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부터 부는 바람은
꽤 추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바람이 사나워 나도 몰래 웅크린다. 십여 년 전, 이십 년 더 전에도, 옛날옛날에도 불었던 바람. 이 냄새, 이 느낌, 이 빛, 이 차가움 아마 있었겠지. 이 바람 지금은 다른 세상을 사는 누군가에게도 가 닿겠지. 내가 세상에 있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머리에, 입술에, 볼에 가 닿으며 시간을 속삭일 바람은 오늘처럼, 무수한 시간의 너머처럼 그런 냄새와 감촉을 흘리고 다닐 테지.
세상은 오래도록 이런 냄새다. 세상은 오래오래 이런 빛이다. 사람이 가도 세상은 이런 느낌일 거고, 하늘엔 없는 이 바람, 땅에선 모두를 홀릴 것이다. 나의 시간은 축적되지 않은 채 꿈처럼 흐를 테고. 무성했던 한여름 다 버린 나무는 어느새 빈 몸으로 섰다. 몸과 마음은 부족한 게 많아서 뭐든 껴입거나 보태야 할 처진데. 두툼한 옷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그를 바라본다.
딸과 함께 뒷산을 오른다. 산이랄 게 무색하게 낮은 높이의 산이다. 산은 시작부터 수런거린다. 언제부터일까, 이들의 이야기는. 나이만큼 기억이 보태지는 거라면 괜히 속 시끄러울 일 많았을걸, 사사로이 하나씩 잊고 사는 이유로 오늘 이 짧은 동선의 시간이나마 고맙다. 생각나는 기억이 많았으면 이런저런 일로 동동거렸을지 모를 하루, 준비하고도 잊고 다니는 덕에 물질 하나, 더불어 따라오는 욕심 하나 접는다.
한 길 목을 타고 내려가는 냉기와 찬 손, 찬바람으로 글을 녹여 마음을 쓴다. 목적 없이 몸을 쓴다. 내가 가진 것이 셋이라면 둘 중 하나가 차다고 다른 하나가 차가워질까. 설령 셋 중 셋이 차다고 따뜻할 날 없을까. 다 차갑게 외면하는 세상이 와도 나를 지킬 따뜻한 몸과 마음 있으면 바람 속에 서 있어도 좋다. 그런 나로부터 부는 바람은 언제라도 훈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