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수만억 -1의 이들에게

가진 것이 소박해도 꿋꿋하자.

by 달랑무

이 겨울 아직 남은 까치밥이 투명한 하늘 아래 붉다. 어렸을 때 고향 동네엔 감나무며 석류, 대추나무 한 그루씩 심은 집이 꽤 많았다. 집마다의 수확물은 우리 집 접시에도 놓였다. 깊이 드는 햇빛 아래 반짝이던 겨울이 따뜻했다. 다행인지, 지금 사는 동네에도 감나무를 심은 집이 여럿 있어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옛 기억이 그윽하다. 새들이 쪼아 먹고도 용케 가지에 붙어있는 까치밥 사진을 찍으며 2024년의 남은 날들을 헨다.


작년 이맘땐가 싶은데… 딸을 데리고 길을 가던 엄마가 나무 위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있기에 뭔가 해서 봤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자리에 새가 앉아 있다. 보고 싶어도 가까이 볼 수 없는 생명이다. 땅속 동물이나 곤충도 그렇다. 땅을 들썩이며 구멍을 파놓는 두더지를 기어이 들여다보며 훼방하려는가. 어림없다. 그들의 땅 속 정서엔 까마득한 우리다.


넓은 바다를 잃은 고래나, 하늘을 잊은 새들, 땅을 맘껏 파지 못하게 가두는 건 사람만이 한다. 환경에 적응하며 사는 게 우리들이라지만, 하늘 나는 것이나 땅을 파고 물을 헤엄치는 게 본성인 생명을 사람의 환경에 적응하도록 가두는 것은 폭력일 것이다. 두 발로 걷는 우리라고 다르지 않아서 걷는 게 좋은 사람, 뛰는 게 좋은 사람, 멀리 떠나는 게 좋은 사람, 집에 있는 게 안심인 사람이 다 각각이지 않던가.


사람을 만나는 게 좋은 사람, 친구 하나로 만족인 사람이 있고, 생각하는 대로 뱉어내는 사람, 생각을 거듭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 있다. 행동과 말이 같은 사람, 말이 앞서는 사람, 약속을 지키는 사람, 약속은 깨는 데 있는 사람도 있다. 사람을 돕는 사람, 사람을 이용하는 사람, 필요에 따라 만나는 사람, 필요하지 않으면 관계를 접는 사람, 끝을 보고야 마는 사람, 혼자서도 잘 사는 사람, 함께 해야 빛나는 사람, 사람을 만나야 힘이 나는 사람, 스스로 인정하는 사람 …. 이름을 짓고, 규정하기도 어려울 만큼 다양한 색의 사람들이 자기를 반짝이며 살고 있다. 같은 종도 이렇게나 다양하다.


오늘 내 삶이 평온한 것은 거친 길을 지나온 결과일 수 있고, 오늘 내가 힘든 것은 거친 길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일 수 있다. 하늘 나는 것에게 걷기를 권하고, 물속을 유영하는 것에게 땅 파기를 강권하는 것은 나만 옳다고 주장하는 고집 탓이다. 눈높이에 있지 않다고 높은 곳을 나는 생명 비난할 수 없고,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사람에게 내가 보는 것만 보라고 얘기할 수 없다.


멀고 높은 곳으로 나는 새들을 보면 날개 없는 나는 신기하다. 바람을 가르는 힘이 어디에서 오는지 모르므로. 부드럽게 유영하는 물고기를 보면 물을 거스르지 않는 지느러미가 부럽다. 직선이란 없이 온통 둥근 생명의 원리는 물에서 이니 가능한지 궁금해진다. 나는 모르는 흙냄새를 맡으며 더 낮은 곳을 향하는 생명도 그렇다. 평생 그들이 맡는 오묘한 냄새를 알지 못할 것이다.


두 발로 걷는 우릴 보는 그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신기하군, 스스로 바람을 타고 오르려면 시간이 꽤나 걸리겠어. 안타깝군, 물속과 땅 속에선 느낌이 중요한데. 잘거나 길고, 짧고도 웅장하며…' 다양한 종들 각각은 그들의 시간을 살고 있으니, 수십억 개의 시간이 다른 방향과 높이와 폭으로 흐르고 있는 셈이다. 신기하고 부럽고 오묘한 마음을 품을 일이다, 나와 같지 않은 길을 걷는 수십수만억-1의 이들에게.


때로 비슷하다고 안심인 건 가려는 방향이 틀리지 않았을 거라는 확인이 필요해서겠지만, 세상 모든 생명체 중 몇이 비슷하다고 그게 무슨 큰 안심일 텐가. 비슷한 한둘을 짝지으려는 것도 불안해서겠지. 내가 걷는 길에 대한, 내가 가는 방향에 대한, 더 다듬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에 대한. 가진 것을 '제대로' 쓰고 사는 것이 이렇게나 어렵다.


2023년 사자성어로 전국의 대학교수들이 견리망의(見利忘義)를 뽑았다. 대학교수 131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결과다. 이 말을 추천한 교수는 “나라 전체가 각자도생의 싸움판”이라며 “정치란 본래 국민들을 바르게 다스려 이끈다는 뜻인데 자신이 속한 편의 이익을 더 생각하는 것 같다”며 비판했다. (2023.12.11. 동아일보)


2024년 올해의 사자성어는 도량발호(跳梁跋扈). 전국 대학교수 1086명 대상으로 한 결과다. 교수신문은 이번 설문이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 이전인 지난달 11월 25일부터 12월 2일까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중략) "권력자들은 위임받은 권력을 사적인 이득과 편애하는 집단의 특혜를 위해 번번이 남용하고 악용한다"며 "그 최악의 사례가 12월 3일 심야에 대한민국을 느닷없이 강타한 비상계엄령"이라고 비판했다. (2024. 12.10. 서울신문)


작년과 올해의 사자성어가 모두 정치에 닿아있다.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종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역할" 국어사전에 명시된 정치의 뜻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쓰이는 말이다. 국가를, 국민을 두루 보살펴야 하는 사람들이 제 맘에 안 든다고, 당심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고 저리 큰 소리를 내고 있다. 온 나라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가진 것을 남용한 사람의 끝을 우린 누누이 봐왔다. 자신을 꺾을 줄 아는 것도 용기다. 가진 것이 소박해도 꿋꿋이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생명들에게 부끄러운, 힘을 가진 자들의 당찬 오만을 보고 있다.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되든 나는 살고 보자는 비뚠 마음의 곡예가 위태롭다. 가진 것을 나눠 이웃 꼬마의 마음을 데웠던 시골 동네의 인심이 옛 정서만은 아닐 거라고 믿고 싶은 한 해의 막바지에서 옹송그리며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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