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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하달하 Apr 04. 2019

제 지능의 25%로 살아가는 기분이랄까요

독일에서 사는 기분이 어떻냐고 물으신다면, 이렇게 답하겠어요

2015년 여름, 처음 독일로 와 베를린에서 살기 시작했을 때, 나는 독일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에서 살고 있었지만 언제나 고요함 속을 거니는 느낌이었다. 알아들을 수 없으니, 길거리의 표지판이건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 건 그냥 멀리서 들려오는 웅성거리는 소음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게 베를린은 꽤나 조용한 도시로 기억되고 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루드빅스하펜(Ludwigshafen)이라는 작은 도시. 심지어 독일에 사는 친구들 조차 옆에 있는 큰 도시의 이름을 말해야만 '아하'하고 알아차리니 분명 크고 유명한 도시가 아니다. 하지만 이곳은 내게 매우 활기찬 도시이다. 슈퍼마켓을 오가는 사람들도, 문구점의 주인장도 모두 언제나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곳이다. 생각해보면 독일에 온 지 5년이 다 되어가는 이제, 내게 그들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독일어가 많이 불편하다. 얼추 알아듣기 시작했지만, 뭐라 한마디 대답하기까지 한참이나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고,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기 위해 귀를 기울이다 보면 쉽게 심신이 지치고 만다. 그래서 독일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저녁 약속이 있는 날이면, 설레고 즐거운 반면 한두 시간 만에 정신적으로 녹초가 되고 만다. 오랜만에 만나 인사를 나누고 집중력이 살아있는 1시간 동안은 매우 쾌활한 나이지만,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느 순간부터 멍하니 다른 생각에 빠지며 나도 모르게 말수가 줄어든다.




사실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언어뿐만이 아니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식재료의 이름부터 시작해서 독일을 비롯한 주변 유럽 국가들의 이름과 위치까지. 독일에 있는 친구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게 알아야 하는 것들이 내게는 낯설게 느껴지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입사 후 오리엔테이션이 있던 주의 첫날. 오스트리아, 스위스, 독일 지역의 본사가 있는 프랑크푸르트 인근 크론 버그(Kronberg)라는 도시에 100명에 가까운 신규 입사자들이 모였다. 긴 시간 함께 있다 보니 자연스레 모두들 새로운 동료를 만나 어디서 왔으며, 어디에 살며 등등 신상조사에 여념이 없었다. 그 많은 인원 중 독일어를 못하는 사람은 나를 비롯하여 스위스에 사는 폴란드 친구와 인도 친구, 이렇게 셋 밖에 없었기 때문에 쉬는 시간이면 자연스레 우리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렸다.


"난 한국에서 왔고, 북한 아니고 남한이고, 온지는 5개월 정도 됐고, 남편이 독일 사람이라 결혼하면서 이리로 오게 됐어. 아, 그리고 내 이름은 은지(Eunji)인데 너네 발음하기 힘드니까, Angela(안젤라)의 줄임말인 Angie(앤지)라고 생각하고 발음하면 편할 거야."


나라에 대한 질문은 당연히 나올 것이고, 그냥 한국이라고 하면 독일 뉴스에 매일같이 등장하는 김정은 이야기에 장난처럼 '혹시 North?'라고 말하는 친구들이 많으니 남한(South)이라고 미리 말해 두고, 왜 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나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까지 일러두면 중요한 이야기는 거의 끝이 난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그들의 대답이다.


"나는 튀니지에서 왔어."


"나는 오스트리아에 살고 있는데 차를 타고 왔더니 한참 걸렸어."


보통 '나 어디에서 왔어'라고 말하고 나면, 그 나라와 연관된 질문 한 두 개 즈음에 해 주어야 하는데, 튀니지라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리고 오스트리아에 살고 있다는 친구는 차를 타고 이곳까지 왔다는데 거리가 얼마인지 알 수가 없으니 운전을 해서 이곳까지 오는 게 가능한지도 가늠이 되지 않았다. 한 번은 뉴질랜드에서 와서 독일에 살고 있는 동료가 집이 멀어 가족들 보러 가기가 힘들다길래, '비행기 직항 없어?'라고 물었다가 면박을 당한 적이 있다.


