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옷을 널어준 그 사람

by 달하

새벽 5시.

오랜만에 새벽에 깨어 안방으로 들어왔다.

아빠와 자던 28개월 아가가 나를 엄마로 인식하게 될 무렵부터, 넓게 편 매트 위에서 셋이 뒹굴거리며 자기 시작한 지 몇 개월이 되어간다. 부부의 공간이었던 안방은 이제 엄마방이 되어 내가 노트북을 두드리거나 출근을 준비하는 공간이 되었다.


오랜만에 책상에 앉아 책의 좋았던 부분을 다시 한번 읽고 기지개를 켜다 방안을 두리번거리는데, 저 침대 위에 쌓여있는 것은 무엇이지?

무엇이지?라고 묻기에는 스스로 무색한...... 내가 1주일 전부터 알고 있던 그것.

그것은 나와 남편의 빨래들이다.

정확히 말하면 세탁은 되었고 개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옷들이었다.

다시 한번 말해보면 빨래를 수거해 세탁기를 돌리는 남편이 할 일은 완료되었고 나에게 개어지길 1주일째 기다리고 있는 옷들이었다.

'개야 되는데......'

생각은 있었지만 지난 기간 동안 한쪽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이제는 개야겠다.'

'새벽 5시에 빨래를 개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야'하고 혼자 웃다 보니, 옷들이 다 남편의 티셔츠들이다.

'아니, 다 본인 옷인데 본인이 좀 개지.' 하면서 옷을 개는데, 티셔츠들이 차곡차곡 접혀 쌓여나가는 매무새가 또 나쁘지 않다. 평소 겪어보지 않던 경험에서 오는 신선함과 출처를 알 수 없는 청량감이랄까.

각은 못 잡아도 티셔츠들을 양손으로 착착 문질러본다. 1주일 동안 널브러져 있던 옷들인데도 손으로 문지르니 그래도 착착 펴진다.


티셔츠를 착착 개다가 무심코 올려다본 베란다에서 흔들흔들 내 속옷들이 휘날린다.

그러고 보면 남편은 수년동안 내 속옷들을 베란다에 따로 너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남편이 내 속옷을 널었던 것을 인지한 것은 수년 전 연애시절 어느 날이었다.

어쩌면 그날이 내가 결혼을 결심하게 된 날이었는지도 모른다.


10년 전쯤 내과 레지던트로 수련 중이던 어느 날. 남자친구였던 그가 놀러 오기로 한 그날도 마지막 환자만 마무리하고 갈게 하다, 집에서 저녁을 먹자고 한 약속에 1시간이 늦었다.

"미안해." 하며 집으로 들어갔는데, 원룸방 빨래대가 활짝 펼쳐져있고 내 옷들이 가지런히 널려있었다.

눈이 휘둥그레저 있는데,

“어 내가 했어.” 부엌 쪽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가 빨래를 해두었다.

속옷들도 중간중간 널려 있었는데, 그저 정렬을 맞춰 매달린 빨래들이 아름다웠다.


그렇게 그와 2년을 만나고 청혼 끝에 결혼을 했다.

언니가 결혼한 이유에 대해 물었고, 머릿속을 헤집다 보니 순간 환하게 불이 들어오는 장면이 있었다.


"어느 날 집에 갔는데 빨래들이 나란히 널려있더라고, 뭐랄까 기분이 좋았었지."


그때부터 남편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빨래를 하고 식기세척기에 그릇들을 챙긴다. 그중 일부 빨래 개기가 내 담당이 되었다. 세탁된 빨랫감들은 늘 담당자의 부재와 미루기로 대기 중이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빨래도 남편도 민원제기가 없어 고마운 마음이다.


'뭐 그래 새벽 5시에 이쯤은 괜찮지.'

빨래를 개다 웃음이 나는 걸 보니, '뭐랄까 기분이 좋았었지.' 하고 말했었던 그때의 내가 왔었나 보다.

아침을 먹다가, "오늘 새벽에 드디어 빨래를 갰어."하고 남편에게 말했다.

"갰구나."

그의 웃는 얼굴을 보니 나도 웃음이 나왔다.

그때의 그와 나는 변하고 있지만 빨래를 널고 개는 마음은 그 자리에 있나 보다.


그래. 누구는 새벽에 달리기를 하고 누구는 책을 본다는데, 지금 나의 새벽에는 빨래 개기가 적격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아가가 나에게 온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