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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 and R May 19. 2017

5. 『오만과 편견』 - 제인 오스틴 - 민음사

★★★★

기간: 2017.5.11~17

한 줄 댓글: 리자베스의 편견과 다아시의 오만함이 사라지는 순간, 둘의 사랑은 이루어진다.


  오만과 편견. 듣기만 해도 마음이 불편해지는 단어들이다. 제목만 봤을 때는 읽고 싶지가 않았다. 유명한 고전이어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샀지만 500쪽이 넘는 작품을 읽는 동안 부정적인 감정에만 휩싸일까 봐 걱정이 앞섰다. 책을 읽기 전부터 '이 책은 딱딱하고 재미없을 거야.'라는 편견에 사로잡혔다. 이 작품의 제목은 원래 '첫사랑'이었다. 하지만 출판을 거절당하고 15년 뒤에 '오만과 편견'으로 개작하여 출판하게 된다. 이렇게 제목이 바뀐 것이 내가 편견을 직접 경험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제인 오스틴이 이것까지 의도했는지는 모르겠다. 내 편견은 독서를 시작한 지 10쪽도 되지 않아 깨졌다. 곧바로 책에 빠져들었다.

  나는 소설을 읽을 때 그 작품세계에 몰입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 작품의 배경과 상황, 등장인물들의 이름과 관계들을 외우느라 작품에 빠져드는 것이 어렵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외워져서 나중에는 작품을 따라가는데 무리가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등장인물과 배경에 대해 완전하게 이해를 해야 소설에 빠져들 수 있다. 소설을 읽을 때 등장인물들의 생김새뿐만 아니라 배경, 특히 집이나 건물 내부 구조 같은 것들은 작가의 묘사를 바탕으로 머릿속에서 재구성한다. 그 과정이 온전히 이루어지면 비로소 작품에 빠져든다. 몰입이 어려웠던 작품이 하나 생각났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백년의 고독』이라는 작품이다. 작가 이름부터 길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등장인물들이다. 무려 6대에 걸쳐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이름이 너무 비슷하다. 심지어 어떤 이름은 완전히 같다. 작품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가계도를 봤는지 모른다. 아르까디오와 아우렐리아노라는 이름이 6대에 걸쳐 계속 나온다. 『백년의 고독』은 작품에 빠져드는데 시간이 정말 오래 걸렸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이름만 빼면 흡인력이 강한 책이다.

  『오만과 편견』은 단 10쪽 만에 나를 빠져들게 했다. 가끔 동일 인물에 대한 호칭이 인물들마다 달라서(예를 들어, 엘리자베스를 리지나 일라이자로 부른다.) 문맥으로 파악하고 그 파악이 맞는지 확인하는 작업 때문에 약간 방해가 됐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대화나 성격들이 너무나 현실성 있게 잘 묘사되어 있어서 그 정도 장애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정말 재미있다. 단순히 오만과 편견에 대한 철학적인 내용만 다룰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연애소설이다.


  작품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딸이 다섯 명 있는 베넷 가문에서 주인공은 둘째 딸인 엘리자베스다. 무도회에서 다아시라는 신사에게 무시당한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에 대한 편견을 갖게 되고 위컴과의 대화를 통해 다아시에 대한 편견은 더욱 강해진다. 언니 제인이 중립적으로 말을 해도 엘리자베스의 편견은 깨지지 않는다. 그러다 다아시한테 사랑고백을 받은 엘리자베스는 충격을 받는다. 재산과 지위에서 우위를 갖고 오만함으로 뭉친 다아시가 본인 같은 여자한테 고백했다는 것이 너무나도 의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아시에 대한 편견이 있던 엘리자베스는 거절한다. 다아시는 자신의 오만함이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고 고치기 위해 노력한다. 엘리자베스 또한 다아시의 첫인상만 가지고 다아시를 판단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랑의 힘으로 오만함을 고친 다아시와 편견을 버린 엘리자베스의 사랑은 이루어진다.


