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나도.
딸깍, 불을 켜지 않고 스탠드를 켰다. 스탠드는 가까운 곳을 적당히 밝힌다. 어둠과 빛의 경계를 ‘적당히’ 아는 사람 같다. 노란 불빛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지금보다 조금 젊었을^^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적당히 어두운 무드가 이상하게 끌리던 때 머리맡 라디오는 누구보다 좋은 동무였다. 불을 끈 밤 11시 띠, 띠, 띠! 하는 밤의 시보와 함께 따라라라라라 시그널 뮤직이 흐른다.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 멘트가 들리면 오, 이제 시작이다 했다. 날씨 얘기, 사람이야기에 엽서를 보낸 이의 사연을 버무리는 그의 솜씨는 밤마다 빛났다. 후에 이 프로그램은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로 이어졌다. 별밤은 이문세 특유의 유머코드와 세련됨이 있어 듣는 재미가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시그널 뮤직의 음은 아직 남아 이름만 떠올려도 저절로 허밍이 나온다. 음표들이 줄을 탄다. 진행자가 다시 바뀔 때쯤엔 다 큰 어른이 되었다고, 지금 이딴 감성에 빠질 때인가 스스로를 나무라기도 했다. 어쨌든 이런 밤 귀호강의 시작은 누가 사 왔는지 모르는 신문물, 똑딱단추를 단 트랜지스터 라디오부터였다.
덩어리째 달고 다녀야 하는 단추를 단 건전지는 지금처럼 세련되지 못했다. 기억이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다. 국민학교 시절, 우리 집엔 나와 여섯 살 차이가 나는 어린 막내 고모가 살았다. 고모는 박인희의 노래를 좋아했는지 목마와 숙녀, 끝이 없는 길, 모닥불……. 어린 내가 듣기에도 감성 돋는 노래들을 가득 들었다. 걸레를 빨면서도, 설거지를 하면서도, 이불속에서도 들었다. 어린 나이에 부모 없이 오종종한 조카들 디굴거리는 큰오빠 집에 고모는 얹혀살고 싶었을까. 아마도 집에 오면 엄마가 하는 일들을 도왔겠지. 엄만 밥 먹고 난 빈 그릇들이 물에 담겨 있는 걸 보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시작한 일은 그 자리에서 끝을 봐야 하는 성격 탓에 딸인 나도 참 본의 아니게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는 시절을 보냈다. 게으르고 싶은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선가, 고모는 남들보다 더 빨리 외지로 돈 벌러 떠났고, 남들보다 더 일찍 결혼했다. 글을 끄적이는 지금 와서야 고모의 시간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고모의 어떤 기억은 행복했길….
고모 덕분인지, 탓인지, 오로지 내 감성인지, 뭘 하면서도 늘 음악을 틀어놓던 때가 있었다. 눈으로 보는 것보다 조용히 듣는 게 좋을 때가 있다. 지금은 가끔 그마저도 소음일 때 있지만. 눈으로 보는 것은 환한 조명 아래 너무 명백히 드러난다. 감추지 못한다. 기술이 좋아질수록 티 없는 무결점 커버와 비주얼에 대한 욕망도 함께 커져간다. 이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이나 스스로에 대한 소외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가끔씩은 보이지 않는 걸 꿈꾸거나 상상하며 가슴 뛰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물론 물질의 편의를 모르던 때 얘기고, 지났으니 얘기다. 모깃불 매캐한 연기가 살마다 스미고, 따가운 멍석 위에서도 졸음이 쏟아지던 달 밝은 밤, 빛이라야 어디서 끌어왔는지 모르는 검은 구불 전선에 노랑 알전구 하나가 다였던 시골 할머니 집에서 뉘 집 돼지가 어떻고, 누구 밭이 어떻다는 말을 자장가 삼아 나는 알지도 못하는 세계로 단잠에 빠지던 그런 날이 다시 올까.
"오빠, 나는 크면 오빠처럼 되고 싶어. 나도 가로등을 켜고 싶어. 그게 제일 좋은 일인 것 같아."
"제일 좋은 일이라고?" 페페가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오빠는 어둠을 쫓아버리잖아."
『페페, 가로등을 켜는 아이 』 중
어디에 있든 오늘 내가 할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알전구의 시절에 알전구가 하던 일처럼. 지금 우리 집 베란다엔 알전구를 달아 놓았지만, 워낙 밝은 엘이디탓에 베란다 불 켤 일이 잘 없다. 도자기 갓도 이쁘게 달아 놓았건만. 찾아보니 알전구 백열등은 발광효율이 매우 나빠서 빛으로 쓰인다기보다 열로 쓰인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깜박깜박하다 명을 다한 전구는 바로 만지면 뜨거웠다. 하지만 난 어둠을 물리치지 않는 그의 지혜가 좋았다. 빨간 종이, 파란 종이를 권한다는 귀신이 사는 변소로 가는 길을 어지간히 밝혀주었고, 몇 만 년 전의 신호를 보내고 있는 수많은 별을 지켜주었다. 어둠과 빛의 경계를 알고 남의 영역을 탐하지 않았다. 감추고 싶은 것을 어찌 알고 감춰 준 게 눈물만은 아닐 것이다. 적당히 눙쳐주고 더러는 결점도 예뻐 보이게 분칠도 해줬던 그는 제자리에서 할 일을 다 한 셈이다. 그러니 나도.
『페페, 가로등을 켜는 아이 』 / 일라이지 바톤 글 / 테드 르윈 그림 / 열린어린이 / 2005
『목마와 숙녀 』/ 박인환 시 / 시인생각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