못했던 것이 자라는 하루하루는 모두 새로운 날들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