  작품에는 오만한 인간과 편견을 가진 인간이 많이 등장한다. 작품 초반에 '"오만은, 내가 보기에는 가장 흔한 결함이야." 메리가 자신의 깊은 사고력을 뽐내며 말했다. (생략) 허영과 오만은 종종 동의어로 쓰이긴 하지만 그 뜻이 달라. 허영심이 강하지 않더라도 오만할 수 있지. 오만은 우리 스스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더 관련이 있고, 허영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해주었으면 하는 것과 더 관계되거든."'(31p) 베넷가의 셋째 딸 메리가 말하는 장면이다. 재미있는 장면이다. 메리는 오만을 정의한다. 허영도 곁들여서 정의한다. 메리는 작품에서 등장할 때마다 자신의 똑똑함과 지식을 자랑한다. 지적 허영심과 오만을 몸소 보여준다.

  재산과 지위로만 사람을 판단하고 무시하는 빙리, 항상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콜린스, 그리고 남자 주인공 다아시. 모두 오만한 인물들이다.

  편견의 주인공은 이 작품의 주인공인 엘리자베스다. 작가가 이 작품을 개작하기 전에 제목을 첫인상으로 정한 이유가 있다. 엘리자베스의 편견이 첫인상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첫인상이 좋았던 위컴은 교양 있고 좋은 사람으로. 오만함이 첫인상이었던 다아시는 악한 사람으로.

  등장인물들의 오만과 편견으로 인해 이들의 사랑은 꼬이고 꼬인다. 등장인물들이 오만과 편견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이들의 사랑도 이루어진다.


  이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을 소개하겠다. 다아시가 엘리자베스에게 고백하는 부분이다. 다아시의 오만함이 빛을 발하다 못해 눈이 부시다. 킬링 파트다. 다아시가 사랑을 고백하자 편견에 사로잡혀있던 엘리자베스는 거절할 뜻을 내비친다. 그러자 다아시는 자신의 사랑이 완전함을 증명한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다아시의 오만함이 드러난다. 다아시 자신에 비하면 베넷 가문은 너무나도 보잘것없고 열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엘리자베스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자신의 사랑이 완벽하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논리다. '"저는 어떤 종류의 가식도 혐오합니다. (생략) 제가 당신 집안이 열등하다는 사실을 기뻐할 거라고 기대할 수 있으십니까? 저보다 신분이 확실하게 낮은 사람들과 인척 관계를 맺는다고 춤이라도 출 줄 아셨나요?"'(273p) 이 얼마나 오만방자한가. 다아시는 자신의 오만함을 솔직하게 고백해도 본인은 우월하기 때문에 엘리자베스가 고백을 받아줄 거라 생각했다. 오만함을 솔직하게 고백해도 자신을 받아줄 거라 생각하는 다아시의 오만함. 오만함의 끝판왕이다. 정말 재미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가 다아시에 대한 편견이 없었다면 다아시가 이런 식으로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전에 다아시의 고백을 받아줬을 수도 있다. 다아시가 자신의 재산과 지위에서 오만함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 선한 일을 많이 했고 위컴과의 관계에서도 최선을 다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다아시는 오만함만 뺀다면 굉장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엘리자베스가 다아시를 본 첫인상은 오만함이었고, 그 첫인상으로 인해 다아시의 모든 행동을 악하게 봤다. 반대로 위컴에 대한 첫인상은 좋았기 때문에 위컴의 말은 모두 신뢰하고 다아시에 대한 거짓 증언도 믿는다. 이 때문에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의 고백을 거절한다. 하지만 엘리자베스의 거절로 인해 다아시가 자신의 오만함을 고치게 되는 계기가 된다. 편견이 오만함의 약이 됐다. 다아시는 거절당한 후에 장문의 편지로 자신의 진솔함을 고백하고 위컴과의 관계에서 생긴 오해를 푼다. 시간이 지나면서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에 대한 오해를 풀게 되고 오만하기만 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더불어 다아시는 자신의 오만함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고 그 모습을 엘리자베스에게 보여준다. 리자베스의 편견과 다아시의 오만함이 사라지는 순간, 둘의 사랑이 이루어진다.


  500페이지가 넘지만, 충분히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사랑이야기지만 사랑보다 오만과 편견에 대한 작가의 관찰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면서 한층 성장한 기분이 든다. 작가가 의도한 바를 잘 찾아낸 거 같다. 작품을 읽으면서 연애에 대한 감정은 덤으로 생겼다. 빌려서라도 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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