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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 and R Jul 25. 2017

20. 『강의』 - 신영복 - 돌베개

★★★★☆

기간: 2017.6.28~7.6

한 줄 댓글: 동양은 관계론, 서양은 존재론. 주역 참 재밌네.


  신영복 선생님의 책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고 신영복 선생님의 철학에 관심이 생겼다. 신영복 선생님은 1968년에 있었던 간첩사건인 '통일혁명당 사건'에 휘말려 무기징역을 받고 감옥생활을 하셨다. 정작 본인께서는 '통일혁명당 사건'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하셨다. 당시에 지식인으로서 학생들과 함께 연구 모임을 만들고 학생 시위를 조직하는 등 학생운동을 주도하셨다. 근데 마침 간첩 사건이 벌어지자 학생운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간첩으로 함께 엮여서 옥살이를 하셨다. 무기징역을 받고 1968년부터 1988년까지 20년간 옥살이를 하다가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하셨다.

  이 책은 부제를 봐도 알 수 있듯이 동양고전에 대한 신영복 선생님의 강의를 글로 풀어쓴 책이다. 신영복 선생님은 살아계실 때 성공회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셨는데 그때 하신 강의를 바탕으로 출판한 책이다.

  이 책에서는 주역, 공자, 맹자, 노자, 장자, 묵자, 순자, 법가 등 동양의 여러 사상가들의 고전이 소개되고 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이 고전들이 모두 중국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이다. 동양이라 하면 중국만 있는 것이 아닌데 이 책에서 소개하는 고전은 모두 중국 고전이다. 차라리 중국 고전 독법이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신영복 선생님께서 '동양 고전 독법'이라고 하면서 서양과 동양의 구별을 둔 이유가 있다. 동양 고전은 관계론적 관점, 서양 고전은 존재론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 동양의 가부장적 사회와 위계질서, 예의 등은 관계론적 관점에서 나온 문화이고 서양의 개인주의는 존재론적 관점에서 나온 문화다. 결국 고전이 그 지역의 사상과 문화를 담고 있는 것이다.

  동양의 사상이 관계론적 관점이지만 각 고전이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공자와 맹자만 봐도 차이점을 알 수 있다. 공자와 맹자 모두 유가 사상을 기반으로 인간관계론을 말하고 있지만 공자는 개인적 관점에서의 인간관계론, 맹자는 사회적 관점에서의 인간관계론을 말하고 있다.


  가장 재미있게 본 부분은 주역이다. 그중에서도 '『주역』 읽기의 기초 개념'이 있는 부분이 가장 재미있었다. 주역은 점을 보는 책이다. 사실 기독교인으로서 주역이 재미있다고 하는 것이 조금 걸렸다. 하지만 내가 주역을 재미있다고 말하는 건 단지 주역의 관계론적 관점이 논리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어서 그런 것이지 주역의 점괘를 신뢰하고 의지한다는 것은 아니다.

  


주역의 팔괘

  나는 주역이 관계론의 정수라고 생각한다. 신영복 선생께서는 이 책에서 관계론을 담고 있는 여러 동양 고전을 소개해주셨지만 그중에서도 주역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우선 주역의 괘는 태극기에도 있다. 건, 곤, 감, 리가 바로 주역의 기본 괘들이다. 주역의 괘는 총 8개다. 각 괘는 3개의 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행에는 양효와 음효 중에 하나씩만 위치할 수 있다. 양효는 길게 한 줄, 음효는 끊어진 두 줄이다. 그래서 각 행마다 올 수 있는 효의 수는 양과 음, 두 개이므로 2×2×2 해서 총 8개의 괘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괘 두 개를 위아래로 붙여서 만든 것을 중괘라고 하는데 이 중괘는 총 64개다.


  주역에서 양효와 음효는 각각 길과 흉을 뜻하는데, 효의 뜻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 효와 효 사이의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에 음효가 많은 괘라 하더라도 양효가 많은 괘보다 더 좋은 뜻을 품고 있는 괘가 있다. 어느 위치에 어떤 효가 오느냐에 따라 뜻이 천지 차이가 되는 경우도 있다. 또 나쁜 괘라 하더라도 중괘를 구성할 때 괘와 괘 사이의 관계와 위치에 따라 그 뜻이 달라진다. 이처럼 효와 괘 그리고 중괘는 모두 뜻이 하나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 사이의 관계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이것이 주역이다.


  이 책을 통해 중국 고전에 대해 흥미가 생겼다. 철학이라고 하면 서양 철학을 주로 떠올렸는데 이제 동양 철학에도 관심이 커졌다. 중국만 해도 이렇게 재미있는 철학이 있는데 동양을 통틀어서는 재미있는 고전과 철학이 얼마나 많을지 기대가 된다. 마지막으로 신영복 선생님의 말을 인용하면서 끝내겠다. '사상은 실천된 것만이 자기의 것입니다. 단지 주장했다고 해서 그것이 자기의 사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입니다. 말이나 글로써 주장하는 것이 그 사람의 사상이 되지 못하는 까닭은 자기의 사상이 아닌 것도 얼마든지 주장하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삶 속에서 실천된 것만이 자기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상의 존재 형식은 담론이 아니라 실천인 것입니다.'(510p)

  그렇다. 이 책을 통해 동양 고전에 대해서 관심이 생기고 관계론적 관점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터득한 지식를 실천에 옮기지 못한다면 그것은 지혜로 가지 못하고 지식에 머물고 말 것이다. 관계론적 관점을 잘 이해한다면 대인관계에서 생기는 갈등을 원활하게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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