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웃어
오래된 친구를 만나 사는 얘길 한다. 십여 년 이상을 못 보고 살기도 했다. 생각나면 어쩌다 식구들 안부를 묻고, 아이들이 올해 나이가 몇이지 하는 정도 통화나 잠깐 했을까, 뭘 하며 사는지, 잘살고 있는지를 빼면 공통관심사가 없으니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었다. 추석 명절이 있기 사흘 전인가 그의 어머니의 부고를 받았다. 친구와 한참 어울리던 학창 시절로 마음이 간다. 일본에서 태어나 와세다 대학을 다니다 중퇴했다던 그의 아버지는 인텔리였지만, 고향으로 돌아와선 기를 펴지 못했다. 먹고사는 건 어머니 몫이었다. 어머니는 볼 때마다 유쾌했다. 딸이 넷인 그의 집은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했으나 아버지로부터 받은 문화적인 자산은 든든했다. 고등 때 아버지가 갑자기 유명을 달리하지 않았더라면 친구는 더욱 속깊은 정을 쌓았을지 모른다.
학창 시절 때는 몰랐다. 다른 친구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특이한 점이 아버지 영향이었다는 걸 오늘 얘길 나누면서야 이해하게 됐다. <토요명화> 할 때마다 딸들 넷을 TV 앞에 조르르 앉혀 놓고 같이 보았다는 이야기,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작품 얘기를 아버지 통해 들었던 이야기 등등…. 친구의 입을 통해 나오는 박학다식한 문학과 역사 이야기가 신기하면서도 다르게 보였다. 먹고 사느라 바빴던 70~80년대에 부모님께 책과 영화, 음악 얘기를 듣는 풍경이 흔하지는 않았으니까.
셋째 딸인 친구는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의 유쾌함은 딸에게도 전해져 돌아가신 사정을 묻는 내게 남의 썰풀듯 지난 일을 얘기한다. 조심스럽게 물었던 나는 어느새 그의 얘기를 들으며 웃고 있었고, 이렇게 웃어도 될 일이 아닌데 하며 말끝을 흐리니 괜찮아 웃어. 한다. 울 엄마 나이 팔십육 세, 그 나이까지 즐겁게 사셨고, 엄마도 딸들이 그렇게 살길 바라실 거라면서. 부모님께 경제적 여유는 물려받지 못했지만 삶의 자세는 잘 배웠다고, 오래 아프지 않았으니 다행이라는 말을 붙인다.
죽음은 남의 얘기 같고, 나는 지금의 삶을 영원히 누리며 살 것만 같다. 큰 어른처럼 보이던 분들은 세상을 떠난 지 오래라 기억 속에나 남았다. 가지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고, 지난 일에 대한 후회가 길수록 작은 일에 행복을 느끼기 어렵다. 오지 않은 일을 먼저 걱정하는 것도 쓸데없지만, 지난 일을 오래 가두는 그것도 못 할 일이다. 글을 쓰다 보면 앙금처럼 가라앉은 일이 많았다는 데 놀란다. 어떤 일은 지나고 보니 그리 큰일도 아니었다는 깨우침도 있다. 뜻을 두기에 따라 중요하기도, 아니기도 한 일에 넘치게 마음을 쏟기도 했다. 멀리 볼 것 없이 앞에 놓인 일상을 잘 사는 데 중심을 두려고 한다. 쉼보르스카가 노래했듯 익명의 모래 알갱이의 풍경이 누군가에겐 특별한 생명의 모험일지 모르므로.
모래 알갱이가 있는 풍경
우리는 그것들을 모래 알갱이라고 알고 있지만
그 자신에게는 알갱이도 모래도 아니다.
모래 알갱이는 보편적이건, 개별적이건,
일시적이건, 지속적이건,
그릇된 것이건, 적절한 것이건,
이름 없이 지내는 익명의 상태에 익숙하다.
우리가 쳐다보고, 손을 대도 아무것도 아니다.
시선이나 감촉을 느끼지 못하기에.
창틀 위로 떨어졌다 함은 우리들의 문제일 뿐,
모래 알갱이에겐 전혀 특별한 모험이 아니다.
어디로 떨어지건 마찬가지.
벌써 착륙했는지, 아직 하강 중인지
분간조차 못 하기에.
『끝과 시작』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