"은지야, 독일에서 뉴질랜드까지 한 번에 날아가면 조종사 죽어. 너 뉴질랜드가 어디 붙어있는지는 알지?"


나는 속으로 '흥, 쳇, 내가 그거 알아서 뭐해. 흥'하고 삐죽삐죽 민망한 변명을 해 보았다.




그래서 독일에 있는 내 친구들 사이에는 불문율 하나가 있다. '은지와 보드 게임할 때 절대 지리와 관련된 게임은 하지 말 것.' 지도 펼쳐 드는 게임은 절대 사양하니, 이제 친구들이 알아서 그런 게임은 챙겨 오지 않는다. 하지만 지난 연말, 나는 또 다른 복명을 만나게 되었다. 내가 오는 줄 몰랐던 한 친구가 가져온 보드게임이 하필이면 독일어 단어 맞추기와 퀴즈게임이 아니던가.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은, 독일어 단어 맞추는 게임이 퀴즈보다 훨씬 쉬웠다는 것.



독일은 퀴즈 프로그램이 참 많다. 내 남편 마크만 하더라도 휴대폰에 퀴즈 어플을 깔아놓고, 짬이 날 때마다 문제를 푼다. 매일 저녁 TV의 프라임타임을 점령한 다큐멘터리 프로는 시시콜콜한 정보까지 자세히 다루며, 사람들의 궁금증을 채워준다. 한국에서도 그리 상식에 밝지 못했던 내가 이 곳에 오고 나니, 미취학 아동 정도의 상식으로 30여 년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역사, 인물, 음악, 영화, 종교 등 여러 가지의 영역으로 나뉘어 있던 퀴즈문제 중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나는 결국 '혹시 IT분야는 없니?'라며 백기를 들고 그 게임에서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매일매일 회사 업무를 마무리하며 생각한다.

'하-, 오늘도 80%에 못 미치는 두뇌로 참 열심히 일했다.'

아무리 영어가 독일어보다 편하다 해도 한국말을 할 때만큼 자유롭지 않으니, 하루 종일 꾸역꾸역 내 의견을 전하고 나면 스스로가 애처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다 독일 가족들을 만나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나면,

'아이고, 부족한 50% 채우느라 진이 다 빠지네.'

하고 생각한다. 나의 부족한 독일어 실력은 분명 내 지능의 50%도 발휘하지 못하게 막고 있음이 분명하니까.


그리고 독일 친구들과 함께 보드 게임을 하고 난 어느 날, 마크에게 말했다.

"나, 여기서 내 지능의 25%로도 못 쓰고 사는 것 같아. 언어가 안 되니 절반, 독일 사람들이 생각하는 상식이 없으니 또 절반. 머릿속에 무언가가 들어있기는 할 텐데, 내가 여기서 쓸 수 있는 건 채 25%가 안 되는 것 같아."


외국인으로 산다는 것은 참 서글픈 일이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가끔 바보가 된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그래서 마음을 먹고 이 친구들의 상식을 따라가 볼까 생각해 본 적도 있으나, 그럴수록 조급증만 늘어갈 뿐이었다. 이 친구들은 유럽의 중심에 살고 있으니 주변국에 대한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고, 퀴즈가 생활화되어 있으니 시시콜콜한 상식들을 나보다 많이 알 수 있는 것인데, 굳이 그것을 한 번에 따라가려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는 어쩌면 이러한 불편함들이 독일에서 겪은 가장 큰 '문화 차이'일지도 모른다. 한 평생 내게는 신경 조차 쓰이지 않던 것들이 이제는 피할 수 없는 관심사가 되었고, 나는 그 속에서 길을 잃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한국 TV 프로그램에 나와 유창한 한국어로 우리나라의 문화를 논하는 외국인들을 보면 끝없는 존경심이 샘솟는다. 하지만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기에 나는 독일어의 알파벳부터 배우기 시작했듯, 이런 부수적인 부분들도 걸음마부터 천천히 시작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요즘은 SNS로 독일의 뉴스거리를 따라가 보기도 하고, 잘 알지 못하는 나라나 도시의 지명이 나올 때마다 구글 지도를 열어 찾아보곤 한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이렇게 조금씩 채우다 보면, 언젠가는 여기 있는 친구들과 함께 지도 게임을 하며 여유를 부리는 날이 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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