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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 and R Jun 30. 2017

12.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 설민석 - 세계사

★★★

  기간: 2017.6.12~14

  한 줄 댓글: 조선왕조도 재미있을 수 있다.


  설민석 씨는 한국사 강사다. 수능부터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까지 강의한다. 설민석 씨의 입담은 역사를 딱딱하고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역사에 금세 빠져들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나는 설민석 씨를 <명량>이라는 영화에서 처음 알았다. <명량>을 보기 전에 예고편을 찾아보다가 설민석 씨가 이순신 장군과 명량해전에 대해서 강의한 것을 봤다. 보통 영화 예고편이라고 하면 영화의 장면들을 편집해서 15초에서 2분 사이의 영상으로 만든다. 그런데 그때 내가 본 건 10분짜리 영상 2편이었다. 영화 예고편으로 강의를 찍은 것이다. 15초짜리 예고편도 지루해서 넘기기 마련인데 설민석 씨의 <명량> 예고편은 2부까지 꼼꼼히 봤다. 역사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전달력이 정말 뛰어났다. 그 이후로도 많은 역사 영화들이 유행처럼 만들어졌는데 그때마다 설민석 씨의 강의식 예고편도 꼭 등장했다. <사도>, <암살>, <국제시장>, <인천 상륙작전> 등 영화를 보기 전에 설민석 씨의 예고편 강의를 보고 나서 영화를 보면 영화를 이해하는데 훨씬 도움이 되었다. 물론 영화의 완성도나 재미는 설민석 씨가 만드는 것이 아니지만 흥행에 어느 정도 몫을 했다고 본다. 그런 설민석 씨가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책을 냈다. 단번에 베스트셀러가 됐고, 조선왕조 전반에 대한 지식이 필요했던 나는 이 책을 읽게 됐다.


  조선왕조실록은 하루에 100쪽씩 읽어도 4년 3개월이 걸릴 만큼 양이 방대한 책이라고 한다. 그 방대한 내용을 설민석 강사는 500쪽에 담았다. 조선왕조 472년의 기록을 500쪽에 담았으니 내용이 얕은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현재 우리 사회의 문제를 바라볼 수 있는 이슈들을 담았다.


  첫째는 조선왕조실록에는 수정 실록이라 하여 당대 집권 세력이 누구냐에 따라 달리 쓰인 실록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 『선조 수정 실록』이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조선왕조실록 / 선조수정실록 표지

  그렇다면 먼저 쓰인 『선조실록』은 어떻게 됐을까? 수정 실록을 쓴 사람들이 없애버렸을까? 아니다. 없앴다면 자신들이 다시 쓴 실록을 수정 실록이라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먼저 쓰인 실록을 없애고 자신들이 다시 쓴 실록을 『선조실록』이라고 해도 후대 사람들은 기록이 없으면 모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와 다른 세력이고 나와는 다른 가치관과 정치관을 가졌지만, 그들의 이념도 후세가 마땅히 봐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지요. (생략) 나와 생각과 관점이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름의 가치를 인정해 준 거라 볼 수 있어요. 이러한 사고는 오늘날 편 가르기에 익숙한 후손들이 배워야 할 점이 아닐까요?'(19~20p) 국정교과서로 자기들의 역사관을 주입하려고 했던 전 정부 세력들과는 완전히 대비된다. 다행히 지금은 국정교과서가 폐기 수순을 밟고 있지만 사실 정권 교체가 안됐다면 어떻게 됐을지 아찔하다.


  둘째는 세종대왕의 진보적인 정책이다. 세종이 노비들에게 100일의 출산휴가를 줬다고 한다. 세종이 그렇게 명하기 전에는 관노비의 출산 휴가가 7일 정도였다고 한다. 너무 비인간적이라고 생각한 세종이 100일의 휴가를 명했다고 한다. 지금 보면 당연한 거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때 당시 사회 상황을 보면 세종의 정책은 파격적인 진보 정책이다. 비인간적인 것을 보수, 인간적인 것을 진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때 사회 상황을 봤을 때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긴 것을 보수,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파격적인 것을 진보로 본 것이다. 사실 현재도 출산휴가와 출산 임금으로 노사 간의 완전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걸 보면 세종의 출산 휴가 100일 정책은 실로 놀랍다.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은 역사를 딱딱하고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역사에 입문하기에 좋은 책이다.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은 말 그대로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이다. 역사란, 과거의 사실과 그 사실에 대한 역사학자의 해석이 함께 들어가기 마련이다. 과거의 사건 중에서 어떤 것을 역사적 사실로 기록하고 전달할 것인지도 역사학자의 선택이다. 결국 역사는 오롯이 객관적일 수 없다. 이런 역사의 특징은 에드워드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지 않아도 공감할 것이다. 그럼에도 개중에는 이 책을 얕은 지식으로 쓴 졸저라고 평하는 사람들이 있다. 500쪽 조선왕조실록에 얼마나 큰 것을 기대했단 말인가. 얕은 게 당연하다. 입문서로만 읽고 넘어가면 된다. 이 책을 읽고 조선왕조에 흥미가 생겼으니 그걸로 된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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